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판매 성적은 ‘해적’·‘군도’에 밀려…국내선 600만 명이 손익분기점

[비즈니스 포커스] 극장가 강타 ‘명량 돌풍’ 해외로 이어질까
지난 5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CJ E&M·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미디어플렉스 등 국내 영화 제작사 부스가 설치됐다. 각 제작사 부스에서는 해외 배급사들과 선판매를 위한 협상이 진행됐다. CJ E&M의 ‘명량-회오리 바다’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바다로 간 산적’, 쇼박스미디어플렉스의 ‘군도 민란의 시대’ 등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가 해외 바이어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해외 선판매에서는 ‘해적’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낳았다. 북미·일본·독일·벨기에·네덜란드·폴란드·멕시코·대만·태국 등 총 15개 국가에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쇼박스미디어플렉스도 ‘군도’를 북미·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스위스·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대만·인도네시아 등과 배급 계약을 했다. 반면 ‘명량’은 칸에서 이탈리아와 터키 등 2개국과의 계약이 다였다. ‘명량’은 역사물인 까닭에 판타지물인 해적에 비해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덜 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다.

그리고 8월 세 영화 모두 국내 개봉된 현재 이 영화들은 올여름 한국 영화 시장을 휩쓸고 있다. 특히 7월 30일 개봉된 ‘명량’은 역대 최고의 오프닝 관객 수, 최고 평일 관객 수 등 연일 영화사를 새로 쓰며 흥행 대박을 기록하고 개봉 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관객 68만 명, 평일 관객 86만 명, 1일 관객 122만 명 등 기존 ‘아바타’, ‘설국열차’ 등 1000만 명 영화의 모든 기록을 넘어섰다.

‘명량’의 제작비는 150억 원으로 마케팅비까지 포함하면 약 180억 원에 달한다. ‘명량’은 CJ E&M이 투자 배급을 맡고 김한민 감독이 대표인 빅스톤픽쳐스가 제작을 맡았다. 대성창업투자 등 창투사들이 부분 투자를 맡았다. 주목할 점은 KDB산업은행도 이 영화의 간접투자에 나섰는데 KDB산업은행은 지난해 초 CJ E&M, 국내 보험회사와 함께 6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이 중 300억 원을 투자했다. 이 펀드는 ‘명량’ 등 CJ E&M이 제작하는 모든 영화에 투자돼 ‘명량’ 흥행에 따라 KDB산업은행도 일부의 수익을 확보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포커스] 극장가 강타 ‘명량 돌풍’ 해외로 이어질까
블록버스터급 150억~200억 투자
‘명량’에 투입된 투자금에 대한 손익분기점(BEP)은 고객 한 명이 영화를 봤을 때의 수익(객단가)이 3500원이라면 관객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명량’은 7월 30일 개봉 이후 8월 8일까지 800만 명을 동원해 BEP를 넘어섰고 1000만 관객도 돌파할 전망이다. ‘명량’을 통한 CJ E&M의 수익에 대해 한승호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명량’이 관객 800만~900만 명을 모은다면 CJ E&M 측의 이익 규모는 34억~41억 원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블록버스터급도 약 150억~200억 원 사이에서 투자액 규모를 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영화 한 편에 500만 명이 들면 제작자·투자자 몫은 180억~200억 원, 1000만 명은 360억~400억 원이다. 즉 200억 원을 투자했을 때 최소 500만 명은 모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500만 명에서 1000만 명 사이의 관객이 들면 수익적으로 성공한 영화로 분류되고 1000만 명이 넘으면 초대박 영화 반열에 오른다.

이러한 계산법에 따라 ‘명량’뿐만 아니라 ‘해적’, ‘군도’ 등도 200억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투자가 이뤄졌다. 한국 영화의 산술적 흥행 법칙을 넘어 과감한 투자에 나섰던 영화들도 있다. 지난 5년간 200억 원 이상 투자된 블록버스터는 ‘설국열차(450억 원)’, ‘마이웨이(350억 원)’, ‘미스터고(300억 원)’ 등이 있었다. 이 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설국열차’뿐 나머지 영화는 모두 국내 흥행에 참패하면서 제작자·투자자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의 손해를 입혔다.

