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투자 필요 없고 현금 창출력 탄탄…기존 오너들 세대교체로 ‘맞불’

시멘트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불과 2년 새 상위 기업 중 3곳의 주인이 바뀌었다. 특히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모 펀드들이 속속 시멘트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양산업’이라고 불리던 시멘트 산업이 왜 갑자기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시멘트 업계 1위 쌍용양회 인수전이 최근 마무리 수순을 밟으면서 오랜 기간 과점 체제를 이어 온 시멘트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4월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쌍용양회 인수전에서 승리한 사모 펀드(PEF) 한앤컴퍼니는 최종 인수 금액을 8837억원으로 확정하고 4월 안에 거래 대금을 지급, 거래를 완료할 예정이다.

그 결과 현재 대한시멘트와 한남시멘트 등 시멘트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한앤컴퍼니는 국내시장의 20% 정도를 점유하는 쌍용양회를 품에 안고 시멘트 업계를 주도하게 됐다.

최근 또 다른 PEF인 글랜우드PE가 라파즈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 업계가 사모 펀드 소유 기업과 기존 오너 기업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도 주목할 포인트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지금을 ‘50년 역사상 유례없는 격변기’라고 부르고 있다.
시멘트 생산의 핵심 설비인 킬른(소성로). /한국경제신문
시멘트 생산의 핵심 설비인 킬른(소성로). /한국경제신문
◆ ‘장부’는 별로지만 ‘돈’은 많은 시멘트 기업

시멘트 업계는 비교적 조용한 산업이었다. 1970~1980년대 내수 건설업의 고도성장기에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시멘트업의 성장성이 컸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언론 및 투자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이 때문인지 시멘트 시장은 장기간 안정적인 과점 체제가 이어져 왔다. 2014년 기준 국내 시멘트 시장은 7개의 회사가 무려 88.5%를 점유하고 있다. 쌍용양회가 19.8%로 1위를 차지했고 한일시멘트 13.5%, 성신양회 12.9%, 동양시멘트 12.8%, 라파즈한라 12.1%, 현대시멘트 10%, 아세아시멘트 7.3%순이다.

변화는 2014년 말부터 시작됐다. 업계 1위인 쌍용양회가 매물로 나오면서 시멘트 업계에 기업 인수·합병(M&A)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2015년 동양시멘트가 레미콘기업인 삼표의 품에 안겼고 라파즈한라는 글랜우드PE로 넘어갔다. 현재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는 현대시멘트도 조만간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십 년간 변화가 없던 시멘트 업계가 최근 1~2년 새 손바뀜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1990년대만 해도 6~7%의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시멘트 산업이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지만 2010년대 들어선 2~3%의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사업 구조 자체가 탄탄한 시멘트 산업이 재조명된 것이다.

이선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시멘트 산업의 가장 큰 매력을 ‘현금 창출력’으로 평가했다. 이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대형 시멘트 기업의 재무구조 자체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설비의 감가상각비가 크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 100억원짜리 설비가 있다고 치고 이 설비의 내구연한이 10년이라고 보면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장부상 매년 10억원의 적자가 난다고 보면 된다. 이 애널리스트는 “최근 5년간 상위 5개사의 영업이익이 2582억원인 반면 감가상각비는 2941억원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별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다. 시멘트 산업의 주요 생산 설비는 ‘킬른’이라고 불리는 소성로다.

킬른은 주원료인 석회석에 부원료를 섞어 섭씨 영상 1500도의 고열 처리를 통해 시멘트 반제품인 클링커를 생산하는 설비다. 킬른 1기당 투자비용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가장 최신 설비(1998년 초 설치)인 성신양회의 6호 킬른은 투자비용이 40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하는 킬른은 더 이상 국내에서 필요하지 않다. 국내 킬른의 가동률이 지난 20년간 70~80%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1997년 이후로 시멘트 기업들은 항상 초과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대규모 설비투자는 이미 17년 전에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즉 장치산업이지만 신규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은 거의 없고 기존 설비를 유지·보수만 하면 되기 때문에 현금 흐름 자체는 장부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기업의 현금 흐름을 보는 가장 좋은 지표는 ‘이자법인세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이다. 상위 5개 시멘트 기업의 2015년 EBITDA는 전년 대비 9.6% 늘어난 8031억원에 달한다.
‘사양산업’ 시멘트 업계에 사모펀드 몰리는 이유
이 애널리스트는 “물론 시멘트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여전히 부실하다”며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는 그룹 모기업의 계열사 지원 부담이 컸고 성신양회는 대규모 신규 설비투자의 후유증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꾸준히 현금이 쌓이면서 2016년 기준으로 주요 5개사들의 순차입금은 2011년(3조3000억원) 대비 3분의 1인 1조원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처럼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꾸준한 현금 창출은 투자자에게 큰 매력이다.

