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정부, 뒤늦게 2조5400억원 지원…이어지는 수주 가뭄에 ‘사업 다각화’ 살길
‘조선업 근간’ 기자재 업체가 무너진다
(사진) 조선업 불황의 영향으로 조선소 실내외 작업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세계적으로 조선업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어려움에 빠진 것은 비단 조선사뿐만이 아니다. 조선소의 일감이 마르자 조선 기자재 납품 업체들도 생존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올해도 조선업 불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조선 기자재 업체들의 위기감이 보다 고조되고 있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조선 기자재 업체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STX조선 납품 업체, 줄줄이 도산 소문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역대 최악의 수주 가뭄 속에 수주 잔량이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조선 기자재 업체의 타격 또한 큰 상황이다. 보통 조선소에 일감이 떨어지면 기자재와 부품 주문이 끊긴다. 이 때문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협력업체들부터 일거리가 말라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기자재 업체는 대형 조선사들의 잇단 법정 관리로 자금줄마저 막혀 버렸다. 지난해 법정 관리에 돌입한 STX조선해양의 예를 보면, 법정 관리 개시에 따라 조선 기자재 업체 측에 내야 하는 납품 대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STX조선해양에 기자재를 납품하던 기업 여러 곳이 부도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차원의 정확한 통계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관련 업계에선 현재 이 같은 조선업의 불황으로 최소 100여 곳 이상이 문을 닫았거나 폐업 예정인 것으로 추산한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조선 밀집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시행 중인 상태다. 업계를 중심으로 조선 기자재 업체의 붕괴가 현실화되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조선 기자재업은 엔진·보일러 등 선박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망라하는 조선업 후방산업으로, 국내 조선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부 지원이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 살리기에만 집중돼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산업부가 내놓은 방안은 조선업 침체로 위기를 겪고 있는 울산, 경남(거제·통영·고성), 부산, 전남(영암·목포), 전북(군산) 등 5개 조선 밀집 지역에 2020년까지 3조70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정 지역에만 자금 집행을 결정한 것은 5개 권역의 경기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서다. 2014년 기준 국내 조선업 종사자 15만7000명 가운데 5개 권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13만7000명으로 전체 중 87%를 차지한다.

조선업 자체만으로 지역 경기가 먹고사는 구조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면 대체 산업이 없어 지역 경제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5개 권역 조선 기자재 업체 등을 대상으로 단기 정책 자금 총 2조3000억원을 지원한다.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6800억원, 특례보증 8000억원, 조선구조개선펀드 2000억원, 소상공인 융자금 6000억원 등이다.

특례보증은 추가 대출이 어려운 기업을 돕고 조선구조개선펀드는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해 저평가된 기업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말까지 긴급경영안정자금·특례보증 등으로 1조2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업 의존도 낮춰야

다만 현재까지 1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지만 올해도 조선 업황이 쉽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문제다. 단기정책 자금은 조선 기자재 업체의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됐다. 하지만 조선 업황이 살아나지 못하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산업부가 꺼낸 카드는 조선 기자재 업체의 사업 다각화다. 지난 1월 ‘조선 밀집 지역 2017년 중점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사업 다각화를 위해 5대 국비 24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조선 기자재 업체가 발전 기자재, 해상풍력 등 연관 업종으로 전환하는 것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조선 기자재 업체 살리기에 들어가는 돈은 2조5400억원에 달한다.
‘조선업 근간’ 기자재 업체가 무너진다
내용을 보면 ▷연구·개발(R&D) 지원(50억원) ▷사업화 지원(45억원) ▷투자 보조금(1106억원) ▷사업 전환 자금(1250억원)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기업은 설비투자 금액의 최대 24%까지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조선 기자재 업체와 에너지 공기업의 연계도 강화한다. 올해 산업부 산하 에너지 공기업의 발주 규모는 1조767억원에 달하는데, 여기에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관련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강성천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이를 통해 앞으로 산업부와 에너지 공기업은 조선 기자재 업체가 실질적인 납품 및 공정 참여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대책들을 통해 산업부는 2014년 65%에 달했던 5개 지역의 조선업 의존도를 2025년 43%까지 낮춘다는 전략이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