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론자 김기범 사장 전격 퇴임…조직 슬림화 원한 지주사와 정면충돌

[비즈니스 포커스] CEO 교체 부른 대우증권·산은지주 갈등
김기범 KDB대우증권 사장이 사임했다. KDB대우증권은 7월 31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김 사장의 사임 안건을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앞서 KDB대우증권과 KDB금융지주 관계자들은 7월 29일 “김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사장의 사임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전 사장은 2012년 6월 말 취임했다. 당초 보장됐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임기가 아직 8개월여 남았다.

KDB대우증권 내부에서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한 KDB대우증권 직원은 “그는 특히 직원 간의 소통을 중시하며 ‘내실’을 다졌다”고 말했다. 일례로 매달 직접 마이크를 잡고 전 사원들에게 그간의 경영 실적을 보고하며 비전을 강조했다. 이 직원은 “전부라곤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임기 중 모든 직원의 조사(弔事)에 꼭 직접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직 안에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상반기 실적 증권사 중 ‘톱’
김 전 사장에 대한 대내외 평가는 비교적 호의적이다. 김 사장은 풍부한 해외 업무 경험을 보유한 국제금융 전문가답게 KDB대우증권의 아시아 금융 투자 전문 회사로서의 역량을 성공적으로 축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증권가 구조조정 속에서도 직원들의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인사 실험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가 이끌었던 KDB대우증권은 지난 1분기(4~6월)에 이어 2분기(7~9월)에도 증권사 중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 KDB대우증권의 경상이익은 580억 원으로 추정된다”며 “1분기에 이어 증권사 중 가장 좋은 실적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해외 채권에 이어 국내 채권 부문에서 이익을 키우고 있고 외화채권이나 대출도 증권사 중 가장 많다”며 “고객 자산 확대와 해외 사업 확대 전략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금융 산업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기대된다”며 “새로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체계에서 KDB대우증권의 비율은 1519.8%로 올라 위험 자산 투자 여력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왜 김 전 사장은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않고 ‘증권업계의 맏형’ 자리인 KDB대우증권의 수장직에서 물러났을까.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결국 대주주인 KDB금융지주와의 갈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업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로 지주사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KDB대우증권의 해외 비즈니스 확대다. 김 사장이 2012년 6월 취임 이후 추진한 핵심 경영전략인 글로벌 사업을 놓고 KDB금융지주와 마찰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인도네시아 등 성장성이 큰 이머징 마켓에는 현지에 직접 진출해 브로커리지·자산관리·투자은행(IB)을 아우르는 종합 증권사로 육성하고 선진국에선 부실채권·부동산 등 개별 프로젝트를 발굴해 자기자본투자(PI)를 확대하는 ‘지역별 맞춤 전략’까지 수립해 놓았다. 하지만 KDB금융지주는 해외 사업 리스크가 크다는 등의 이유로 여러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었다.

또 다른 문제는 KDB대우증권의 인력 구조조정 수준이다. 증권업 침체와 실적 부진 등에 따라 상당수의 증권사들이 이미 구조조정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구조조정 대신 비용 절감을 택했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가 비용 절감의 핵심이다. KDB대우증권은 7월 8일 직원 대상의 찬반 투표를 통해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고 단수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에게 총 1000억~1100억 원 규모의 위로금이 지급되긴 하지만 매년 300억 원 정도의 인건비가 절감된다.

김 전 사장은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리테일 점포를 줄이는 것과 정반대로 이를 ‘늘리겠다’는 역발상 정책도 내놓았다. 매니저 1명, 프라이빗 뱅커(PB) 1명, 업무팀 2명으로 구성된 미니 지점인 ‘스토어(store)’를 도입한 것이다. 실제로 KDB대우증권의 지점은 지난해 6월 105개에서 9월 100개로 줄었지만 이후 다시 1개가 늘었다. 여기에 ‘스토어’까지 포함하면 지점은 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빅 3’ 중 삼성증권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했고 우리투자증권이 NH농협증권과의 합병을 앞두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KDB대우증권의 ‘역발상’ 전략은 분명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지주사, 성장보다 매각에 우선순위
그러면 왜 이런 선전에도 불구하고 지주와 갈등이 생겼을까.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산은금융지주로선 KDB대우증권이 ‘지나치게 잘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금융지주는 KDB대우증권 지분 43%를 가진 최대 주주다. 산은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정책금융 기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민영화’가 큰 목표였던 이명박 정부와는 정반대 노선이다. 강만수 KDB금융지주 전 회장 당시 분리됐던 정책금융공사도 2015년 1월 1일 재통합된다.
[비즈니스 포커스] CEO 교체 부른 대우증권·산은지주 갈등
[비즈니스 포커스] CEO 교체 부른 대우증권·산은지주 갈등
지주로선 KDB대우증권과 같은 일종의 ‘수익 사업’을 키우기보다 빨리 매각해 투자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더 중요해진 것이다. KDB대우증권의 수익성이 너무 좋아져 덩치가 커지면 매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성장’보다 ‘구조조정’을 통해 매각이 용이한 슬림한 회사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KDB대우증권의 연내 매각 추진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 당국은 지난해 정책금융 역할의 재정립 방안에서 산은캐피탈·KDB자산운용·KDB생명보험 등 자회사는 조기 매각하고 KDB대우증권은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한 뒤 매각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자회사 매각 작업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산은은 8월 8일 KDB대우증권과 함께 ‘또 다른 수익 사업’인 KDB생명의 매각 공고를 내고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KDB대우증권을 더 키운다’는 김 전 사장의 전략과 ‘KDB대우증권의 조직을 슬림화해야 빠른 매각이 가능하다’는 지주 측의 갈등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이 때문인지 업계에서는 이를 계기로 산은지주가 KDB대우증권에 대한 친정 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후임 사장은 “매각 작업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산은지주와의 궁합이 잘 맞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 KDB대우증권의 신임 사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은 전직 KDB대우증권 출신 혹은 내부 인물들이 대다수다. KDB대우증권의 신임 사장은 오는 9월 15일까지 사장 후보자가 정해지고 같은 달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임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