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규제로 쓸모없는 자산 빼면 기업 가치 반 토막, 정보 없어 투자자 무방비

A pumpjack is silhouetted against the setting sun in Oklahoma City, Tuesday, March 22, 2011. (AP Photo/Sue Ogrocki)
A pumpjack is silhouetted against the setting sun in Oklahoma City, Tuesday, March 22, 2011. (AP Photo/Sue Ogrocki)
“석기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은 돌멩이가 없어서가 아니다. 석유시대도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부 장관을 지냈던 세이크 아메드 자키 야마니(Sheikh Ahmed Zaki Yamani)의 유명한 말이다. 그는 1970년대 석유파동을 보면서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면 수소 연료 등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결국 석유에 대한 수요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로 이렇게 말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에너지 등 경제활동 전반을 제약하고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른바 탄소 제약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중국 가세로 온실가스 규제 탄력
이러한 탄소 제약 시대를 가져오는 요인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기후변화를 둘러싼 국제 협상일 것이다. 1992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후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1997년 국가별 배출량을 할당하는 교토의정서에 합의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당시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미국의 불참으로 교토의정서는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몇몇 선진국에 국한되는 절름발이 협약이 됐고 뒤이어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시도했지만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등장한 중국 등의 소극적 자세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경영전략 트렌드] 천문학적 좌초 자산…‘탄소 거품’ 터지나
그런데 최근 지지부진하던 국제 협상에 중요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10년 멕시코 칸쿤(Cancun)에서 지구의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하로 안정화하자는 2009년 코펜하겐합의를 각국이 확약한 이후 2013년 바르샤바회의에서는 2015년 파리회의까지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합의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간 온실가스 감축 협상에 소극적인 입장에 섰던 미국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 대비 1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구체화하는 방안으로 지난 6월 2일 ‘청정발전계획(Clean Power Plan)’을 발표, 2030년까지 발전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은 2005년 대비 30%, 황산화물(SOx)과 질산화물(NOx)은 25%씩 각각 감축하고 이를 위해 2020년까지 2012년 석탄 발전 용량의 5분의 1에 달하는 60GW 용량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탄소 제약 경제를 앞당기는 또 다른 동인은 바로 13억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대기오염이다. ‘세계의 공장’을 자임해 오던 중국은 최근 수년간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강력한 화석연료 규제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갈수록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국의 대기오염의 주범은 바로 미세 먼지인데, 그 주요 원인이 바로 석탄 발전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국 미세 먼지(PM10)의 15~30%(겨울에는 60%), 극미세 먼지(PM2.5)의 17%, 매연의 주성분인 SOx와 NOx의 83%와 64%가 각각 석탄 발전에 기인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에너지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2020년까지 탄소 원단위(carbon intensity)를 2005년 대비 40~45%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중국은 11차 5개년 계획 기간(2006~2010년)에 이미 85GW 용량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했고 2015년까지 에너지 총소비량을 연간 40억 TCE(석탄 환산 톤)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한 2013년 말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미세 먼지 기준인 35㎍·㎥을 달성하지 못한 29개 지방정부는 모두 석탄 소비 총량 규제와 미세 먼지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국가들이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안을 실천하기에 이르자 2015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세계적 합의에 대한 전망 또한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기존의 에너지 기업들에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이른바 ‘탄소 거품(carbon bubble)’에 따른 기업 가치의 하락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새 광구 찾기에 열 올리는 에너지 기업들
탄소 거품은 이산화탄소의 실제 가치가 반영돼 있지 않아 기업 가치가 과대평가돼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탄소 추적자 이니셔티브(Carbon Tracker Initiative)가 발표한 보고서(‘Unburnable Carbon?Are the world’s financial markets carrying a carbon bubble?’, ‘Unburnable carbon 2013: Wasted capital and stranded assets’ 등 참조)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오르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태울 수 있는 화석연료, 즉 탄소 예산(carbon budget)은 이산화탄소톤으로 총 900~1075기가톤에 불과한데 반해 현재 에너지 기업이 보유한 총 매장량은 2860기가톤이기 때문에 결국 매장량의 65~70%는 시장 가치가 대차대조표상의 가치보다 낮은 좌초 자산(stranded asset)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탄소 포집 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에 따른 추가적인 화석연료 사용량은 2050년까지 125기가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이 가운데 상장된 기업이 보유한 매장량만 보면 확인된 것만 762기가톤으로 세계 총 매장량의 25%에 달하고 잠재 매장량을 포함하면 1541기가톤이 된다. 이들 기업에 탄소 예산의 25%를 할당한다고 가정하면 결국 이들이 보유한 매장량의 70% 정도는 태울 수 없는, 즉 자산 가치가없는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 금융 기업의 추산에 따르면 화석연료 기업이 좌초 자산으로 입게 될 손실은 향후 20년간 28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FILE--Chinese workers install wind turbines in Qidong city, east Chinas Jiangsu province, 30 September 2010.



