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원칙 무너지면 파벌 득세…다양성 원칙도 필요

우리 회사의 업무 분위기는 자유롭고 개방적입니다. 창업자의 경영 철학이 수평적 기업 문화로 정착돼 있기 때문에 임원과 직원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합니다. 권위적 분위기가 아니어서 신입 사원들이 임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정도입니다. 또 부서를 넘나들면서 진행되는 업무가 많아 부서 의식도 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년 전부터 끼리끼리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런 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내 소통을 장려하기 위해 어떤 모임도 제한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모임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임을 제한하면 우리 회사의 장점 중 하나인 소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현만의 CEO 코칭] 끼리끼리 문화의 씨는 CEO가 뿌린다
기업마나 모임에 대한 방침이 다릅니다. 어떤 기업은 동호회를 비롯해 각종 모임을 장려합니다. 공식적으로 동호회 모임 활동비를 지원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귀하의 회사처럼 소통을 장려하기 위해서죠. 반대로 사적 모임을 완전히 금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역시 귀하의 회사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끼리끼리 문화나 파벌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사의 모임에 대해 지원이나 규제, 혹은 방임 가운데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 필요성이 있어 취하는 조치들이고 나름대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좋은 면만 갖고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어떤 제도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부작용이 뒤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미리미리 부작용을 예상해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개인적 선호도를 이야기한다면 저는 귀하 회사 쪽입니다. 요즈음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영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의 회사는 조금은 소란스럽고 끼리끼리 모여 다니는 부작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통의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소통이 안 되는 회사, 권위적 분위기에 정적만 흐르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귀하 회사의 문화가 조금 부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귀하 회사처럼 이런 문화에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적 모임의 부작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업무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심해지면 조직 내 파벌을 만들어 내 조직 화합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른바 줄서기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능력과 성과가 아니라 연고나 친분에 따라 직원들을 평가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사적 모임이 조직 부적응 직원들의 도피처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종종 성과가 부진하고 불성실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사적 모임을 결성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나누려고 동병상련의 모임을 만듭니다.


사적 모임이 부적응자의 도피처 될 수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구성원들이 늘면서 이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자신들의 무능력이나 불성실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제도나 정책 때문이라는 쪽으로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점차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를 모으고 방어 논리를 만들어 내면서 조직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세력으로 커 나갑니다. 나중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힘을 이용하려고 들면서 조직에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이런 모임을 발견한 경영진은 당황합니다. 서둘러 모임을 해체하려고 하지만 이미 덩치를 키워 세력화한 구성원들을 흩어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경영자들이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유능한 임직원들이 그들과 직접 갈등을 겪다가 혹은 갈등 상황에 부담을 느껴 조직을 떠나기도 합니다.

끼리끼리 문화를 막으려면 먼저 이런 문화가 배태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업에서 문화의 씨는 기본적으로 경영진이나 고위 간부들이 뿌립니다. 어떤 기업에 가면 모두 경상도 사람만 눈에 띕니다. 또 어떤 기업은 전라도 사투리만 들립니다. 그만큼 지역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인데, 그 원인을 파악해 보면 대부분이 창업주나 오너가 지역주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업주나 오너가 지연으로 임직원을 뽑고 가까이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임직원의 대부분이 특정 지역 출신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에 따라 특정 대학 출신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오너의 성격에 맞는 직원들이 합류하면서 조직의 업무 처리 방식이 오너 스타일로 바뀌어 갑니다. 창업주가 떠난 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의 가치관과 경영 철학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그가 뽑고 키운 구성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원칙 세워야
따라서 조직에 끼리끼리 문화와 파벌이 자리 잡는 것을 막으려면 CEO를 비롯한 경영자들부터 철저히 그런 문화나 습관을 배제해야 합니다. 아무리 편하고 마음이 통하더라도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임직원을 선발하고 배치하면 안 됩니다. 능력과 태도에 따라 조직이 거두려는 성과에 적합한 인재를 모으고 활용해야 합니다. 경영진이 끼리끼리 문화에 관대하거나 더 나아가 그런 문화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 머지않아 조직은 파벌의 싸움터로 변할 것입니다.

둘째,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려면 CEO가 앞장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양성은 경영자가 직접 나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뿌리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조직의 균형이 일단 깨지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경영자는 항상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채용할 때부터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분포를 염두에 두는 게 좋습니다. 다양성을 위한 채용 원칙은 단순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구체적 지침과 매뉴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녀 성비가 얼마 이상을 넘어서면 안 되고 특정 대학이나 지역 출신이 몇 % 이상 차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규정하는 거죠. 그래야 최소한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심각한 획일성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성이 확보되면 조직 내 합리성과 개방성 역시 같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마지막으로 조직 안에 성과주의 문화가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끼리끼리 문화를 걱정하는 것이나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성과 때문입니다. 끼리끼리 문화가 성과 창출을 방해하고 다양성이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됐고 우리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끼리끼리 문화는 성과보다 관계를 중시하면서 생겨나고 확산됩니다. 모든 것을 관계 중심으로 판단하는 조직에서 성과는 뒷전일 뿐입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조직에서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반대로 만약 조직에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면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끼리끼리 문화는 끼어들 틈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성과에 기반해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관계 때문에 성과를 희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관계 때문에 잘못이 덮어지고 실패가 용서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조직 구성원들이 ‘성과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조직 분위기는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CEO가,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켜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문화는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