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수 확보 차원…최종 가격 경쟁은 결국 제조사 몫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담뱃값 인상은 “국민 건강 증진보다 부족한 세수 확보를 노린 것”이라는 명분으로 이를 반대했고 결국 무산됐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노 대통령에게 “소주와 담배는 서민층이 애용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는 말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후 정권이 두 번 바뀌고 당시 대표는 정부의 수반이 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 정부는 최근 강력한 담뱃값 인상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이슈] 담뱃세 인상…제조사만 불똥 튀나
‘담뱃값’ 아닌 ‘담뱃세’ 인상
지난 9월 11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안정행정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년 1월 1일부터 담뱃값 2000원 인상을 추진하고 앞으로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담뱃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변함없던 담뱃값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담뱃값 인상’은 정확히 말하면 ‘담뱃세 인상’이다. 국내 담뱃값 평균을 2500원으로 봤을 때 유통·제조원가 950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각종 세금과 부담금으로 구성돼 있다. 담배소비세 641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354원, 지방교육세 320원, 부가가치세 227원, 폐기물 부담금 7원 등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담뱃세 인상안은 유통·제조원가를 제외한 나머 지 부분만 오르는 셈이다.

물론 정부가 얘기한 2000원 중 232원이 제조원가·유통마진 인상분으로 책정돼 있지만 이 금액의 대부분인 182원은 통상적으로 소비자가격의 10%로 책정되는 담배 소매점 마진이다. 따라서 담배 제조사의 보전 금액은 50원이 채 되지 않고 이마저도 종가세인 개별소비세 신설로 향후 추가 감소될 여지가 크다.

정부의 이번 담뱃값 인상안에는 출고가 또는 수입가의 77%를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이 개별소비세안은 갑당 일정액을 부과하는 체계인 종량세가 아니라 출고가·수입가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종가세 체계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종가세 체계로 과세하게 되면 저가 담배일수록 세금을 덜 내게 돼 고가 담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결국 소비자들이 값싼 담배를 더 많이 피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시장의 소비가 점차 저가 담배로 전환되는 현상(down-trading)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담뱃값 인상의 가장 큰 정책 목표인 국민 건강, 세수 확보 측면에서도 종가세보다 종량세 체계를 도입하는 게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뱃값 인상의 명분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데 있다. 하지만 급격한 담뱃값 인상은 영국·싱가포르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밀수 증가, 불법적인 저가 제품의 확산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한국은 2004년 500원 인상을 마지막으로 담뱃값을 인상하지 않았다”며 “지난 10년간의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1000원 정도의 인상분을 적용하고 향후 소비자물가에 연동하는 등 점진적인 추가 인상이 밀수 증가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담뱃세 인상에 따른 세수 확보 효과는 정부의 예상치보다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0월 30일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제출받은 ‘담배 가격 인상에 따른 세수 효과 분석’에 따르면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할 때 연간 세수는 5조456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연간 2조8000억 원보다 2조2456억 원 많은 것이다.

이와 별도로 정부가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은 매년 7조 원 정도 된다. 이 중 국민건강증진기금이 2조3000억 원 정도인데, 이 기금은 일반 조세와 다르기 때문에 흡연과 관련된 국민 건강 증진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담배 관련 건강 문제·금연사업 등에는 전체 기금 지출액의 1% 수준인 218억 원 정도만 사용했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채우는 데는 수입의 65%인 1조 원 정도를 사용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전에 비정상적인 기금 사용을 정상화할 필요가 분명 있어 보인다.


소비자·제조사 부담도 감안해야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담뱃세가 2000원 인상될 때 담배 판매량은 약 3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인상안대로라면 담배 한 갑에 50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담배 제조사의 총수익은 약 9407억 원 줄어드는 것이다.

담뱃세는 정부가 결정하지만 담뱃값은 담배 제조사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담배 제조사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4500원 이상으로 담뱃값을 책정해도 이를 막을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조원가 상승과 정부의 담배 세금 인상에 따른 매출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제조사들이 소비자가를 정부 인상안보다 더 높이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슈] 담뱃세 인상…제조사만 불똥 튀나
KT&G 관계자는 “담뱃세 인상은 정부와 국회에서 결정할 사안으로, 물가 상승 영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충분히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되기를 바란다”며 “소비자가는 최종 담뱃세 인상액 및 경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담뱃값을 올려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정부가 세수 확대에만 혈안이 돼 소비자와 제조사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 │ 배윤석 BAT코리아 부사장
[이슈] 담뱃세 인상…제조사만 불똥 튀나
“담뱃세 인상 확정 후 시장 고려해 가격 정할 것”

정부의 담뱃세 인상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세금 인상은 정부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결정하는 사안인 만큼 정부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담배 제조사로서 2000원 인상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지난 10년간 담뱃세가 인상되지 않은 것은 다른 국가의 사례와 비교해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따라서 인상은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2000원이라는 인상 폭은 파격적이다. 정책적으로든, 산업적으로든 합리적으로 결정되길 바란다.”

인상안 통과에 따른 판매량 감소 대비책은.
“아직 논의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언급은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담뱃세가 최종 결정되면 그에 따라 사업 계획을 세울 것이다.”

담배 소비자가는 어떻게 책정할 계획인가.
“10년 동안 원료·포장·유통·인건비 등 가격 상승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번 인상안에도 이런 점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모든 담배 회사들에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담뱃세가 확정되면 담배 회사들도 구체적으로 가격 결정을 어떻게 할지 각자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BAT코리아는 시장에서 3위 업체인 만큼 앞으로 소비자 반응과 시장 경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박상훈 기자 bra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