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한미약품·유한양행 등 대형사가 투자 선도…투자금 2197억원 ‘사상 최대’
‘바이오 벤처’에 곳간 푸는 대형 제약사들
(사진) 바이오 스타트업 파멥신의 신약 개발 연구 모습. 파멥신은 2016년 유한양행으로부터 30억원을 투자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바이오벤처에 돈이 몰리고 있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바이오벤처는 그만큼 창업도 투자도 쉽지 않은 분야로 여겨져 왔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붐을 일으켰던 바이오벤처 투자가 그간 주춤했던 이유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이오벤처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투자자금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 사태 등으로 바이오벤처 투자의 위험성이 다시 부각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이오벤처의 높은 성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투자자금이 상당하다.

특히 국내 대형 제약사들의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금액은 사상최대치를 달성했다.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가 ‘윈-윈’하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제약사, 바이오벤처 투자금 3년새 10배

한국벤처캐피털협회(KVCA)에서 발표한 ‘VC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2월을 기준으로 지난해 벤처캐피털들의 신규투자금액(2조858억원) 중 가장 많은 투자자금이 흘러들어간 분야는 ‘바이오$의료’ 분야로 나타났다.

총 4686억원 규모로 전체의 21.8%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2012년 1000억원대 였던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규모가 커진 셈이다.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국내 대형 제약사들 또한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 ‘DIVA’에서 확인해 본 결과 지난 2016년 11월을 기준으로 연구개발(R&D)비 상위 10대 제약사의 바이오벤처 투자 금액은 총 2197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대비(1606억원) 약 36% 뛰어오른 것으로, 사상최대 금액이다. 2014년 269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 가까이 증액된 수치다. 무엇보다 VC의 바이오벤처 투자금액과 비교해도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VC들 못지않게 국내 대형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의 자금줄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 벤처’에 곳간 푸는 대형 제약사들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은 금액(1817억원)을 R&D에 투자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는 바이오벤처 투자에 있어서도 가장 적극적이다.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타 법인 출자 금액이 1000억원을 넘어선다. 타 법인 누적 출자금액은 1301억원으로 집계된다.

한미약품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지난해 3월 바이오현미경 스타트업인 토모큐브에 1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7월에는 약국 자동화 시스템 개발 업체인 제이브이엠을 1291억원에 인수했다.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와 기술창업 전문가인 홍기현 대표가 공동 창업한 토모큐브는 세계 최초로 3차원 현미경을 개발해, 살아있는 세포를 염색 과정 없이 실시간으로 관찰 할 수 있다.

제이브이엠은 약품관리 자동화 시스템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으로, 한미약품이 보유한 영업력에 제이브이엠의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한미약품은 제이브이엠의 전자동 약품관리 솔루션인 ‘인티팜’을 통해 중국 의약품 관리$조제기기 유통 시장에 진출하며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100억원을 출자해 바이오벤처 VC인 한미벤처스를 설립했다. 초기 단계의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신생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를 지원하고 국내 신약개발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100억원 중 50억원을 직접 투자할 정도로 유망 바이오벤처를 발굴하는 데 적극적이다.

◆ '신약 개발'이 투자 핵심

유한양행도 바이오벤처 투자에 적극적이다. 지난해에만 총 352억원을 투자했는데, 누적 금액으로만 보자면 한미약품을 넘어선다. 모두 13개 기업에 총 1469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011년 유전체 및 발연체 분석시스템 업체인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 45억원, 2012년 유전자 분석 전문기업 테라젠이텍스 200억원, 2013년 세정제$방향제 등 위생용품 전문회사인 유칼릭스 27억원, 2014년 영양수액제 전문업체 엠지에 102억원을 투자했다.

특히 2015년~2016년에만 9개 업체와 손을 잡을 만큼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분자진단업체 바이오니아에 100억원, 화장품 제조업체 코스온에 150억원, 항체융합기술을 활용한 단백질 치료제 개발기업인 제넥신에 200억원을 쏟아부었다.

2016년 면역항암치료제를 개발하는 이뮨온시아 120억원, 항암 항체치료제 개발전문업체 파멥신 30억원, 미국 신약개발사 소렌토에 약 114억원, 면역증강 단백질 기술을 보유한 미국 네오이뮨테크에 약 34억원, 폐암치료제를 전문으로 하는 제노스코(국내 신약개발사인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에 약 48억원을 지원했다.

유전자분석, 진단시약, 수액제, 화장품까지 다양한 분야의 바이오벤처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신약개발이다.

지난해와 올해 투자업체 대부분이 신약개발 전문에 집중돼 있다. 대표적으로 이뮨온시아는 유한양행과 소렌토가 세운 합작벤처회사로 면역 치료 후보물질 발굴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뮨온시아 등을 통해 신약후보물질의 R&D를 지원하고 후기임상 단계서 글로벌 제약사에 라이센싱 아웃(독점 개발 및 판매 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독도 바이오벤처 투자에 적극적인 제약사로 손꼽힌다. 2016년 한해 동안 한독의 바이오벤처 투자 금액은 총 123억원 규모로, 누적 투자 금액은 약 650억원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2013년 제넥신에 290억원, 2014년 네오이뮨테크 10억원, 2015년 의료기기전문업체 한독칼로스메디칼 10억원, 2016년 진단기기 전문업체 엔비포스텍에 84억원, 기능성식품업체 JUST-C에 39억원을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한독은 제넥신의 최대 주주(30%)로 지난 2012년부터 성장 호르몬 공동 개발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성장호르몬결핍증 치료를 위한 희소병 의약품 지정을 받는 등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 겸 한국바이오협회 상무는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이유는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보다 다양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해 왔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빅파마(글로벌 제약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R&D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국내 바이오스타트업 역시 의사출신 창업자를 비롯해 우수한 인력이 유입되고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이와 같은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제약사들의 입장에서도 R&D 수요를 외부투자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유 상무는 “높은 기술력을 지닌 바이오벤처들이 늘어나면서 제약사들의 입장에서도 바이오벤처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약을 개발하는지 궁금증이 늘어난 것이다”며 “이미 미국 등에서는 대형 제약사들이 바이오스타트업에 투자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온 뒤 M&A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협력적 혁신(컬래버레이티브 이노베이션)’이다. 큰 회사는 작은 회사를 통해 ‘혁신’을 수혈 받고 작은 회사는 큰 회사로부터 ‘자금’을 수혈 받아 함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성공 모델을 따라가기 시작한 초기단계라는 얘기다.

바이오전문 VC인 인터베스트의 임정희 전무는 “제약사들의 투자 목적도 신약 개발이 주류를 이루지만 경영 참여, 사업 다각화 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며 “이와 같은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는 다면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스타트업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