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학과 분자요리학을 이용한 식재료 스타트업에 투자 몰려…‘식품 2.0 시대’ 예고

In this photo taken Tuesday, Dec. 3, 2013, CEO Josh Tetrick holds a species of yellow pea used to make Just Mayo, a plant-based mayonnaise, at Hampton Creek Foods in San Francisco. Can plants replace eggs? A San Francisco startup backed by Bill Gates believes they can. Hampton Creek Foods is scouring the planet for plants that can replace chicken eggs in everything from cookies to omelets to French toast. Funded by prominent Silicon Valley investors, the upstart seeks to disrupt a global egg industry that backers say wastes energy, pollutes the environment, causes disease outbreaks and confines chickens to tiny spaces. (AP Photo/Eric Risberg)
In this photo taken Tuesday, Dec. 3, 2013, CEO Josh Tetrick holds a species of yellow pea used to make Just Mayo, a plant-based mayonnaise, at Hampton Creek Foods in San Francisco. Can plants replace eggs? A San Francisco startup backed by Bill Gates believes they can. Hampton Creek Foods is scouring the planet for plants that can replace chicken eggs in everything from cookies to omelets to French toast. Funded by prominent Silicon Valley investors, the upstart seeks to disrupt a global egg industry that backers say wastes energy, pollutes the environment, causes disease outbreaks and confines chickens to tiny spaces. (AP Photo/Eric Risberg)
기상이변으로 얼어붙은 지구, 그 속에서 17년째 달리고 있는 열차, 그 속에서도 앞 칸과 꼬리 칸으로 나뉘어 고조되는 불평등과 이를 타파하려는 봉기…. 지난해를 달궜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를 본 한국인이라면 이런 무거운 은유 속에서도 어디선가 ‘와아~’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바로 ‘설국열차 양갱’으로 널리 알려진 ‘단백질 블록’에서…. 외부로부터의 먹을거리 조달이 불가능한 설국열차에서 좋은 식재료는 앞 칸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꼬리 칸 사람들에게는 그저 어떻게 만들었는지 불분명한 최소한의 영양 성분으로 만든 이 단백질 블록이 배급된다. 제아무리 양갱을 좋아하는 이라도 이걸 십수 년째 씹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단번에 꼬리 칸의 비애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이 양갱에도 그저 영화의 한 대목으로 넘기기에는 불편한 우리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한국도 소득이 늘면서 건강한 삶과 안전하고 질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먹을거리 조달은 이미 치열한 갈등의 씨앗이 된 지 오래다. 세계의 곡창 지대인 미국·남미·우크라이나 등지에는 가뭄·홍수·혹한이 번갈아 몰아치면서 벌써부터 공급 적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3년 만에 엘니뇨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각종 농산물 선물 가격도 급등세다. 앞으로 기후 급변동이 이어지고 지구촌의 주민들이 90억 명을 향해 늘어나는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어서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살림살이가 좀 나은 국가와 계층이 좋은 먹을거리를 차지하고 가난한 국가와 계층은 ‘양갱’을 씹는 미래는 아주 가까운 내일의 모습일 수 있다.



먹을거리 조달 쟁탈전 가속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녹색혁명을 이룩했던 것 이상의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생산성이 높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물과 양분 소비를 최적화한 새로운 농작물 재배법, 가축 사육법을 만드는 것이 물론 그 한 방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함께 인간의 식재료 제조 기술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여유로운 삶의 상징으로 육식 문화가 깊이 박혀 있다. 마블링이 잘 된 고기를 숯불에 구워야 회식을 잘했다는 느낌이 들고 멀리 캠핑에 나가서도 삼겹살·비어치킨·스테이크 정도는 먹어 줘야 뭔가 잠을 이룰 것만 같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쇠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나 사치스러울 정도로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쇠고기 1kg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1만5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며 사육 과정에서 소가 배출하는 분뇨·방귀·트림도 만만치 않게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터전을 파괴해 만들어야 할 목초지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색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의 식욕과 식문화의 근간은 건드리지 않되 여기에 쓰이는 식재료를 지구환경에 충격도 덜하고 우리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혁신 제품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냥 들어서는 기존의 친환경·유기농 농산물과 무엇이 다른지 알쏭달쏭할 테니 예를 통해 살펴보자.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햄턴크릭(Hampton Creek)이라는 스타트업이 내놓은 식재료로 ‘저스트 마요(just MAYO)’라는 이름의 마요네즈가 있다. 언뜻 봐도, 샐러드에 찍어 먹어 봐도 그냥 평범한 마요네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마요네즈는 여느 마요네즈와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달걀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요네즈는 달걀노른자에 식초와 식용유를 섞어 물과 기름이 섞여 있는 일종의 유탁액(에멀전)이다. 찐득하면서도 고소하고 시큼한 맛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혹된 식재료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일본에는 마요네즈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마요라’라는 말까지 따로 있겠는가.

