해외 직접구매 열풍이 던진 섬뜩한 경고…인터넷 타고 메가 경쟁 시대 열려

상품은 사람보다 쉽게 국경을 넘는다. 미국의 연중 최대 쇼핑 명절이라고 불리는 블랙 프라이데와 사이버 먼데이 기간 동안 일어난 인터넷을 통한 해외 직접 구매(‘직구’)는 한국만 어림잡아도 1조 원이 넘을 만큼 엄청났다. 이베이(eBay)는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 기간 동안 70% 이상의 매출이 증가했고 한국 G마켓의 글로벌 쇼핑 코너에선 이 기간 동안 매출이 80% 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을 구할 때도 있지만 대개 파격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만든 500만 원짜리 텔레비전을 해외에서 직구하면 관세와 배송비를 내고도 반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거나 한국에선 90만 원이라는 대만제 노트북이 미국 이베이(eBay)에서는 399달러에 배송료 10달러를 더하면 직구가 가능했다.
[조광수의 IT 心포니] 소비자 빠진 유통산업으론 미래가 없다
UX 기술로 무장한 글로벌 기업들
2011년부터 미국은 온라인 쇼핑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해외 직접 판매를 시작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뿐만 아니라 미국 월마트·아메리칸이글·랄프로렌 등 주요 쇼핑몰과 브랜드 숍들이 직접 판매를 시작했고 심지어 이베이나 메이시(Macy)백화점 같은 곳들은 한국말로 안내한다. 사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에이서스(Asos)는 전 세계 어디든지 사기만 하면 무료로 배송하고 이탈리아의 육스는 명품을 70%까지 할인하면서도 45달러 이상 구매하면 역시 전 세계로 무료 배송한다.

해외 직구는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나타나는 메가 경쟁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결국 국가 간에 상품·서비스·자본이 차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자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세계가 경제적으로 통합돼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롯데쇼핑·신세계·이마트·현대백화점·CJ오쇼핑·GS리테일 같은 한국 쇼핑업체가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아마존·타오바오·메이시·라쿠텐 같은 해외 글로벌 기업과 국경 없는 정면 승부를 벌인다는 뜻이며 애플과 구글이 열고 있는 쇼핑·전자지갑 사업과 부딪친다는 뜻이다. 특히 구글은 이미 쇼핑 안방에서 이베이의 G마켓·옥션과 쿠팡·티켓몬스터, SK플래닛의 11번가로 대표되는 오픈 마켓·소셜 마켓과 경쟁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산업에는 생소하지만 모든 산업에서 인지(cognitive)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 기술을 무기로 초국경 경쟁을 하고 있고 쇼핑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한국의 쇼핑 산업 역시 내수 시장 규모나 성장의 한계 때문에 글로벌화의 압박을 받지만 언어·배송·관세·액티브엑스 기반의 공인 인증서로 대표되는 제도적·물리적 국경 내에서 안전한(?) 장사를 해 왔다. 그런데 태평양 건너의 멋진 사례로만 바라보던 아마존 같은 기업과 구글·애플이 자신의 안방에 들어와 싸움을 걸다니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해외 직구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 인구 중 약 24%가 해외 직구를 했고 67%는 동일 제품을 더 싸게 구매했으며 96%는 해외 직구를 계속할 의향이라고 한다. 한국 신용카드사들도 한몫한다. 이들은 해외 결제 금액에 따라 무료 배송, 관세 면제, 포인트 적립 혜택을 주며 직구를 촉진하고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높은 국가 채무 때문에 거래세가 늘어나면 결국 판매 가격이 높아져 이 또한 해외 직구를 강화하게 된다.

이미 이베이의 G마켓·옥션, 미국 그루폰의 티켓몬스터 그리고 실리콘밸리 자금의 투자를 받는 쿠팡이 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마존 같은 대형 유통사의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은 한국 쇼핑 산업에는 또 다른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직구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의 상거래 위기는 단순한 몇 가지 현상적 원인보다 근본적인 이슈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용자·고객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UX 기술 관점에서 한국 쇼핑 산업을 알아본다. 먼저 한국 쇼핑 대기업의 문제점을 알아보자.

