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주역인 김연배 부회장 대표로 선임…한화 금융 부문 재정비 신호탄

[비즈니스 포커스] 한화생명으로 돌아온 ‘김승연의 복심’
한화생명이 9월 29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김연배 한화그룹 비상경영위원장을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에 공식 선임했다. 김 부회장은 이미 지난 8월 한화생명 대표이사로 내정된 바 있다. 김 부회장은 앞으로 차남규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 체제로 한화생명을 이끌게 된다. 대한생명 인수 당시인 200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년 넘게 각자 대표를 맡아 온 신은철 부회장이 사퇴한 지 1년여 만에 다시 투톱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경기 침체와 저금리 등으로 어려운 보험 시장 상황 극복이라는 과제 앞에 영업 현장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는 한편 그룹과의 관계, 내부 조직 혁신 등 대내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금융이 살아야 그룹이 살아’
그는 이날 “이번에 한화생명이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에 대표이사를 맡게 돼 감회가 남다르고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한화그룹과 한화생명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과 역량이 있다”면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우리의 비원(悲願)인 세계 초일류 보험회사로 함께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고객 중심 경영, 영업 현장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한편 혁신을 통한 효율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취임식도 직원 대상 사내 방송과 e메일을 통해 인사하는 온라인 취임식으로 대체했다. 기존 문화를 탈피하고 혁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앞장서 보이겠다는 의지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경제 전문가로서의 식견과 노련함을 무기로 위기에 처한 생보 산업을 핵심 주력 사업으로 성장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전면에 나섰다”면서 “조직 혁신 전문가로 업계에서 명성이 나 있는 만큼 한화그룹 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선 것에 대해 재계는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화의 2인자’이자 ‘위기 전담 구원투수’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한화그룹의 금융 부문 재정비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한화생명으로 돌아온 ‘김승연의 복심’
김 부회장은 1968년 한화증권에 입사한 뒤 무려 4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한화맨’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1999~2002년)을 맡아 구조조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한화생명(옛 대한생명) 인수팀의 총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룹 비상경영위원장으로 투자와 경영전략 등 그룹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특히 김 부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는 경기고 동문으로 그룹 2인자이자 김 회장의 진정한 ‘가신’으로 통한다. 즉 이제 일흔 살인 그가 그룹의 최주력 회사인 한화그룹을 직접 이끌게 된 것은 분명 ‘어떤 결단’이 있었다는 의미다.

현재 한화그룹은 크게 보면 한화케미칼을 중심으로 하는 제조 부문과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 부문으로 나뉜다. 이를 (주)한화가 지배하는 구조다. 문제는 제조 부문의 수익성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2013년 한화그룹은 총 38조5000억 원의 매출에 95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한화그룹의 ‘투톱’은 전혀 상반된 실적을 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3551억 원의 순이익을 올린 반면 한화케미칼은 795억 원의 적자를 낸 것. 즉 한화그룹 전체 수익은 3분의 1 정도를 한화생명 혼자 낸 것이다.

한화그룹이 지난 수년간 태양광에 꾸준히 투자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태양광 부문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한화생명의 꾸준한 경영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화생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한화생명뿐만 아니라 생명보험 업계 전체의 문제다. ‘역마진’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보험회사의 운용 자산 이익률은 4.5%로 보험료 적립금 평균 이율(4.9%)보다 0.4% 포인트 낮다. 1000원을 투자해 45원을 벌어 고객에게 49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생명보험 업계(운용 자산 이익률 4.6%, 보험료 적립금 평균 이율 5.1%)는 격차가 0.5% 포인트로 손해보험 업계(0.0%)보다 더 크다. 생명보험 업계의 역마진은 저금리 때문이다.

생명보험 업계는 1990년대 고객에게 돌려줄 7% 이상의 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거 내놓았다. 생명보험 업계의 7% 이상 금리 확정형 상품은 21.7%나 된다. 고금리를 보장한다는 저축은행 금리도 요즘 3%대인 현실을 감안하면 생명보험 업계의 부담은 크다.

그렇다고 운용 자산 이익률을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생명보험 업계는 채권(대부분 국공채) 투자 비중이 57.1%인데 저금리 때문에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국고채(5년 만기) 금리는 지난 5년간 4.8%에서 2.5%로 반 토막 났다.


‘김연배식 경영’ 이미 시동 걸었다
당연히 한화생명 역시 최근 수익성이 악화되는 등 경영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 2669억 원에서 올해 2053억 원으로 23% 이상 감소했고 총자본이익률(ROA)은 지난해 0.68%에서 올해 0.49%로 0.19% 포인트 떨어졌다. 결국 더 이상 그룹의 주요 수익원인 한화생명이 흔들리게 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미 지난 8월부터 한화생명이 ‘김연배 체제’로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8월 이뤄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다. 한화는 8월 본사 기구 조직을 12본부 50팀에서 3부문(영업·지원·투자전략) 7본부 41팀으로 개편됐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영업부문은 CPC전략실·FP영업본부·고객지원실 등이 편제돼 신상품 기획, 마케팅·채널전략, 고객 서비스 등 보험 영업 전반을 담당한다. 투자전략 부문은 자산 운용 전략 수립, 포트폴리오 관리를 통한 자산 운용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지원 부문은 인적자원실·경영지원실 등이 편제돼 인사·재정·정보기술(IT) 등 경영 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업본부·자산운용본부·고객서비스본부 등 본부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했는데 3부문은 비슷한 본부를 통합해 본부 이상의 조직이 된 것”이라며 “업무와 비용 효율성 증대와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고객을 우선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사 컨트롤 타워로서의 전략기획실 기능을 강화하면서 각 부문에 전문 역량을 보유한 인력 중심으로 임원 및 팀장급 인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4명의 전무를 보직 해임했고 상무급 이상 임원 수십 명도 보직을 없앴다. 쉽게 말해 쪼개져 있던 본부들을 큰 부문으로 묶은 뒤 몸이 무거운 임원급들을 덜어내 각 부문을 조율할 수 있도록 전략기획실을 강화한 것, 즉 조직의 의사 결정을 단순화해 ‘스피드’를 살리겠다는 의미다.

이런 한화생명의 변화는 현재로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한화생명의 올해 3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웃돌 전망이다. 한승희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화생명은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이 1425억 원 수준을 올려 시장 예상치인 1155억 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2014년 말에 한화생명은 순이익 4447억 원을 올릴 수 있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