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해체 논란 재점화… “진실 바로잡고 국민 오해 풀겠다”

[비즈니스 포커스] 15년 만에 판도라의 상자 연 김우중 회장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지 정확히 15년이 되는 지난 8월 26일, 대우의 명예 회복 프로젝트의 포문이 일제히 열렸다. 항변의 수단으로는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증언을 집약한 회고록 성격의 서적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출간이다. 이날 정식 출간된 이 책은 대우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선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지난 4년간 김 전 회장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이 책은 1999년 대우의 구조조정과 그룹 해체에 대한 그의 분석을 기반으로 대우의 흥망성쇠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날 신 교수와 대우 측은 오전 출간 기자 간담회를 열고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는 대우 출신 인사들이 매년 모이는 ‘대우포럼’에서 대우의 세력을 다시 한 번 집결할 것을 결의했다. 대우 명예 회복 프로젝트의 추진 주체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다. 대우그룹 출신 38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이 조직이 출간 작업부터 흩어진 대우의 세력을 다시 모으는 데 주도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에 출간 기념회와 대우포럼에는 이례적으로 수많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대우맨들이 대우포럼의 좌석을 가득 채웠다. 대우맨들에게 배포된 유인물에는 “객관적인 재평가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우와 대우인들 모두의 명예를 위한 일인 만큼 앞으로 많은 관심과 동참을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협조 요청 사항으로 책 구매와 주변 전파,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독자 투고, 서평 등 대외 활동 등이 명시돼 있었다.


김우중 회장, “대우 해체 과연 합당했나”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무엇보다 김 전 회장의 등장. 수년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김 전 회장의 등장 소식에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집중됐다. 대우포럼에서 신 교수의 강연이 끝나고 오후 7시쯤 그의 도착 소식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대우맨들이 모두 일어서 우레와 같은 박수로 과거의 수장을 맞이했다. 이제는 산수(傘壽)를 앞둔 고령의 김 전 회장은 부축을 받으며 입장했지만 단상에 올라서는 강한 어조로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억울함도 비통함도 그리고 분노도 없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감수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잘못된 사실은 제대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이 정당히 평가받고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 그는 “한국 경제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신 교수)에게 처음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며 “대우 해체에 대해 이제부터 내가 아니라 신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합당하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신 교수와의 대화에서 국가와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담아 달라고 (신 교수에게)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중간에 감정에 북받쳐 오르는지 말끝을 흐리기도 했고 대우맨들의 중간중간 큰 박수에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김 전 회장은 신 교수를 통해 대우 해체의 재해석에 큰 기대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 책이 출간되기까지 김 전 회장이 직접 원고를 검토하며 꼼꼼히 챙겼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 전 회장 측은 15년 전 대우그룹의 몰락이 정부의 ‘기획 해체’이며 김 전 회장과 대우그룹은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우중과의 대화’를 꼼꼼히 읽어 보면 당시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강봉균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을 겨냥하고 있다. 두 경제 관료가 회고록과 공식 입장 등을 통해 밝힌 대우 해체의 배경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주요 쟁점과 주장을 살펴보면 우선 당시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 대상 구조조정의 실질적 효과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신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의 주된 결과로 기업 부채비율 감소를 말한다. 정부가 기업들에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했고 구조조정 결과 현재 100%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기업 부채는 현재 가계 부채로 옮겨졌을 뿐이며 당시 국내 자산을 해외로 헐값에 매각한 결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최대 주주는 외국자본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바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구조조정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도 당시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는 등의 정부의 잘못된 구조조정 결과”라고 짚었다.

이 부분에 대해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김 전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에서 환율 관리를 잘 못하고 그걸 기업 부실이라고 몰아붙인 것도 크다. 환율 때문에 부채비율이 올라간 것을 기업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나. 정부가 환율 관리를 잘 못해 기업이 피해를 당한 거지, 기업이 외환위기를 일으킨 게 아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 반대가 그룹 해체로?
그리고 당시 IMF 체제 탈출이 지상 과제였던 경제 관료들에게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 방향을 거부하던 대우는 눈엣가시가 됐고 갈등이 생겨났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결국 갈등은 돈줄 죄기로 이어졌고 대우는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수출 관련 금융이 막힌 것”이라며 결국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여기서 찾았다. 수출금융이 막혀 갑자기 대우가 추가로 필요해진 자금만 16조 원 정도로 파악된다.