첫째, 공급자 중심의 배타적 유통 사업 구조이지 쇼핑 사업이 아니다.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은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백화점, TV 홈쇼핑 회사, 온라인 쇼핑 회사, 대형 마트사, 슈퍼마켓 등 유통 채널에 따라 회사를 만들어 왔다. 채널은 폐쇄적인 통로로서 TV에서 SBS 채널의 프로그램을 볼 때 MBC나 KBS가 섞여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지극히 사업자적 관점이다. 이는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이뤄 내는 혁신을 목도하면서도 아이폰이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합쳐진 모양새이다 보니 휴대전화 사업부에서 다룰지 아니면 컴퓨터사업부에서 다룰지 책임 소재를 미루다가 수수방관만 하던 한국 기업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고객관계관리(CRM)라는 개념이 없는 전자회사보다 쇼핑 기업이 월등히 유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한국 대기업에서 나타나는 헐거운 협업 구조로 아마존과 구글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30~40%까지 이르기도 하는 영업이익률을 영위하던 한국 기업이 0%대의 영업이익률로 플랫폼을 장악하는 아마존과 경쟁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둘째, 충성도 높은 고유 브랜드를 갖기 어렵고 이젠 유통을 장악할 수도 없다. 한국의 유통 기업은 대개 자신의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 제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방식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의 입점 브랜드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명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중저가 브랜드도 많고 심지어 오픈마켓의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오픈마켓과 소셜 커머스가 저가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대형 유통 기업이 가진 높은 신뢰도는 강점일 수 있도 있지만 개별 입점 브랜드가 의심스럽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러한 강점은 장점이 될 뿐이며 결국 유통 기업이 유통을 장악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소비자를 위한 쇼핑이 없다
더욱 어려운 점은 잘 팔리는 브랜드는 전통적인 유통 채널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독자적인 유통과 판매 전략을 사용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성공한 애플은 다른 유통사 밑으로 들어가 판매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나이키 같은 브랜드들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여느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지만 직접 매장을 열고 직접 온라인으로 판매도 한다. 일본의 유니클로(Uniqlo), 미국의 갭(Gap), 스페인의 자라(Zara)와 같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패션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직접 기획·생산·유통·마케팅의 프로세스를 수직 통합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산하며 판매한다. 즉 모든 것을 직접 하다 보니 유통 기업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

셋째, 고객의 고령화다. 젊은 고객을 잃고 있다. 유통 대기업이 명품이나 고가 상품으로 체제를 갖추면서 낮은 가격을 중심으로 신뢰도가 떨어지는 오픈 마켓이나 소셜 쇼핑과 경쟁하게 됐다. 그런데 이는 단지 주력 상품군이 달라지는 수준을 넘어 주 이용 고객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 유통 기업의 주고객은 고령화되면서 소비 핵심층인 20대와 30대의 젊은 고객이 떠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돈을 쓰지 못하고 강제로 절약시키는 공인 인증서같은 액티브엑스 기반의 결제 시스템은 한국 쇼핑 산업의 경쟁력을 바닥으로 이끌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UX가 상거래에서 일으키는 이노베이션의 핵심은 결국 소비자 중심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유통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흔히 “고객은 왕이다”라고 하지만 막상 이 말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현실 진행형이다. 기본적으로 제조업자가 만든 물건을 소비자에게 연결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을 소유하는 유통 기업이 유통을 장악할 수 있었던 과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생산보다 수요가 컸고 표준화를 기반으로 물건을 대량생산하면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욕구와 니즈를 보기보다 생산과 유통을 통해 판매량를 늘리거나 생산자를 독점하며 시장 경쟁자를 이기는 공급자 중심의 전략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유통은 공급자 중심이었고 그래서 소비자는 경영 활동에 반영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공급자 중심의 사고 과정에서 유통을 했던 것이다. 결국 소비자가 가져야 할 쇼핑의 UX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연구소장 kwangsu.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