◆ 업황도 당분간은 상승세 이어져

업황 자체도 괜찮다. 백광제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Q(출하량)·P(판매단가)·C(원가) 모두 시멘트 기업들에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먼저 2015년 아파트 분양 물량의 착공이 2016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15년 아파트 분양 가구는 51만5886가구나 된다. 최근 10년 사이최대 물량이다.

판매 단가도 최소한 ‘현상 유지’다. 출하량 자체를 시멘트 기업이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역시 낮은 수준이다. 킬른을 구동하는 유연탄 가격은 2015년 초 톤당 64달러에서 올해 2월 톤당 48달러로 하락했다.

당연히 ‘돈 냄새’를 잘 맡는 PEF들이 그냥 놔둘 리 없었다는 뜻이다. 여러 PEF 가운데서도 한앤컴퍼니는 시멘트 산업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PEF다. 한앤컴퍼니는 쌍용양회 이전에 한남시멘트와 대한시멘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

지만 양사의 시장점유율을 합해도 5% 정도에 불과해 큰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쌍용양회 인수를 통해 한앤컴퍼니가 시멘트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25% 수준으로 수직 상승해 최대의 시멘트그룹이 됐다.

한앤컴퍼니는 3개 시멘트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애널리스트는 “한앤컴퍼니는 이미 슬래그 시멘트 기업인 대한시멘트와 한남시멘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쌍용양회가 두 회사에 납품하는 포틀랜드(portland) 시멘트를 늘리면 수익성이 더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파즈한라를 인수한 글랜우드PE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시멘트 기업인 프랑스 라파즈와 스위스 홀심이 합병한 이후 라파즈한라의 매각이 시작됐다. 지난해 해외 자회사 가운데 지역 1위 사업자가 아니라면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이다.

점유율 1위에 올라서기 위해 라파즈한라는 글랜우드와 컨소시엄을 맺고 동양시멘트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자 본 입찰을 포기하고 말았다.

동양시멘트 인수가 불발되면서 선택지가 경영권 매각밖에 남지 않은 라파즈홀심은 컨소시엄 참여자인 글랜우드에 배타적 협상권을 부여해 매각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글랜우드PE가 6000억원에 라파즈한라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 ‘현대시멘트 인수전’이 클라이맥스 될 듯

사모 펀드의 적극적인 진출은 기존의 시멘트 기업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40대 전후의 젊은 오너 3세까지 경영 전면에 등장하게 만든 것이다. 본격적인 ‘세대교체’다.

한일시멘트그룹은 허기호 부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올해 50세인 허 회장은 창업주인 고 허채경 선대 회장의 장손이자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1997년 한일시멘트에 입사해 경영기획실장을 지내는 등 20년 가까이 경영 수업을 쌓았다.

동양시멘트도 오너 3세인 39세의 정대현 부사장이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고 정인욱 강원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 부사장은 2005년 삼표에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줄곧 시멘트 사업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삼표는 지난해 동양시멘트를 7800억원에 인수했다.

‘천마표 시멘트’로 알려진 성신양회 3세의 활약도 눈에 띈다. 창업주인 고 김상수 초대 회장의 장손이자 김영준 회장의 장남인 김태현 사장은 최근 최대 주주에 올라 사실상 경영 승계를 마무리했다. 올해 42세인 김 사장은 2002년 이사로 입사한 뒤 신규 사업 등을 담당했다.

이들 시멘트 업계 오너 3세들은 오랫동안 경영 수업을 쌓는 등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 회장은 2005년 대표이사를 맡은 뒤 계열사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으로 회사 체질을 바꿨고 2011년엔 경쟁사의 드라이모르타르(물을 부어 쓰는 즉석 시멘트) 공장을 인수해 업계 1위에 올라서는 등 경영 수완도 발휘했다.

정 부사장은 지난해 동양시멘트 인수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제주도 지역의 시멘트 가격을 올리면서 지역 레미콘 업계와 갈등을 빚었던 지난 3월엔 최병길 대표와 호흡을 맞춰 사태를 조기 수습해 위기 대응 능력도 검증받았다. 국내 영업부문을 총괄하는 정 부사장은 기초 소재 분야에서 시너지를 내는 게 목표다.

김 사장은 레미콘 사업 해외 진출 등 사업 다각화에 적극적이다. 작년에 전년 대비 10% 늘어난 678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과도 냈다.

지난 2년간 수많은 변화가 있던 시멘트 업계는 올해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워크아웃 상태인 현대시멘트가 조만간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시멘트는 매출 7위이지만 1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상위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비슷한 상황에서 현대시멘트를 누가 인수하든 단숨에 업계 1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시멘트 산업에서 현대시멘트의 새 주인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한경비즈니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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