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3대 걸친 인연, 이재용·정몽준도 어린 시절 재능…리더십 함양에 효과

[비즈니스 포커스] 대기업 회장들이 승마에 빠진 이유
지난 9월 20일부터 열린 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 게임 중 승마 종목에서 한국이 강세를 보였다. 개인 마장마술·종합마술과 단체 마장마술·종합마술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개인 마장마술 부문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두 한국 선수가 차지했다.

한국의 비인기 종목 중 하나였던 승마가 이렇듯 좋은 성과를 거두자 자연스레 이목이 쏠렸다. 심지어 개인 마장마술 은메달, 단체 마장마술 금메달을 모두 거머쥔 사람이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선수라는 것이 알려지자 승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재벌가의 자녀가 승마를 즐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재벌과 승마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자를 만날 수 있다. 김 창업자는 1950년대부터 말을 탔고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말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 빠진 한국 승마 대표팀에 자비로 말을 구해 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도왔다. 이와 같은 김 창업자의 승마 사랑은 김승연 회장에게 이어졌고 현재 삼남 김동선 선수에게까지 대물림됐다.

김 회장은 김 선수가 승마에 재능을 보이자 2004년 경기도 일산에 ‘로얄새들 승마클럽’을 열었다. 한화 갤러리아 승마단 소속이었던 김 선수는 로얄새들 대표 코치단에 이름을 올리고 훈련에 임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로얄새들 승마클럽은 스티븐 승마클럽, 베르아델 승마클럽과 함께 이른바 ‘한국의 3대 승마장’으로 불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승마를 즐겼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중반에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어깨와 등에 통증을 느꼈다. 그런데 이 고통이 승마를 하면서 가라앉자 본격적으로 승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 안에 ‘삼성전자 승마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에서 열리는 승마 대회에 10년간 참가했고 1997년부터 ‘삼성 네이션스컵(Samsung Nations Cup)’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지역 승마 대회를 후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에 재학하던 시절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승마 국가 대표로 나가 2위를 차지하는 등 재능을 보였다.

범현대가는 한화나 삼성처럼 승마단을 운영하지 않지만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학 시절 전국체전에 나가 2위에 오르는 등 승마와 연이 닿아 있다.


보여주는 스포츠…사람 대하는 법 배워
재벌가의 자녀들이 이처럼 일찍부터 승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박수일 박수일승마아카데미 원장은 “승마는 자세를 바르게 교정해 주고 소화기관과 장 기능도 향상시켜 주며 여성은 생리 불순과 변비를 고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전신을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 효과가 뛰어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승마의 효능은 따로 있다. 박 원장은 “승마는 ‘보여주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승마를 통해 발표력과 의사 전달력 등을 익히고 그에 따라 ‘리더십’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말과 교감하는 동시에 힘겨루기도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소심했던 아이라도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힘’을 갖게 되며 동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승마는 골프와 자주 비교된다. 2014 아시안 게임 승마 종목에서 개인 마장마술 금메달을 딴 황영식 선수는 “20~30년 전만 해도 골프 역시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입을 열었다. 골프가 점차 대중화된 이유 중 하나로 그는 ‘스폰서’를 들었다. “골프 선수들에게 스폰서가 존재했기 때문에 돈이 많지 않은 선수도 비싼 장비 구입과 해외 투어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계속 언론을 타고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졌고 단지 취미로 골프를 즐긴다면 그 정도의 지출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차 퍼져 나간 것이다. 황 선수는 “선수가 아니라면 골프 필드에 나가는 것보다 승마가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대중화 길목…더 이상 ‘귀족 스포츠’아니다
박 원장도 스폰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업의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며 “기업에서 홍보비를 들여 말을 구입하도록 돕고 스폰서 역할을 해준다면 다른 스포츠들처럼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선수는 “축구나 피겨스케이팅에 스폰서가 붙는 이유는 광고성 때문”이라며 “김연아 선수는 1등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에서 도움을 주지만 승마는 다르다”고 말했다. 승마 강국인 독일과 출발부터 약 10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종목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승마 대표팀의 목표는 세계 10위 진입이다.

승마 전국대회는 대한승마협회가 주관하는 10여 개 대회를 포함해 1년에 약 30여 개가 열린다. 그러나 그 어떤 TV 채널에서도 중계하지 않는다. 황 선수는 “승마 선수들 모두 대중화의 계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승마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여섯 살 때부터 말을 탈 수 있었다는 황 선수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잘사는 아이’라는 주변의 시선이 힘들었다고 한다.
[비즈니스 포커스] 대기업 회장들이 승마에 빠진 이유
승마가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을 갖게 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장비의 가격 때문이다. 헬멧, 안전 조끼, 승마복, 부츠 등 필요한 장비가 많은데 하나같이 고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대중화의 문제와 닿아 있다. 박 원장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일 때는 의사와 고소득 자영업자 등 상류층이 주로 즐겼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들여온 비싼 장비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질 좋은 국산 장비가 많아졌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국산 승마 장비의 70~80%를 납품한다는 ‘호스샵’ 대표는 “국산 장비는 수공비만 받고 판매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이 많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급 장비로 맞추려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꼭 필요한 헬멧과 조끼, 승마바지와 부츠 정도만 있어도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본인이 불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청바지에 장화를 신어도 승마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승마장에서 헬멧과 안전 조끼 등을 대여해 주고 있고 바지와 부츠는 25만~35만 원 선이다.

한 시간 승마를 배우는 비용은 수도권에 있는 승마장 기준으로 5만~8만 원 정도다. 보통 10회, 20회 단위로 묶어 할인된 값에 회원권을 판매한다. 한 달 이상, 즉 120만 원 정도의 비용이면 교관 없이 혼자 말을 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골프와 비교해 본다면 골프에 입문해 첫 라운딩을 할 때까지의 비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편이다.

황 선수는 “중동 국가들에서 승마를 하기 위해 100억 원이 넘는 말을 사온다는 언론 보도들도 귀족 스포츠 인식에 한몫했다”며 “그러나 정작 국가 대표 선수들이 타는 말은 제일 비싼 말이 5억 원 안팎이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은 말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한국에서 승마를 즐기는 사람들 중 말을 소유한 비중은 1% 정도에 불과하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면 골프, 3만 달러에 이르면 승마, 4만 달러에 이르면 요트를 즐기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내년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의미하는 ‘30·50클럽’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승마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황 선수와 박 원장은 “남녀노소 모두가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가 바로 승마”라고 입을 모았다. 박 원장은 “승마 역시 골프처럼 비즈니스 승마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 선수는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말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