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상도 25cm급 위성사진 판매 허용… ‘디지털 파놉티콘’ 우려

[IT 돋보기] 구글 지도로 현관 등 확인하는 시대
지난 6월 11일 미국 정부는 상업 위성이 촬영할 수 있는 이미지의 해상도를 50cm급에서 25cm급으로 완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구글에 위성사진을 공급하고 있는 디지털글로브의 집요한 로비 덕이었다. 그리고 바로 전날인 10일 구글은 위성회사 스카이박스이미징을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미국 정부는 그간 50cm급 이상 위성사진의 상업용 판매를 허가하지 않았다. 자칫 테러 집단들에 위성사진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50cm급보다 더 고해상도인 25cm급 위성사진은 차량의 형태나 도로 위의 글자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 군사 시설의 구체적인 규모나 병력 흐름을 파악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디지털글로브의 손을 들어줬다.

디지털글로브가 촬영한 위성사진의 위력은 여러 차례 검증됐다. 미국 정부는 디지털글로브가 판매한 위성사진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은거지를 추적했다.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기 추락 현장 사진도 디지털글로브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디지털글로브는 지난 8월 13일부터 이보다 더 정밀한 위성사진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알려져 있다시피 구글은 디지털글로브의 중요한 고객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구글어스·구글맵스는 디지털글로브로부터 구매한 위성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이제 구글은 보다 ‘유익한’ 서비스를 위해 25cm급 위성사진을 구글어스와 구글맵 등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몇 년 뒤면 스카이박스를 통해 자체 촬영도 가능해진다. 애초 스카이박스를 인수한 목적이기도 하다.

구글이 스카이박스를 인수할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우려를 표시했다. “현관 등을 켜 놓고 온 것은 아닌지, 10대 자녀가 몰래 차를 몰고 나간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 구글 지도를 확인해 보면 되는 날이 몇 년 후에 실현될 것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구글은 당장 디지털글로브의 31cm급 위성 이미지를 구매해 각종 서비스에 적용할 기세다. 구글이 인수한 스카이박스는 2018년까지 위성 24개를 우주에 쏘아 올려 하루 3차례 지구 전체를 촬영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상도 수준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고해상도 영상 촬영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보태 미국 정부가 규제를 조금 더 완화한다면 전 세계 시민의 얼굴을 위성사진으로 촬영해 추적하는 작업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프라이버시다. 이론상으로 구글은 당장이라도 초정밀 영상과 이미지를 활용해 어떤 사람이 어떤 차량을 타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식별해 낼 수 있다. 여기에 구글이 지닌 각종 개인 데이터들과 구글플러스에 올려진 이미지 등이 더해진다면 무시무시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낼 수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이 현실 속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한 인터넷 매체는 “이제 새로운 기술 개발이 프라이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열린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썼다. 더 이상 구글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제 몇 년 후에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혹시 지금 감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우려는 현실에 더욱 가까워졌다. 구글은 당장 내년부터 당신의 얼굴을 우주에서 내려다볼지 모른다. 맑디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구글의 감시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이미 성큼 와 있다.


이성규 블로터닷넷 팀장 dangun76@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