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토토 입찰 위해 컨소시엄 추진…IT 업체 유리해 승산 있어

[비즈니스 포커스] 복권 사업 뛰어든 ‘팬택 신화’ 박병엽, 왜?
복권 사업을 통한 패자부활전일까. 지난해 9월 경영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 수탁 사업의 입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통신 단말기 전문가이자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승부사였던 그가 돌연 스포츠토토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자 의외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박 전 부회장이 그리는 재기 시나리오는 과연 무엇일까.


팬택씨앤아이 등 5개 회사 소유해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출발, 1991년부터 팬택을 이끌어 오던 박 전 부회장이 지난해 9월 결국 자신이 만든 회사를 떠났을 때 재계는 술렁였다. 비록 팬택이 2012년 3분기부터 작년 4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전체 직원의 3분의 1 수준인 임직원 800명의 6개월 무급 휴직, 과장급 이상 직원 월급 최대 35% 자진 삭감 등 사활을 걸고 회사 살리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박 전 부회장은 평소 주주총회나 제품 발표회장에 나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팬택은 내가 만든 회사인데 이걸 돈 주고 다시 사야 하다니 억울하다. 반드시 되찾겠다”며 ‘팬택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던 터라 그의 사임 결정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박 전 부회장의 사퇴 선언은 두 번째였다. 박 전 부회장은 2011년 팬택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을 졸업시켜야 하느냐가 논란이 될 당시 사퇴하겠다는 강수를 던지며 채권단을 압박해 워크아웃 졸업장을 받아내고 1주일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스마트폰 시장의 전망이 전과 달리 어둡고 건강 악화와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결정한 확고한 사퇴 의사라는 것이다.

박 전 부회장은 지난해 사퇴 직후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언젠가 팬택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는 기자의 질문에 “사임을 밝히고 가방을 챙겨서 혼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차 속에서 ‘내가 죽어도 이 동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답했다. 향후 어떤 비즈니스를 구상 중이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모른다. 나는 도전적이고 열심히 하고 좋은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다”며 “디지털 기기 제조업 대신 뭐든 돈이 되면 할 것”이라고 구상을 밝혔다. 애증으로 얽힌 휴대전화 비즈니스 대신 수익성이 뚜렷한 사업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은 바로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박 전 부회장은 본인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팬택씨앤아이를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자 입찰 참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포커스] 복권 사업 뛰어든 ‘팬택 신화’ 박병엽, 왜?
팬택씨앤아이는 1995년 대한할부금융회사로 설립됐고 2004년부터 금융감독위원회에 할부금융업 등록을 취소한 후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현재는 휴대용 이동통신 단말기 부품 개발 유통, 시스템 통합 관리 및 컨설팅 업무를 주 사업으로 한다. 팬택씨앤아이의 종속회사로는 라츠(모바일 유통 업체), 티이에스글로벌(단말기 제조 및 판매 업체) 등이 있다. 2012년 말까지 팬택씨앤아이의 종속회사엔 토스(인적자원 용역 제공 업체)도 포함돼 있었는데 지난해 2월 피앤에스네트웍스에 인수됐다. 피앤에스네트웍스는 박 전 부회장이 지분 40%를 ???있으며 그의 두 아들 성준·성훈 씨가 각각 30%씩 보유하고 있어 박 전 부회장 일가의 회사라고 볼 수 있다. 박 전 부회장은 지난해 팬택을 나왔지만 팬택씨앤아이 대표직은 유지하고 있으며 사실상 5개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다각화 위한 실무 차원 검토일 뿐”
박 전 부회장이 팬택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팬택씨앤아이는 팬택의 계열사로 불렸다. 대표이사와의 연결 고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팬택으로부터 휴대전화 제조 관련 일감을 받는 협력사 개념으로 통한다. 팬택과의 지분 관계도 없다. 그간 팬택씨앤아이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팬택에서 올리자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팬택씨앤아이는 2012년 매출 976억 원 가운데 639억 원(65%)을 팬택에서 채웠다.

어쨌든 팬택을 통해 성장해 온 팬택씨앤아이는 이제 복권 사업을 통해 더욱 몸집을 키울 계획이다. 박 전 부회장의 2라운드가 펼쳐지는 것이다. 팬택씨앤아이 측은 “실무 차원에서 사업 다각화를 위해 검토한 것은 맞다”며 “하지만 구체적으로 조직이 구성되거나 실제 입찰에 참여할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복권 사업 뛰어든 ‘팬택 신화’ 박병엽, 왜?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은 2003년부터 오리온이 줄곧 맡아 왔다. 하지만 2012년 스포츠토토와 대주주인 오리온의 임원이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정부는 경쟁 입찰 방식으로 새 업체를 정하기로 했다.

업계에서 스포츠토토는 일명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매출 283억 원에서 2012년엔 2조8435억 원으로 10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추산 매출액은 3조 원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자는 매년 매출액의 약 3%를 수수료로 챙기는데 오리온은 2012년 사업 운영비 등을 제하고도 430억 원 정도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매출 성장세가 가파르고 영업이익률도 20~30%에 달하는 만큼 업체들은 스포츠토토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정만 되면 별다른 투자 없이도 매년 두둑한 수익을 보장받기 때문에 ‘안정성’을 노리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속속 입찰 의사를 밝히고 있다. 현재 팬택씨앤아이 외에 나눔로또 수탁 사업자 유진기업, 1기 스포츠토토 시스템을 구축한 이력이 있는 LG CNS, 편의점 CU의 유통망을 내세운 보광대상·삼천리·오텍·휠라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다수의 업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관계자는 “복권 사업은 시스템 통합(SI) 기술력 보유가 관건”이라고 했다. 유통 시스템이나 판매점 운영 등은 전산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에 고려할 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은 온라인 복권 사업의 특성상 IT 업체가 유리한 만큼 팬택씨앤아이 측이 자신감을 갖고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텐센트·시나닷컴 등 대형 포털 업체들을 비롯해 징둥·당당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속속 복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박 전 부회장이 팬택 의존도가 높았던 매출 구조를 개선하고 리스크 없이 꾸준한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토토를 ‘캐시카우’로 키우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재계 일각에선 수탁 사업자의 수수료율이 기존 3.16%에서 2.073%로 하향 조정됐기 때문에 박 전 부회장이 당장의 수익성 대신 보다 큰 그림을 품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발주 사업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기업의 대외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발판으로 복권 및 스포츠 베팅 솔루션 수출 등 해외 사업 진출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3월 초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자를 뽑기 위해 사전 규격을 공개하고입찰 희망 기업들로부터 이의 신청을 받은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 중순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정식 공고를 올린 후 최종 사업자를 5월께 발표할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