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루즈 등 삭제 전문 업체 경쟁, ‘잊힐 권리’가이드라인 6월 시행}

[한경비즈니스=이해인 인턴기자] 결혼을 준비하던 A 씨는 신혼여행지를 알아보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전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당시 여행사에서 진행하던 프로모션 이벤트에 당첨돼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화근이었다.

여행사에 연락해 사진 게시 중지를 요청했지만 이미 다양한 커뮤니티에 홍보용 포스터가 뿌려진 뒤였다. 예비 신랑 및 시댁에서 이 사진을 발견할까봐 두려웠던 A 씨는 디지털 장의 업체를 찾았다.
더 쉬워진 ‘인터넷 흑역사’ 지우기…10대가 주 고객
‘잊힐 권리’는 온라인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6월부터 한국판 ‘잊힐 권리’가 시행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4월 29일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회원 탈퇴 등의 이유로 본인이 직접 지울 수 없는 자기 게시물에 대해 타인의 접근 배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최윤정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 과장은 “자기가 올린 게시물 가운데 사생활 침해 등 문제가 되는 게시물임에도 직접 삭제가 어려운 이용자를 구제하는 가이드라인”이라며 “포털들의 적극적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의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에 따라 한국에서도 ‘잊힐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에 떠도는 개인의 흔적을 삭제해 주는 서비스다. 현재 국내에는 산타크루즈컴퍼니·맥신코리아·포겟미코리아 등 약 15개의 디지털 장의 업체가 있다.

◆상담에서 삭제까지 1주일이면 끝

온라인 기록을 삭제하고 싶은 의뢰자가 디지털 장의 업체 홈페이지 게시판에 상담을 신청하면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자의 이름, 사진, 주로 사용하는 아이디 등을 갖고 해당 인물과 관련한 게시글을 수집한다. 어떤 사이트에 어떤 내용의 게시글이 노출돼 있는지 분석해 리포트를 작성한 뒤 견적서를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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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비용은 게시물의 양, 삭제의 난이도에 따라 적게는 50만원부터 많게는 300만원까지 든다. 국내 사이트 1000개 이하의 게시물은 50만원으로 시작되지만 해외 사이트로 유출된 동영상은 기본적으로 월 3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의뢰자가 리포트와 견적서를 보고 삭제를 원하면 계약이 진행된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신분증 사본과 자신의 권한을 대행할 것을 요청하는 위임장을 작성한다. 디지털 장의 업체는 위임장을 갖고 삭제 요청 작업을 한다.

삭제 대상이 되는 글은 의뢰자가 작성한 글과 제삼자가 작성한 글로 나뉜다. 의뢰자가 작성한 글임에도 회원을 탈퇴하거나 사이트가 폐쇄돼 글을 직접 삭제할 수 없으면 해당 글의 글쓴이가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를 거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이번에 마련된 방통위의 잊힐 권리는 이 부분을 보장한 가이드라인이다.

제삼자가 작성한 글 중 의뢰자가 쓴 내용이나 의뢰자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해당 글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국내 포털들은 임시 조치라는 게시 중단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며 “요청이 접수되면 게시 중단 처리를 하고 게시물 작성자에게 해당 사실을 고지한다”고 말했다.

이때 게시물 작성자인 제삼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재게시를 요청할 수도 있다. 방통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네이버에 33만여 건, 다음에 11만여 건의 게시 중단 요청이 접수됐다. 이의 제기율은 5% 내외다.

디지털 장의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의 김호진 대표는 “국내 포털 게시물은 80% 정도 삭제가 가능하다”며 “일반인 의뢰자는 1주일이면 업무가 완료된다”고 말했다.

◆본인 글 입증이 관건…탈퇴 전 캡처 도움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사람은 10대가 가장 많다. 산타크루즈컴퍼니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이 전체 의뢰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과거에 올렸던 부정적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이 42%로 가장 많고 제삼자에 의한 개인 사생활 유출이 31%, 사진 및 동영상 유출이 10%를 차지한다.

김 대표는 “청소년은 스마트폰의 올바른 이용법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 온라인에 욕설·비방을 포함한 게시물을 올리곤 한다”며 “시간이 지나 후회하면서 삭제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인은 취업·승진·결혼을 앞두고 과거에 올렸던 부정적 게시물에 대한 삭제 요청이 가장 많다. 제삼자에 의해 악의적으로 유포된 사진이나 동영상의 삭제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게시물이 개인 정보 침해에 해당되지 않을 때, 해당 글이 한 개인을 특정한다고 볼 수 없을 때, 글쓴이가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을 때는 삭제가 불가능하다. 또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해외 사이트는 타인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에 소극적이다.

김 대표는 “이번에 자기 게시물에 대한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지만 해당 글이 자신이 올린 글인지 증명하는 절차가 관건”이라며 “탈퇴하기 전에 자신의 아이디와 이름·주소·연락처 등이 나와 있는 회원 정보 페이지를 캡처해 보관하면 나중에 자신의 잊힐 권리를 주장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hi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