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년대 히트 모델 인기몰이…클래식한 디자인에 최신 기술 더해
“이거요? 찾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재고가 없어 해외 구매 사이트까지 뒤져서 샀어요.”최지윤(23) 씨가 신고 있는 신발은 흰 바탕에 검은 선 세 개가 인상적인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슈퍼스타’. 1960년대에 처음 출시됐던 운동화다. “우연히 봤는데 예뻐서 사고 싶었다”는 최 씨는 “해외 사이트에서도 대부분이 품절돼 맞는 사이즈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부터 옛것이 ‘복고(retro)’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면서 오히려 ‘클래식(classic)’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기업에서 내놓는 제품의 초기 제품은 그 브랜드의 ‘정체성(identity)’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 여러 스포츠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운동화들이 대표적이다.
뉴발란스는 1996년에 선보였던 ‘MT 580’을 새로운 콘셉트로 출시했다. 처음 선보이던 당시 ‘1990년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스테디셀러에 오르기도 한 제품이다. 휠라는 1990년대 운동화 시장의 주류였던 농구화를 재현한 ‘케이지 러너 14(CAGE RUNNER 14)’를 내놓았다. 곧 1990년대 NBA 스타의 농구화를 재해석한 ‘헤리티지 BB 컬렉션’도 출시할 예정이다. 프로스펙스가 론칭 33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헤리티지 라인은 1983년에 판매했던 제품을 재현한 모델이다.
지난해 나이키는 출시 30주년을 맞은 ‘나이키 페가수스 83’을 선보이기도 했고 리복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대표적 클래식 제품인 ‘퓨리’를 세계 30여 개의 트렌드 숍과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 작업을 거쳐 출시했다.
과거 베스트셀러는 ‘위대한 유산’
스포츠 브랜드마다 산발적으로 출시했던 것을 제외하고 운동화 업계 전체에 본격적으로 복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이다. 2011년 극장에서는 영화 ‘써니’가 관객 700만 명을 넘는 흥행을 올리고 이어 2012년 TV에서는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의 성공은 복고적 향수와 현대적 감수성을 교묘하게 결합한 전략 덕분으로 평가 받았다. 연이은 인기에 힘입어 복고가 여기저기서 트렌드로 떠올랐고 운동화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2년까지는 새로 발매되는 디자인의 운동화에 복고풍의 트렌드를 입히는 것이 대다수였다. 비비드(vivid)한 색감과 크게 박힌 로고가 특징이다. 컨버스의 ‘팬텀 4’ 시리즈나 여러 브랜드에서 나왔던 하이 톱 슈즈 등이 포함된다. 의상과 액세서리를 복고풍으로 연출한 뒤 마무리로 신어 주라는 것이 당시 패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이후 2013년으로 넘어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1980~1990년대에 등장했던 운동화의 디자인을 유지한 채 개선 후 재출시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변화했다. 새 디자인에 복고풍을 입혔던 운동화와 다른 점은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기본 라인이라는 것이다. 색감이나 디자인이 대체로 튀지 않고 무난해 비교적 코디하기 좋다. 멀티 슈즈 숍 ABC마트 관계자는 “클래식한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최신 트렌드를 살린 제품 출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와 똑같은 제품에 사이즈만 다른 이른바 ‘커플 운동화’를 신고 있던 김진민(24) 씨는 “커플로 맞추기 위해 여기저기 다 찾았는데 결국 초기 디자인의 복고 운동화로 결정했다”며 “유행을 덜 타서 오래 신기 좋고 무엇보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무던한 느낌이 좋아서”라고 말했다.
클래식 라인을 따로 갖춘 리복의 김동희 대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 셀링 운동화는 그야말로 브랜드들의 ‘위대한 유산’”이라며 “과거의 명성과 함께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디자인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자들이 복고 운동화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고 운동화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이점을 갖는다. 과거의 디자인에 최신의 기술력을 더하기 때문이다. 뉴발란스에서 새롭게 출시된 ‘MRT 580’은 과거 출시작(MT 580)에 ‘미드솔 테크놀로지 레블라이트(midsole technology REVlite)’를 적용해 충격 흡수 기능을 향상시켰고 무게도 한층 더 가벼워졌다. 프로스펙스 역시 1970년대에는 벌커나이즈드·에바(EVA) 스펀지 등을 썼지만 무겁고 내구성·쿠션이 약해 최근에 출시한 복고 제품은 C.M.EVA 스펀지로 바꿔 경량성과 내구성을 향상시켰다.
복고 운동화 판매 30% 증가
레스모아 메세나폴리스점은 매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중앙 판매대에 복고 운동화를 진열해 놓았다. 아디다스의 ‘오리지널스 슈퍼스타’와 나이키의 ‘페가수스 83’ 등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남자 손님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복고 운동화 판매대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이정민(28) 씨는 “깔끔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자세히 보려고 들어왔다. 딱히 ‘복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프로스펙스 브랜드를 소유한 LS네트웍스 이상훈 과장은 “유행을 주도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가 메인 소비자이고 복고 운동화라는 개념보다 디자인 중심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복고풍이라는 인식이 없어도 디자인 자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NBA 스타의 농구화를 재해석해 새로 출시할 예정인 휠라의 김민정 과장은 “과거 NBA 스타에 열광했던 세대의 향수를 자극할 것”이라며 “워낙 디자인이 독특하고 스타일리시해 10~20대 소비자에게도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레스모아는 나이키에서 클래식 운동화에 해당하는 ‘블루 리본 스포츠(BRS)’군의 점유율을 올해 안에 3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14년 3월을 기준으로 복고 운동화의 매출이 전년 대비 15% 증가했기 때문이다. 역시 ABC마트에서도 2014년 3월부터 2개월 동안 집계한 결과 복고 운동화의 판매가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운동화 시장의 복고 열풍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고 서서히 확장돼 온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 과장은 “현재 메이저 브랜드들이 복고 제품 위주로 선보이고 있고 곧이어 팔로우(follow) 브랜드의 카피캣(copycat) 제품들이 시장을 점유할 것”이라며 복고 열풍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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