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이슈]
‘자율 경영’ 중심의 강력한 개혁 의지… ‘정경유착 고리 끊겠다’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이재용의 파격쇄신 시작
(사진) 삼성 서초사옥.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김서윤 기자] 삼성이 창립 이후 수십 년간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을 해체했다. 할아버지(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대부터 이룩한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감내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택이었다.

이 부회장은 옥중에서 “미전실을 해체하라”고 가장 먼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유착을 단절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단호한 메시지다.

삼성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탈퇴했을 때도 재계 원로들 사이에서는 선대 회장의 유산을 손자가 뒤엎었다며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변화와 개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삼성그룹은 2월 28일 미래전략실 해체를 포함한 ‘5대 쇄신안’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룹 개념을 없애고 각 계열사별 독립 경영 체제로 철저하게 전환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전실의 해체는 사실상 그룹의 해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이 이날 내놓은 쇄신안은 ▷미래전략실 해체,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및 모든 팀장 사임 ▷각 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및 그룹 사장단 회의 폐지 ▷대관(對官) 업무 조직 해체 ▷외부 출연금·기부금 일정 기준 이상은 이사회 또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 승인 후 집행 ▷박상진 승마협회장 및 삼성전자 사장 사임 및 승마협회 파견 임직원 소속사 복귀 등이다.

◆ 사실상의 그룹 해체, 방식도 파격적

미전실은 전략팀·기획팀·인사지원팀·법무팀·커뮤니케이션팀·경영진단팀·금융일류화지원팀 등 7개 팀이 모두 해체됐다. 기획팀이 맡던 대관 조직도 해체하고 이와 관련된 업무를 없애기로 했다.

미전실의 팀장 7인도 3월 1일 전원 사퇴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기소된 최 전 부회장과 장 전 사장은 옷을 벗었다. 사장급인 김종중 전략팀장, 정현호 인사지원팀장, 성열우 법무팀장 역시 사표를 냈다.

부사장급인 이준 커뮤니케이션팀장, 박학규 경영진단팀장, 이수형 기획팀장, 임영빈 금융일류화추진팀장도 회사를 떠나게 됐다. 최순실·정유라 씨 모녀에게 승마 특혜 지원을 했던 박상진 사장도 사임했다. 삼성이 파견했던 승마협회 임직원들은 전원 소속사로 복귀하게 됐다.

‘쇄신안’ 발표 직전 재계 일부에서는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나머지 팀장들은 각 계열사로 이동할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이 부회장은 사장 선에서 인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 팀장급까지 모조리 사표를 받으며 원칙대로 미전실의 완전한 해체를 실행해 보였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끊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된 조치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삼성은 기부금이나 후원금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미전실에서 관리해 왔던 수천억원에 달하는 외부 출연금과 기부금은 각 계열사별로 일정 기준 이상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 집행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10억원 이상 기부나 후원금을 지원할 때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대외 후원금 운영 투명성 강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 1000만원 이상의 모든 후원금을 팀장(사장·부사장)들의 자체 심의 회의를 거치도록 결정했다.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59년 만들어 58년간 이어져 오던 계열사 사장단 회의도 폐지됐다.

삼성그룹은 각 계열사의 자율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 부회장이 당분간 경영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고 미전실과 사장단 회의까지 없앤 상황에서 60여 개 계열사는 각각 이사회를 중심으로 경영 활동을 각자 해 나가야 한다.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이재용의 파격쇄신 시작
(사진) 서초동 삼성사옥 출입구. /한국경제신문

◆ 삼성이 짜는 새로운 ‘미래 전략’은?

삼성은 전자·물산·생명 등 3개 핵심 계열사가 주축이 되고 이사회와 협의하며 회사를 이끌어 갈 전망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 총수가 빠진 삼성이 힘을 잃을 것이라는 설이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에도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체제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혼란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삼성은 총수 부재 상황에서 미전실을 해체하며 팀장급 이상의 간부를 모두 물러나게 하는 초고강도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은 보통 사장급 이상이 퇴사할 때 계열사 고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수순으로 예우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관행도 거치지 않았다.

최 전 부회장(미전실 실장)과 장 전 사장(미전실 차장)은 3월 1일자로 사퇴하고 삼성을 떠났다. 삼성 내부에서는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닌 팀장급까지 사퇴시켰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그룹이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된 것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분분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이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말했던 ‘미전실 해체’에 관한 약속을 확실히 지킨 것”이라며 “앞으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겠다는 경영 쇄신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처사”라고 말했다.

각 계열사들은 사장단 및 임원 인사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임원 인사와 채용, 사회공헌 등 그동안 미전실에서 해왔던 업무들이 모두 폐지되며 이 같은 업무들을 각 계열사에서 각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전실 소속 임직원 200여 명에 대한 인사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 2008년 비자금 사건으로 삼성 특검이 있었을 당시 해체됐던 전략기획실이 2년 만에 미래전략실로 재탄생한 사례가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당시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미전실이 예전처럼 다시 부활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경영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도 당분간 중단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던 투자가 각 계열사별로 넘어가면 단기 실적에 맞추기 위해 중·장기성 사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관 합동 투자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미전실 해체는 취업 시장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그룹 차원의 공채를 주도해 왔던 미전실이 해체되며 각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게 된다. 그룹 차원의 공채에 비해 채용 규모가 줄어들고 수시 채용 비율이 높아지며 신입보다 경력직 채용이 늘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올 상반기 신입 사원 채용 이후 하반기부터는 각 계열사가 필요한 인력을 원하는 시기에 각자 뽑게 된다.

그동안 그룹 단위에서 필요한 예상 인원을 취합해 각 계열사에 가이드라인을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 채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채용 규모를 가급적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계열사 각자도생 채용 시스템에서는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주된 관측이다. 가뜩이나 한파가 불어 닥친 취업 시장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겐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삼성이 그룹 차원의 사업을 중단하면서 사회공헌 활동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삼성은 매년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거액의 성금을 기탁해 왔다. 삼성은 2012년부터 해마다 500억원을 기부했다. 5년간 누적액은 4700억원이다.

하지만 미전실이 사라지면서 그룹 차원의 성금도 사라지게 됐다. 각 계열사들이 이웃 사랑 성금을 별도로 기부해 오긴 했지만 예년과 같은 규모로 지원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들이 기부금 집행 규정을 대폭 강화해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보수적으로 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소외 계층에 지원되던 거액의 기부금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전실 해체는 이 부회장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그간 이 부회장은 특검 소환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전실 법무팀의 법률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태평양 중심으로 법률 자문을 받게 된다.

태평양의 변호인단은 현재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송우철 변호사 등 태평양 소속 변호사 10명과 판사 출신인 김종훈 변호사, 특검 수사 단계에서 선임계를 냈던 검찰 출신 조근호·오광수 변호사로 꾸려졌다.

삼성 측 고위 관계자는 “오는 3월 9일 정식 재판이 열리면 태평양이 중심이 돼 이 부회장을 돕기로 했다”며 “삼성 측은 필요한 서류만 찾아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의 전·현직 수뇌부의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가 맡게 됐다.
애초 이 부회장 사건은 무작위 전산 배당 시스템을 통해 형사합의21부(조의연 부장판사)가 맡는 그림이었지만 조 부장판사가 영장전담 업무를 맡았을 당시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해 사건 재배당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형사합의33부로 재배당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며 청와대로부터 도움을 받는 등의 대가로 최순실·정유라 씨 측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은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최 전 부회장과 장 전 사장도 무죄 입증을 통해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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