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평가 때 탄소 위험 반영 금융사 늘어…유엔, 글로벌 표준 개발
앞으로는 기업들이 금융회사에서 대출이나 투자를 받으려면 온실가스를 신경 써야 할 전망이다. 주가를 관리하기 위해서도 온실가스를 관리해야 하고 채권을 발행하거나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할 때도 그렇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할 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와 여러 각국 정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과 제품, 프로젝트는 물론 기업의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온실가스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이유 있는 반격이 시작됐다.2013년 한 해 동안 글로벌 금융회사의 리더들은 뉴욕과 런던 등을 중심으로 모여 기후변화와 온실가스가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양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또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수행했는데, 응답자의 약 75%가 대출과 투자 시 온실가스를 측정, 보고하는 게 중요한 비즈니스 이슈라고 답변했다(전혀 중요하지 않다 10%, 중요하지 않다 9%, 기타 6%).
“대출·투자 시 온실가스 보고 중요” 75%
유엔의 민간-공공부문 파트너십(PPP) 조직인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nance Initiative:이하 UNEP FI)는 회원사들과 함께 금융권을 위한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관련 가이드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후 UNEP FI는 세계자원연구소(WRI)와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1998년 설립한 GHG 프로토콜(Protocol)과 함께 지난 1월 말 금융권을 위한 온실가스 가이드를 개발하기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론칭했다.
이를 위해 UNEP FI와 GHG 프로토콜은 5개의 작업반을 구성했는데, 작업반 1은 기업과 프로젝트, 작업반 2는 정부, 작업반 3은 소비자, 작업반 4는 크로스커팅 이슈, 작업반 5는 탄소 자산 위험을 다룬다. 향후 작업반 1~4는 회계 가이던스(Accounting Guidance)를 개발하고 작업반 5는 탄소 자산 위험 가이던스(Carbon Asset Risk Guidance)를 개발한다.
먼저 ‘회계 가이던스’는 금융회사가 대출 또는 투자 등을 하는 기업이나 프로젝트 관련 온실가스를 측정, 보고하고 성과를 추적할 수 있도록 신뢰성 있고 국제적인 온실가스 표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금융회사가 대출 또는 투자한 기업이나 사업에서 발생된 온실가스가 탄소 위험에 어떻게 노출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탄소 자산 위험 가이던스’는 금융회사가 대출 또는 투자하는 탄소 자산(탄소 집약도가 높은 ‘기업이나 프로젝트’) 관련 리스크 관리 방법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탄소 집약도(매출액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가 높은 기업이나 프로젝트의 온실가스 배출 특성과 관련된 금융 위험의 유형을 분류하고 이런 위험들이 금융자본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파악한다. 또한 금융회사나 투자자들이 이러한 현재와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앞으로는 탄소 집약도가 높은 탄소 자산이 많은 채굴·석유·가스·전력 등의 산업별 가이드를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이미 작업반 5에서는 탄소 자산의 위험관리와 관련된 주식 투자, 프라이빗 에쿼티, 채권 발행시장, 기업 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 지분 인수 등의 전반적인 금융 활동에 대해 기관투자가(연·기금, 보험회사 등)와 개인 투자자, 은행, 자산 운용사 등 자본시장의 주요 참여자별 역할을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리고 탄소 자산의 온실가스 위험관리를 위한 방안으로 직접 투자와 관련해서는 기업 가치 및 사업성 평가 결과 재조정, 주주 경영 관여(engagement), 포트폴리오 재배치, 투자 철회 등의 리스크 관리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금융 상품과 관련해서는 온실가스 관련 실사와 거래 검토 강화, 기업 가치 및 사업성 평가 결과 재조정, 상장 요건에서의 온실가스 정보 공개 촉진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 자산 위험 관련 가이드가 개발되면 단순히 온실가스와 관련된 리스크를 규명하는 데서 벗어나 향후 금융회사가 다양한 자본 조달 과정, 대출이나 투자 과정, 기업의 상장 과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기업이나 프로젝트의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 집약도 등을 고려하게 될 것으로 보여 자본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유엔 가이던스 2015년 발표 예정
