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부진으로 금융계열사 중요성 커져…금융지주사 전환 꿈꾸지만 걸림돌 많아

'자산 340조' 삼성 금융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미래는
삼성의 두 날개는 제조업과 금융업이다. 그런데 최근 제조업은 성장 정체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의 리더는 어떤 전략을 고민할까.

당연히 제조업의 부활을 꾀할 방안을 찾는 한편 금융업의 성장에 보다 드라이브를 거는 일일 것이다. 이제 삼성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지 2년이 지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금융업의 성장을 추진할까. 또 삼성 금융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의지하면서 삼성의 실질적 리더는 이재용 부회장이 됐다. 이 부회장이 그룹을 맡은 지 2년여가 지나면서 그에 대한 여러 평가와 경영 방침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체적 평가는 이 부회장이 2년 동안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재편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직 문화 전반에 대한 혁신도 시도하고 있다.

먼저 2013년 말 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가 넘는 계열사 재편 작업을 진행했다. 한화 및 롯데그룹과의 1·2차 빅딜을 통해 화학과 방위 사업 계열사를 모두 정리했다. 지난해 9월에는 난관을 뚫고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을 공식 출범시켰다.

◆삼성 제조업의 일보 후퇴

이런 변화를 통해 삼성의 두 축은 더 확실해졌다. 삼성의 두 축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제조업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업이다. 아주 거칠게 보면 삼성은 제조업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매출을 올리고 금융업은 높은 내수 점유율을 바탕으로 이익을 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로 성장해 왔다.

삼성 제조업 계열사의 핵심은 정보기술(IT)이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전기·삼성SDI가 뒤를 받친다. 그런데 이들 3사의 실적은 지난 2년간 정체 상태다.

2013년 매출 229조원에 30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2014년 매출 206조원, 순이익 23조4000억원으로 외형과 내실 모두 역성장했다. 2015년에도 매출은 200조원을 가까스로 달성했고 순이익은 19조원까지 떨어졌다.

삼성전기도 비슷하다. 2013년 7조원이 넘었던 매출은 2015년 6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순이익도 2013년 3302억원에서 지난해에는 고작 206억원에 그쳤다.

삼성SDI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5년 말 기준 매출은 2013년보다 50% 이상 늘어나 7조5695억원을 기록했지만 순이익은 2013년 1479억원의 17.4% 수준인 257억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삼성 제조업의 성장이 정체를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금융업의 경쟁력이 커지지 않는다면 삼성의 성장도 힘들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금융업은 삼성 지배 구조의 핵심이다. 삼성의 지배 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7.08%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19.3%의 지분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3%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겐 어떤 상황이든 금융업이 성장해야 그룹과 자신이 모두 유리하다.

이 부회장은 예전부터 금융업 경쟁력 강화를 주문해 왔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부터 삼성의 금융업을 삼성전자와 같은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 시절부터 이른바 ‘JY 라인’, 즉 이 부회장과 친한 경영자들이 삼성 금융 계열사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 즉 이 회장이 금융 계열사의 역할을 제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부회장은 금융 사업을 독립적으로 보다 크게 키우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 시대 돌입 후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은 큰 변화를 겪었다. 대표적인 게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한 수직 계열화 작업이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14.98%)·삼성증권(11.14%)·삼성카드(34.41%) 지분을 확대하면서 지배력을 한층 강화했다. 삼성자산운용은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수직 계열화 전략과 함께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최근 자본 정책의 변화를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순이익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유보 등에 균등하게 배분하는 이른바 ‘333정책’의 후퇴가 공식화됐다. 모든 금융 계열사의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할 정도로 후폭풍이 컸다.
'자산 340조' 삼성 금융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미래는
◆금융 계열사, 일제히 실적 약진

오랜 기간 유지했던 주주 친화적 자본 정책을 버리고 선택한 카드는 성장이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본격적인 해외 진출 및 활발한 인수·합병(M&A) 의지를 밝혔다. 주가 급락을 감내하면서까지 이 부회장식 성장 전략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등 주력 계열사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집결한 이유 역시 금융 사업 재편과 발전 전략 모색을 위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금융 계열사 경영진에게 중·장기 전략과 성장 모델 수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지난 2년간 삼성 금융사들의 이익은 우상향했다. 2013년 19조3044억원이던 삼성생명 영업수익은 2015년 27조7059억원으로 불어났고 순이익도 5844억원에서 1조2095억원으로 2배 넘게 커졌다. 삼성화재 역시 2013년 15조6384억원, 5151억원이던 매출과 순이익이 지난해 21조7291억원, 8138억원으로 성장했다.