햄턴크릭을 설립한 생화학자 조시 클라인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졌다. 마요네즈에서 달걀노른자는 유용한 단백질과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공급하고 기름을 물과 섞어주는 역할을 한다. ‘굳이 콜레스테롤까지 높은 달걀노른자를 쓰지 않더라도 훨씬 효율적인 식물을 이용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클라인의 아이디어였다. 이를 위해 햄턴크릭은 3000여 종의 식물에 함유된 단백질 성분을 조사하고 이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 승인을 받은 것들을 추려 냈다. 달걀의 역할을 완벽하게 식물성 재료로 대체한,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는 새로운 마요네즈를 만든 것이다.

조리 업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 ‘분자요리학(molecular gastronomy)’이라는 분야가 성장해 왔다. 음식의 조리 과정과 식감,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 독특한 맛과 식감을 창조해 내려는 것이었다. 미슐랭 별 3개짜리 레스토랑 엘불리(elBulli)와 수석 셰프 페란아드리아 등을 통해 어느새 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전통의 식재료와 요리 과정의 관념을 파괴하는 과학적인 접근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빌 게이츠·제리 양, 투자 대열 동참
실제 최근 나오고 있는 대체 식재료들은 맛이 상당히 좋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햄턴크릭은 ‘저스트 마요’에 이어 역시 달걀이 필요 없는 ‘저스트 쿠키스’라는 쿠키믹스를 내놓고 있으며 현재는 셋째 제품으로 식물성 원료로 만든 달걀 물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 이를 프라이팬에 부어 요리해 보면 맛과 영양이 흡사하면서 역시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는 알고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2009년에 설립된 비욘드미트(Beyond Meat)는 식물성 단백질과 섬유질·곡물을 이용해 대체 닭고기 제품을 내놓고 있는데, 이들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봐도 실제 닭고기와 구분이 안 되고 영양 면에서는 오히려 더 우수하기까지 하다.

이런 대체 식재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식물성 원재료에 대한 연구도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기존에는 식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일부 종류의 콩만 주로 생산됐지만 점차 다양한 식물로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앞으로 신품종의 개발 및 보급 여하에 따라 생산 단가를 훨씬 낮출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체 식재료가 그저 자기 만족적인 대용품이 아니라 오히려 식생활의 경험을 한층 높여주며 지구환경 보전의 가치, 더 나아가 경제성까지 잡아낼 수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서게 됐다. 이처럼 식문화의 뼈대를 유지하며 식재료 혁신을 통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음식에 벌써부터 ‘식품 2.0’이라는 단어가 나붙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신개념 식재료들이 금세 주류로 도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시장의 인식이 개선되고 어느 순간 지구촌의 농업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파고가 겹친다면 갑작스럽게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대안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한 가능성에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지는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햄턴크릭은 올해 2월 추가로 투자 자금 2300만 달러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는데 놀랍게도 주요 투자자는 바로 홍콩의 부동산 재벌 리카싱과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빌 게이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식품의 미래’라는 글에서 이러한 기업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적었다. 시대의 변화는 물론 돈 냄새에도 민감한 쟁쟁한 명사들이 수많은 생명공학 기업에 이어 이런 식품 혁신 기업들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대목이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미래를 지향한다면 과학기술을 접목한 식재료 혁신에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단계까지 발전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풍부한 혁신의 토양은 이미 정보통신기술(ICT)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한국 또한 먹을거리 분야에 쏟아지는 관심과 가치에 다양한 재능과 지식이 어우러져 신제품·신산업으로 분출돼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