Chinas total wind power capacity is expected to reach 40 million kilowatts by the end of 2010, an increase of 55 percent from one year earlier, making the country the global leader in terms of total installation capacity. As of 2009, Chinas wind power capacity has doubled for five consecutive years, jumping from the worlds tenth position to the top, according to Li Junfeng, deputy director of the Energy Research Institute under the National Development and Reform Commission. However, wind power only accounts for 5 percent of Chinas total installation capacity for power generation, and 2 percent of the total power generated. Wind power is far from realizing its full potential in China, there is still tremendous room for growth, said Li, adding that the annual growth of wind power capacity will be kept at 15 to 20 million kilowatts over the next ten years. He predicted that Chinas installation capacity of wind power would hit 90 to 150 million kilowatts by 2015.
--FILE--Chinese workers install wind turbines in Qidong city, east Chinas Jiangsu province, 30 September 2010. Chinas total wind power capacity is expected to reach 40 million kilowatts by the end of 2010, an increase of 55 percent from one year earlier, making the country the global leader in terms of total installation capacity. As of 2009, Chinas wind power capacity has doubled for five consecutive years, jumping from the worlds tenth position to the top, according to Li Junfeng, deputy director of the Energy Research Institute under the National Development and Reform Commission. However, wind power only accounts for 5 percent of Chinas total installation capacity for power generation, and 2 percent of the total power generated. Wind power is far from realizing its full potential in China, there is still tremendous room for growth, said Li, adding that the annual growth of wind power capacity will be kept at 15 to 20 million kilowatts over the next ten years. He predicted that Chinas installation capacity of wind power would hit 90 to 150 million kilowatts by 2015.
더 큰 문제는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200대 기업들은 새로운 광구를 개발하기 위해 2013년에만 6740억 달러의 돈을 투자했고 1260억 달러를 배당으로 챙겨 갔다는 점이다. 향후 10년간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결국 7조 달러에 가까운 돈이 태우지도 못할 화석연료를 확보하는 데 날아갈 판이다.

이런 기업들은 세계 주요 증시에 상장돼 투자자들의 돈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 2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4조 달러, 부채 총액은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탄소 거품을 걷어내면 이들의 기업 가치는 40~60% 정도 낮아지고 신용 등급도 하향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이산화탄소와 미세 먼지 배출이 많은 석탄 기업의 대부분이 호주·런던·홍콩·상하이 등에 상장돼 있어 이들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영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탄소 정보 공개 요구 주주 운동 활발
이런 탄소 거품이 터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또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EU에서는 기업들이 재무 정보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과 같은 비재무적 정보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새로운 ‘회계 지침(accounting directive)’을 지난 4월 15일 통과시켰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변화 리스크의 중대성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석유 회사들에 확인된 원유 매장량의 순현재가치(NPV)를 주주들에게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노력 또한 점차 더 강력해지고 있다. 세리즈(CERES)나 애스유소(As You Sow) 같은 비영리기구들은 투자자들을 규합해 엑슨 같은 에너지 기업들에 좌초 자산에 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주주 결의안을 제출했고 탄소 정보 공개 프로젝트(CDP)가 주도하는 기후정보공개표준화위원회(Climate Disclosure Standards Board)는 기후 관련 정보 보고의 표준화된 틀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기후변화세계투자자연맹(Global Investor Coalition on Climate Change, GICCC)은 금융회사에 저탄소투자등록제(Low Carbon Investment Registry)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투자자들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먼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벌어들인 이윤을 화석연료를 개발하는 데 재투자하는 기존의 사업 모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탄소 제약 시대에 걸맞게 재생에너지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게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 수요만 연간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둘째, 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통상 투자자들에게 리스크는 벤치마크(비교 기준)보다 수익률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떨어지는지로 평가한다. 이에 따라 탄소 거품처럼 기업 가치 평가액 자체가 하락하는 리스크는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벤치마크 대비 자신의 주가가 얼마인지만 보고 리스크를 관리할 때 어느 날 갑작스레 탄소 거품이 터지면 그 기업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지구를 살린다는 당위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의 흥망을 결정하는 경제적 열쇠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기 위해 얼마 전 기업들에 배출권 할당을 위한 안을 제시했는데 많은 기업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반발이 현명한 태도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 된 것 같다. 탄소 제약 시대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회피하거나 거역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향적 자세가 한국 기업들에 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