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 발전…지층에 가두는 기술은 이미 실용화

[테크 트렌드] 인류 위협하는 탄소, 바위 속에서 꼼짝 마!
세계적으로 경기 부진의 어두운 터널이 이어지고 국제분쟁도 여기저기 고개를 들면서 많은 세계인들의 걱정거리는 역시 당장 벌어먹고 사는 문제, 이른바 ‘먹고사니즘’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좀처럼 산업 수요가 살아나지 않다 보니 각종 원자재 값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유가만 보더라도 배럴당 100달러의 박스권에 한창 갇혀 있다가 이제는 80달러 아래로 내려갈 기세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 유가 200달러 시대, 석유 고갈의 경고가 난무하던 기억은 먼 옛일이 돼 버렸다.

문제는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자원 고갈, 환경 위기의 이슈가 빠르게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화석연료 의존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기후변화는 여전히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현재 진행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의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신흥국 발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와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는 악화 일로에 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제철·석유화학·시멘트 등 대규모 기반 산업 플랜트, 화력발전·자동차 등 운송 수단이 핵심 탄소배출원인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은 영역이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기피가 심화되면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30~40%를 차지하는 화력발전을 대체할 뾰족한 수단이 없어 문제가 더하다. 눈앞에 보이는 자동차 매연을 줄이려고 전기차를 만들지만 정작 그 전기는 석탄을 때 조달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기술자와 정책 당국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해결 방법은 아예 대기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다시 긁어모아 저장하자는 것이다. 지구가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유기물 속의 탄소를 차곡차곡 모아 석유와 석탄으로 저장해 놓았던 것을 인류가 펑펑 뽑아 썼으니 이제는 그걸 다시 거꾸로 지구 깊숙이 돌려보내자는 아이디어다. 이것이 이른바 탄소 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이다.


이산화탄소 90% 회수하는 캐나다 발전소
이런 기술 가운데 가장 최근에 활발히 실용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화석연료 소비 과정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지하 유정에 불어넣는 방법이다. 원래 예전부터 석유 업계에서는 땅속 깊숙이 묻힌 원유를 더욱 많이 뽑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왔다. 갓 발견한 유정은 지하에 대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고압으로 짓눌려 있기 때문에 파이프만 꽂아도 영화에서 보듯이 그야말로 분수처럼 원유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원유를 뽑아내다 보면 점점 압력이 줄어들어 나중에는 펌프로 퍼내도 시원하게 쏟아지지 않는다. 심지어 아직 퍼낼 원유가 지하에 반 이상 남아 있는데도 유정이 말라붙는 일이 생긴다. 특히 끈적끈적한 정도(점도)가 높은 원유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자들은 별도의 구멍을 뚫어 고압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산화탄소는 소화기에도 쓰이듯이 폭발·연소 위험이 없기 때문에 지하로 주입해도 안전하다. 또한 원유와 이산화탄소가 섞이면 점도가 낮아져 더 흐르기 좋은 상태가 된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지하에 엉겨 고여 있는 원유를 밀어내 착유 파이프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전에는 여기에 쓰일 이산화탄소를 얻기 위해 별도로 화학적인 생산 과정과 액화 과정을 거쳐 트럭에 실어 유정 현장으로 보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또 만만치 않은 양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대규모 이산화탄소 공급원을 유정 가까이에 세우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표적인 탄소 배출원은 화력발전소, 그 가운데도 석탄 화력발전소다. 여기서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곧장 수집·액화해 인근 유정에 공급한다는 사업 모델이다. 어차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전기, 어차피 파낼 수밖에 없는 원유이지만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땅속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지구환경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이 원유 회수 증진(EOR) 기술로 약 820억 톤의 탄소를 묻어버릴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이미 일부에서는 실용화 단계에 돌입했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이 사업 모델을 현실화한 최초의 상업 화력발전소가 사스캐처원 주에 들어섰는데, 총 110MW 규모로 아직 그리 대형이라고 볼 수 없지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90%를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분야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텍사스 등 대규모 유전 지대를 중심으로 곧 다른 상업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예를 들어 미시시피 주 켐퍼에는 사스캐처원보다 5배 이상 큰 565MW급 CCS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탄소를 바위에 봉인하는 광물 탄산화 기술
그러나 이 방법이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산화탄소 저장 비용은 얼마 안 되지만 아직도 포집 비용이 비싸다는 게 문제다. 실용화된 사스캐처원의 발전소만 해도 생산되는 전력의 20% 이상을 이 포집 및 저장에 써야 할 정도다. 설비비도 비싸 이 발전소를 짓는 데 무려 8억 달러가 들어갈 정도였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던 지층에 이산화탄소를 가두는 방법은 그나마 경제성 확보 면에서 우수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가둬진 이산화탄소가 다시 새어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모색되고 있는 게 이산화탄소를 스펀지 같은 지하 지층이 아닌 아예 단단한 바위에 봉인해 버리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지구에는 수많은 칼슘·마그네슘 계열의 금속산화물이 있다. 자연적으로도 이들이 오랫동안 대기에 노출되면 이산화탄소와 화학적으로 결합해 탄산염 광물이 돼 버린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대표적 광물이 바로 시멘트 원료로 우리 주변에 많이 보이는 석회석이다. 그 외에 북한 지역에 매우 풍부한 마그네사이트도 이런 종류다. 자연에서는 수만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천천히 벌어진 이러한 과정을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가속시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다시 지하광물로 돌려보내자는 아이디어다.

이 기술의 장점은 일단 가장 확실한 봉인이라는 점이다. 일단 탄산염 광물이 되면 매우 안정적이어서 탄소가 다시 빠져나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광물은 지구 곳곳에 매우 많기 때문에 가둘 수 있는 탄소의 양도 거의 무제한에 가깝다. 또한 EOR 기술은 유정이 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써먹기 어렵지만 이 기술은 우리도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탄산염 광물은 제지·플라스틱·페인트 등 다양한 산업적 활용 가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아직 원가를 회수할 정도의 경제적인 사업 모델을 확립하지 못한 게 문제다. 이산화탄소와 반응시킬 금속산화물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다른 광물처럼 광산을 만들고 채굴해야 한다.

이 밖에 이산화탄소 부산물을 조류(algae) 등 식물의 광합성 재료로 주입시켜 유기물, 즉 바이오매스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가공해 바이오 연료까지 생산하는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공장이나 발전소에서 나오는 고농도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기 중에 옅은 농도로 떠돌아다니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효과적이고 경제성 있는 활용 공정 기술이 확립되지 않아 소규모 시험 설비를 가동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국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제철·석유화학·시멘트 공장은 물론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정보기술(IT) 생산 시설, 스마트 생활환경을 고루 갖춘 나라다. 그만큼 옆 나라 중국을 제외하면 항상 주요 탄소 배출국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이기도 하다. 반면 그만한 입지에 비해 탄소의 배출을 줄이고 방출된 탄소를 다시 지구로 되돌리려는 노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자연 및 산업 환경에 맞는 탄소 포획 및 저장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