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이슈]

참모들 모아 만든 비서실,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격상
정경유착의 산실 '꼬리표' 달렸던 미전실 역사 속으로…
‘삼성 미래전략실’ 탄생부터 해체까지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삼성그룹이 최근 해체한 미래전략실은 고(故) 이병철 창업자의 유산이다. 이병철 창업자는 1959년 자신의 참모들을 모아 비서실을 만들었다.

비서실은 재무와 인사를 움켜쥐었다. 그룹 내 2인자는 비서실장이었다. 인재 제일주의였던 이 창업자의 뜻에 따라 인사권을 쥔 이가 실세였다.

이서구 초대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박태서·이만우·이보영·이진석이 비서실장에 이름을 올렸다.

◆ 창업자의 오른팔 ‘비서실’의 탄생

비서실은 소병해 실장에 이르러 권력형 조직으로 격상했다.

이건희 회장과 동갑내기였던 소병해 비서실장은 1978년부터 1990년까지 12년간 그룹 2인자였던 입지적인 인물이다. 소 실장은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성균관대 상학과를 졸업해 36세에 비서실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비서실은 15개팀이 250여 명의 인력을 거느리며 인사·감사·기획·재무·경영관리·국제금융·홍보 등 그룹의 전방위 업무를 관장했다.

소 실장은 삼성그룹의 전산화를 정착시키고 경영권 승계를 매듭지은 1등 공신이었다.

1960년대 삼성은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을 필두로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명성을 떨쳤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현대(1위)와 대우(2위)에 순위가 밀렸다.


이병철 창업자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비서실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먼저 아버지 대 사람이었던 소병해 실장을 바꿨다.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의 3년상이 끝나던 해에 소 실장을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이건희 회장은 새로운 비서실장으로 이수환 실장을 앉혔다. 이수환 실장은 1990년 12월부터 두 달간 비서실장을 하다가 이수빈 실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수빈 실장은 이건희 회장의 서울사대부고 4년 선배로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제일제당 관리부 등을 거쳤고 삼성생명을 생보사 1위로 키워내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수빈 실장은 1993년 10월 비서실장에서 물러났지만 30년 넘게 장수한 CEO로 유명하다.

이수빈 실장은 2008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 특검 사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3년간 회장 역할을 했고 현재까지 삼성생명 회장으로 총수 일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회장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큰 방향을 잡고 비서실이 세부 전략을 세운 뒤 각 계열사가 이를 실천하는 구도의 ‘삼각편대’ 전략을 짰다.

이 회장은 1991년 비서실 인력을 200명에서 130명으로 대폭 축소했다. 그리고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며 신경영에 돌입했다.


경영진의 세대교체 이후 첫 비서실장은 현명관 삼성건설 사장이었다. 이수빈 실장은 삼성증권 회장으로 옮겼다.

현 실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감사원을 거친 뒤 호텔신라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삼성 공채를 거치지 않은 이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전통을 깨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삼성은 1996년 매출 72조원을 찍는 등 급성장세를 거듭했다. 1997년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를 맞으며 ‘상시 위기 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입지전적 인물은 이학수 부회장이다. 이병철 시대에 소병해 실장이 있었다면 이건희 시대에는 이학수 실장이 존재했다. 그는 그룹 2인자 자리를 12년간 지킨 전통 엘리트 재무통이다.


비서실은 1998년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학수 실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과정에서 삼성 내 사업 조정과 투자 조정 등을 주도하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59개 계열사를 45개로 축소했고 다양한 사업군을 매각했다. 인력도 16만7000명에서 11만3000명으로 30% 이상 감축했다. 이 회장은 사재 2200억원을 내놓았다.

삼성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성과주의를 강조했다. 연봉제를 도입했고 보상 체계도 차별화했다.


◆ 구조본→전략기획실→미전실로 이어져


재무 라인은 오랫동안 수뇌부 핵심에 자리했다. 2005년 삼성 사장단 50여 명 중 20여 명이 구조조정본부 출신이었다.


2006년 이건희 회장은 ‘창조 경영’, ‘디자인 경영’, ‘마하 경영’을 주장했다. 그해 구조조정본부는 ‘전략기획실’로 재편됐다. 전략기획실은 2008년 삼성 특검을 거치며 해체됐다. 이건희 시대에 12년간 위세를 떨치던 이학수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그로부터 2년 뒤인 2010년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출범시키며 그룹 컨트롤타워를 다시 세웠다.

첫 미래전략실 실장은 김순택 실장이었다. 김순택 실장은 신사업을 담당하는 기획통이었다. 김 실장은 과거 현명관 실장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2년 최지성 부회장이 미전실 실장을 맡으며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시작됐다. 삼성그룹 부회장이자 미전실의 마지막 실장으로 이름을 남긴 최지성 실장은 이재용 시대의 새판 짜기의 중심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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