‘명량’, ‘해적’, ‘군도’ 모두 사극인데 사극은 어느 정도 수익성이 증명된 투자 모델로 국내 영화계에는 통하고 있다. 세 영화 모두 2~3년 전에 기획돼 이후 제작된 것으로 볼 때 2~3년 전에 개봉된 사극영화가 흥행의 롤모델로서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최종병기 활(2011년)’,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관상(2013년)’ 등의 흥행은 사극이 충무로의 노다지임을 입증했었다. 허남웅 영화 평론가는 “한국 영화 산업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블록버스터에 대한 수요가 큰데, 어른부터 아이까지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데 사극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1000만 관객을 바라는 욕망이 사극이 지닌 장점과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명량’의 흥행으로 투자사들의 주가도 쑥쑥 오르고 있다. 8월 7일 오전을 기준으로 ‘명량’의 배급·투자사인 CJ E&M은 전 거래일보다 5.62% 상승했고 같은 시간 코스닥 시장에서 또 다른 투자사인 대성창투는 전날보다 15% 올랐다. 한편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CJ CGV도 유가증권시장에서 4.06% 상승했다.

국내 영화 시장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고 장기적 전망에서 성장 모멘텀을 해외시장에서 찾고 있다. 최근 한국 영화는 해외 판매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신뢰를 쌓으면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CJ E&M은 8월 15일 ‘명량’을 미국 전역 30개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국내 흥행 성적에 비해서는 소박한 해외 개봉이다. 배급사 측은 “다만 ‘명량’이 ‘설국열차’처럼 따로 북미 배급사를 통해 글로벌 프로젝트 형식으로 개봉되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소규모로 개봉돼 교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명량’을 향한 반응이 좋으면 이후 개봉관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칸에서 선판매 최다 기록을 세운 ‘해적’은 해외 개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 배급도 현지 배급사인 웰고USA를 통해 북미 전역에 오는 9월 12일 개봉할 예정이다. 아시아 영화를 북미에 배급하는 웰고USA는 ‘변호인’, ‘도둑들’을 현지 배급한 바 있다. ‘해적’은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CG) 퀄리티와 규모감, 화려한 액션 신 등으로 기대가 큰 작품”, “칸 마켓에서 본 한국 사극 블록버스터 중 가장 오락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흥행은 제작사·투자자들에는 ‘플러스알파’ 수준으로 인식될 뿐 수익적인 대박을 기록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시장에서 한국 영화는 케이팝 등 ‘한류’에 비해 아직은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지난해 국내 개봉 이후 약 1년에 걸쳐 지금까지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개봉되고 있다. 유럽에서 개봉되면서 관심을 높였지만 영화 관객이 많은 인도와 중국 등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해외 수익 파이 키워야”
최근 ‘설국열차’는 미국에서 개봉돼 유력 언론 매체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미국 상영관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6월 27일 8개관으로 시작한 스크린 개수도 7월 4일부터 미국 전역 250개관으로 확대했다. 이는 ‘설국열차’가 처음에 적은 수의 개봉관에서 시작해 관객 반응에 따라 스크린 수를 늘려가는 롤아웃 방식으로 배급사와 계약했기 때문이다.

임지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는 “블록버스터는 국내 1000만 명은 찍고 해외에서도 ‘중박’은 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저예산 영화를 포함해 2012년 기준 331편이 수출될 만큼 수출 편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해외에서 흥행을 기록한 사례는 아직 미미하다.

오랜만에 ‘명량’ 등 국내 대박 영화가 기대되는 가운데 국내 흥행에 만족할 게 아니라 해외 흥행을 통해 대규모 수익을 거두고 다시 블록버스터 제작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