강봉균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2005년 ‘김우중 회장 귀국에 대한 입장’ 등에서 ‘국제적 경고를 무시하고 한국 정부가 특정 재벌 기업에 정책적 금융 지원을 할 수 없었다’란 언급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책을 통해 반박했다. “당시 우리가 수출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던 것에 대해 정부나 언론에서는 대우가 무슨 큰 특혜를 요구하는 듯이 얘기했는데, 그게 절대 아니다. 통상적인 금융을 정상화해 달라는 것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8년 상반기 국내 은행들이 자신을 구조조정한다고 수출금융을 해 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반기 정상화된 다음에는 수출금융도 정상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김 전 회장의 IMF 체제 극복론은 ‘수출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경제 관료들의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 위기 극복론과 충돌했다. 정부는 자산을 매각해 구조조정하라고 압박을 넣었지만 대우는 이에 반대했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수출해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자산을 팝니까”라며 “당시 GM과 합작해 50억~70억 달러를 국내에 들여오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것만 되면 우리가 제일 모범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2011년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GM이 1998년 7월 협상을 깼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책을 통해 “(합작 논의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 후에도 GM이 협상을 깬다고 우리에게 통보한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GM과의 합작 결렬이 당시 대우의 유동성 위기 상황을 GM 측이 좀 더 두고 보자는 쪽으로 생각했거나 정부 관계자들이 GM과의 협상을 방해했을 가능성을 김 전 회장은 제기했다. 이 부분은 대우 해체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다.

결국 GM과 대우의 합작이 무산됐다고 판단한 정부는 대우그룹 해체 작업에 착수했고 대우차를 헐값에 GM에 넘겼다는 것이다. 책은 대우를 인수한 GM이 소형차 세그먼트를 확보하고 후에 중국 시장 등에서 큰 성공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한국 정부가 우리 유동성을 규제하고 대우차 부실이라면서 헐값에 팔아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봤고 GM 좋은 일만 해줬던 것”이라고 규정했다. 대우차를 잘못 매각해 한국은 약 21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밝혔다.


김 회장의 주장에 재반박도 이어져
대우차 매각과 대우그룹 해체에 대한 이러한 쟁점에 곧바로 논란의 불이 붙었다. 대우 측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강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즉각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는 언론을 통해 “몇몇 경제 관료의 음모로 대우를 해체했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대우가 기획 해체됐다는 김 전 회장의 주장은) 스스로 위안으로 삼으려는 것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대우가 망한 건) 시장에서 버려졌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한국GM도 입장을 내놓았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나도 2028년에 한국에 다시 와 자서전을 내겠다”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우자동차 헐값 매각’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8월 27일 다마스와 라보 재생산 기념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대우차 인수를 결정했을 때 당시 38만8000대의 차량을 생산했는데 지금 한국GM은 20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고 당시에는 직원 수가 8200명이었는데 지금은 2만 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우차는 80여 개국에 수출했지만 지금은 1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며 “우리(한국GM)는 한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15년 만에 판도라의 상자 연 김우중 회장
15년 전의 대우 해체에 대한 진실 공방은 앞으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또 다른 뜨거운 감자는 추징금 문제다. 이번 김 전 회장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측은 이번 출간을 계기로 “잘못된 진실, 국민들의 오해가 바로잡아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실종된 기업가 정신과 기업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우 해체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추징금 논란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 17조9000억 원과 연대책임이 있는 대우그룹 관계자 7명에 대한 미납액은 23조 원에 달한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추징금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에서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바 없고 징벌적 차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일단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한 대응도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대우 해체에 대한 재조명을 계기로 김 전 회장과 관계자들은 재판 결과와 추징금에 대해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연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는 “당시 판결 자체가 헌법적으로, 혹은 판결 이후 판결의 기초가 된 사실이 어떻게 변했는지 등 여러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그는 ‘김우중과의 대화’ 출간 전 초본을 읽고 법률적 검토 작업도 마쳤고 김 전 회장, 대우 측 인사들과 올해 4월부터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교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김 전 회장에 대한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추징금과 관련해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9년 대우의 몰락, 2005년 재판 때 징역과 추징금 판결, 2013년 김우중 추징법 추진으로 기업가를 세 번 죽였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의 파산 사건인 대우그룹 해체 건이 15년 만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회장과 대우맨들의 바람대로 역사적 재해석까지 이뤄질지, 대우 측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회적으로 수용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IMF 환난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과연 어떤 대처가 가장 옳았는지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수긍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