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이슈]
삼성, 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됐지만 ‘중요 결정 올스톱’돼 전전긍긍

[한경비즈니스 = 김서윤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국민들은 특검이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권력 구조를 어지럽힌 이들의 부정을 명백히 밝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사의 초점이 국정 농단의 주범들이 아닌 대기업 총수들에게 맞춰지면서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월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최순실 수사에 국내 1위 기업을 엮어 ‘이슈’를 만들어 내려고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을 강경하게 압박하는 특검팀을 두고 기업과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특검으로부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순실 측에 430억원대의 뇌물 공여 혐의와 횡령·위증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부장판사는 “뇌물죄의 요건에 해당되는 대가성과 부정청탁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 입증 및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도주 우려가 없고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현 상황에서는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 1위 그룹이 검찰의 수사로 경영상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 사법부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삼성 총수의 부재로 인해 기업들이 겪을 최악의 경제 상황과 파장을 고려한 판결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순실 수사하랬더니 ‘기업 때리기’ 먼저 나선 특검 ‘급제동’
(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특검의 무리수, 민간외교까지 파장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부정부패 기업’으로 낙인찍혔을 때 생길 막대한 경제적 피해에 대해 지적했다.

먼저 삼성은 당장 경영 공백 상태를 피하게 됐지만 비상 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 수사 이후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에 대한 무리한 수사는 민간외교에까지 타격을 줬다. 이 부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면담에 한국 대표 기업으로 초청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조사, 국정조사 청문회, 특검 수사 등에 발목이 잡혀 참석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애플·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최고경영자를 만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프랑스의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약속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 환심 사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이 빠짐에 따라 향후 미국 비즈니스에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삼성은 전경련 탈퇴, 미래전략실 해체 등 조직 혁신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모든 것이 안갯속에 갇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게 됐다. 삼성은 현재 인사와 조직 개편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특검발 취업 한파’도 본격적으로 불어닥칠 전망이다. 지난해 1만4000여 명을 고용한 삼성은 특검 수사가 장기화되면 올해 상반기 신규 채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 취업 준비생은 “특검이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업들만 옥죄는 수사로 변질되는 것 같다”며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특검 수사로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앞날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4300여 개 협력사들도 ‘경영 차질 도미노’ 현상을 겪으며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이 특검 수사로 올해 신규 투자와 제품 판매 목표 등에 차질을 빚으며 협력사들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제일기획 등 협력사에서 근무 중인 6만3000여 명의 생업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협력사 관계자는 “삼성이 투자를 확정하길 바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관련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삼성은 갤럭시 노트7의 발화 원인을 1월 중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전략 제품인 갤럭시 S8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 휴대전화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 역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한 협력사 대표는 “삼성만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아직까지 우리에게 얼마만큼 부품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와 실적 하락으로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해외부패방지법(FCPA)으로 처벌받는 기업에 천문학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미국 조달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미 국방부에 갤럭시 스마트폰을 납품하고 있는 삼성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시장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삼성의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면 소액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부패 기업’ 낙인찍혀 수출 막힐 수도

앞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재판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삼성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은 최순실 측에 대한 자금 지원에 대해 대통령의 강압에 의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의 구속영장 카드가 기각되자 뇌물 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SK·롯데·CJ 등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방향도 관심사다.

특검팀은 영장 기각 이후 긴급회의를 열고 “변함없이 원칙대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증거와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다. 재영장 청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향했다. 기존의 기업 총수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올 때 흔히 보였던 ‘휠체어 코스프레’는 없었다. 건강을 구실로 여론의 동정이나 선처를 바라지 않겠다는 태도다.

경제 및 산업계에 드리워진 검은 구름이 언제쯤 걷힐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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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