삼성카드와 삼성증권의 매출과 이익도 모두 늘어났다. 2013년 3150억원, 240억원이던 삼성증권 영업수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각각 5401억원, 2750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삼성카드의 영업수익은 2조8471억원에서 3조3022억원, 순이익은 2732억원에서 3842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룹 내에서 금융 계열사들의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지난 2년간 16개 상장 계열사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2%에서 11.6%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삼성전자를 제외한 15개 상장사 순이익 중 금융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58.3%에서 71.6%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금융 4개사가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관건은 이 같은 삼성의 금융사들이 여기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다. 각 계열사들은 모두 한계에 직면한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더뎌지면서 금융업 자체의 성장성이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보면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보험사들은 전반적인 국내 보험 시장 정체 속에서 저금리 등으로 인해 지속 성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카드는 올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여파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고 삼성증권은 올해 초 매각설에 시달리기까지 하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자산 340조' 삼성 금융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미래는
◆‘글로벌 삼성 금융’을 향한 도전

전문가들은 삼성 금융이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적극적인 해외 진출, 또 다른 하나는 금융지주의 설립이다. 전자는 포화된 내수 시장을 벗어나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일이고 후자는 각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본격적으로 내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해외 기업 M&A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해외 금융회사에 대한 M&A 물건을 찾고 있고 일부는 진척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도 올 초 진행한 기업설명회(IR)에 직접 참석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보험사 M&A와 자산 운용 글로벌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발언은 예년보다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삼성생명은 일단 이미 진출해 있는 중국과 태국 시장에서의 안착을 시도하는 동시에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M&A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 운용 경쟁력 강화 부문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100% 자회사이자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삼성SRA자산운용을 보유한 삼성생명은 지난해 삼성자산운용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자산 운용 투톱 체제를 완성했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자본 정책을 바꾸겠다는 것은 오너의 사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금융 계열사 지배는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감각을 키운 이 부회장의 어떤 결과를 낼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업의 해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금융업은 ‘규제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의 예만 봐도 그렇다. 세계 최대의 금융사들인 씨티그룹이나 골드만삭드 등도 국내에선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삼성의 금융사들이 ‘각개전투’를 통해 해외에서 큰 성과를 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결국 삼성 금융사들이 삼성전자와 같이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금융지주사 설립밖에 답이 없다. 금융지주 설립은 실제로 금융지주사 내 계열사 간 고객 정보 공유를 통해 다양한 금융 상품을 개발·판매할 수 있고 부실 계열사에 대한 합병·재편과 외부의 유력 금융사 M&A도 훨씬 손쉽게 할 수 있다.

삼성이 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는 획기적 돌파구가 되는 셈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KB금융·신한금융 등이 모두 금융지주회사 구조를 구축한 것은 이런 엄청난 효과 때문”이라며 “특히 고객 정보를 공유해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상품을 제공하면 서비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삼성 금융지주가 설립된다면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업까지 아우르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와 금융업의 연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새 국제회계기준도 변수

하지만 삼성이 금융지주회사를 완성하려면 고비가 많다. 다른 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30%까지 확보해야 하는데 각 계열사의 지분을 이 수준까지 맞추려면 최소 수조원대의 자금이 필요하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 같은 제조업 계열사 지분 정리도 부담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약화 역시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와 금융계에선 삼성의 금융지주사 설립이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시각이 파다하다. 금융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지금 같은 순환 출자 중심의 지배 구조를 지속하기 어려운 데다 금융지주사의 장점이 많기 때문에 삼성이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 보험업권의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4’ 2단계 도입에 대비해야 하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회계기준 2단계에 따라 유럽형 ‘솔벤시II’ 자기자본 규제 제도가 시행되면 보험사에서 보유한 주식 채권 등의 자산도 모두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된다. 보험사에서 보유한 주식의 시가에서 40%를 위험 요구 자본으로 쌓는 내용도 포함된다.

삼성생명은 솔벤시II 규제를 적용하면 자기자본을 추가로 6조~7조원 정도 확충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는 약 14조원으로 평가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에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 가운데 2.2% 이상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 지분 2.2%의 가치는 현재 약 4조원에 이른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면서 2020년 도입되는 국제회계기준 2단계와 솔벤시II 규제 등에 대비해 자본 건전성도 확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비즈니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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