현재 이러한 가이드를 개발하기 위해 수백 명의 전문가와 금융회사 종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작업반 5(탄소 자산 위험)도 전 세계적으로 약 75명의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JP모건체이스 지속가능금융자문그룹의 부사장인 마리사 부캐넌이 의장을 맡고 있다. 이 가이드는 2014년 9월까지 초안이 완성되고 두 차례 공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2015년 12월이나 2016년 1월께 전 세계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향후 금융회사가 다양한 자본 조달 과정, 대출이나 투자 과정, 기업의 상장 과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기업이나 프로젝트의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 집약도 등을 고려하게 될 것으로 보여 자본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금융회사들도 산업계 못지않게 온실가스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우리금융그룹·IBK기업은행·대구은행·KB국민은행 등은 이미 이러한 가이드를 기반으로 온실가스를 관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내 정보기술(IT) 시스템도 구축, 운영하는 등 오히려 금융권에서 온실가스 관리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들 금융회사들은 금융회사의 본점과 지점, 인터넷 데이터센터 등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의 관리는 물론 현금입출금기(ATM) 기계나 차량, 임직원의 출장과 관련된 온실가스도 계산하고 있으며 금융계좌 하나당 발생되는 온실가스를 계산하는 금융회사들도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신한금융그룹은 2014년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하는 세계 100대 지속 가능 기업에 2년 연속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제 기준인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에서 평가한 결과를 봐도 금융권의 온실가스 관리 수준은 타 산업계 못지않다.
그러나 한국 금융회사들도 이제는 ‘경영 활동’이 아닌 ‘금융 활동’에서 온실가스와 관련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할 때다. 한국에서도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가 바로 당장 내년으로 다가왔고 탄소세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는 기업들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기업 경영이나 프로젝트 개발 시에도 온실가스와 관련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례로 최근 몇 년간 국내 민간 발전회사들을 중심으로 대형 석탄 화력발전소 프로젝트의 개발이 성황을 이룬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탄소 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세 등 관련 규제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프로젝트의 사업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탄소배출권의 가격이나 탄소세의 수준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탄소 집약도가 높은 기업들의 생산원가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 가치 평가는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 저가 물량 공세 막을 방패 될 수도
이렇게 금융회사들이 자본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리스크를 관리하게 되면 기업 등 시장 참여자들을 효과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는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것 외에도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유도하고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창출해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기준은 중국과 개도국의 저가 물량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새로운 기술 장벽으로서의 표준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른바 샌드위치론을 타파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
돋보기 | 탄소 자산 위험 가이던스의 예상 목차
제1장 요약 및 개요(본 가이던스의 배경과 필요성)
제2장 잠재적 탄소 자산 위험의 유형(탄소 자산의 미래 사업 성과와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탄소 위험 요인 규명. 정책·규제 위험, 경제·시장 위험, 사회협약·명성 위험)
제3장 관련 산업 및 자산의 탄소 위험 규명(산업별 탄소 집약도 및 잠재적 탄소 위험 노출 가능성 규명. 석탄·석유·가스·전기·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 분석)
제4장 자본시장의 탄소 위험 이해(다양한 금융 상품 및 서비스별 잠재적 탄소 위험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 주식·프라이빗에쿼티·채권·대출·프로젝트파이낸싱·금융서비스 등)
제5장 탄소 위험 시나리오 개발(탄소 자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탄소 위험 발생 시나리오 개발 시 고려해야 할 주요 시장 요소와 이슈)
제6장 탄소 위험 시나리오 평가 방법(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다양한 탄소 위험 발생 시나리오별 잠재적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실제적·실천적 접근 방법 제시. 섀도 카본 가격 책정, 스트레스 테스트 등)
제7장 탄소 위험 관리 방법(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잠재적 탄소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적절한 전략에 대한 가이드 제공. 주식 가치 재평가, 투자 철회, 실사 강화, 상장 요건 강화 등)
임대웅 에코프론티어·EFC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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