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인사이드]
자살보험·연금보험 배당금 ‘전액 지급’ 결론…IFRS17 ‘자본 확충’ 부담 커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생명보험업계에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6년 보험회사 경영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생보사의 순이익은 25% 줄어들었다. 이와 반대로 손보사의 순이익은 27% 증가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8년 만에 손보사의 순이익이 생보사를 추월했다.

저금리 기조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2021년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수십억원의 자기자본 확충 등 체질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에 이어 ‘연금보험 배당금 축소 지급’ 논란이 불거지는 등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연금보험’ 논란, 보름 만에 백기

삼성생명·교보생명 등 ‘연금보험 축소 지급’ 의혹을 받았던 생보사 9곳은 지난 3월 30일 미지급 배당금의 ‘전액 지급’을 결정했다. 금감원이 3월 15일 “생보사들이 1993년부터 1997년에 판매한 ‘세제 적격 유배당 연금보험’의 보험금 지급 방식을 점검하고 있다”고 밝힌 지 보름 만이다.

논란이 된 연금보험은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유배당 상품이다. 보험사가 고객들에게 약속한 이율(예정이율)과 별도로 자산 운용 수익률을 가입자에게 배당해 주는 것이다. 매년 말 배당금을 적립해 두고 가입자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배당금에 적용하는 이자율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됐다. 약관에는 예정이율에 이자율차 배당률(보험사의 자산 운용 수익률에서 예정이율을 뺀 이율)을 추가로 얹어주기로 했다. 다시 말해 보험사가 예상했던 이율보다 자산 운용 수익이 많으면 그만큼을 가산해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약정이 골칫거리가 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자산 운용 수익이 예정이율보다 높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자산 운용 수익률이 나빠지면서 이자율차 배당률이 역마진이 된 것이다.

일부 생보사들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자율차 배당률을 예정이율에서 차감해 배당금을 산정해 왔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2003년 생보사들의 배당 준비금에 반드시 예정이율 이상을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이자율차 배당률의 취지가 ‘가산금리’이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적용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한화생명 등은 이 같은 해석에 따라 이자율차 배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이를 ‘0’으로 간주해 예정이율을 지켰다.

하지만 금감원이 국내 14개 보험사 중 9개사에서 기존의 방식을 적용해 배당 준비금을 산정해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며 실태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삼성생명 등은 이자율차가 마이너스 3%를 기록하자 평균 8%대인 예정이율에서 마이너스 이자율차를 제한 5%대 배당 준비금을 적립해 왔다.

생보사들은 이와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백기 투항을 선택했다. 생보사들이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배당금은 업계 전체로 볼 때 1000억원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삼성생명이 7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교보생명이 330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 회계기준, RBC 관리 등 난제 산적

이는 지난 2~3년간 법정을 오가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자살보험금 논란’과는 사뭇 비교되는 빠른 대처다. 생보사들은 지난 3월 금감원의 철퇴에 결국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하며 금감원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자살보험 논란이 종지부를 찍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연금보험과 관련한 생보업계의 신속한 전액 지급 결정은 그간의 ‘학습 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한 셈이다.

대표이사 문책 경고, 영업정지 등과 같은 중징계를 앞세운 금감원의 강경한 태도에 지난 3월 생보사 빅3인 한화·삼성·교보생명은 미지급 금액을 전액 지급하기로 결정하며 두 손을 들었다.

이후 금감원은 3월 16일 2차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이들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췄지만 여전히 ‘1년간 신사업 제한’ 등 타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교보생명은 3사 중 유일하게 제재 수위에 변동이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영업 일부 정지’ 등의 제재를 받은 데다 3년간 신사업 진출까지 막혔다.

이들 3사의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는 대략 1000억원, 삼성 1700억원, 교보 67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연금보험 미지급 배당금까지 감안한다면 생보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만 하더라도 자살보험(1700억원)과 연금보험(700억원)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지급 금액은 2400억원에 달한다. 자살보험금과 연금보험 배당금 미지급 금액을 지급하게 되면 지급여력(RBC)비율이 하락하는 만큼 지급 금액의 규모를 떠나 장기적으로 IFRS17 대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2021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새 보험회계제도(IFRS17)의 골자는 보험사들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결국 보험사들의 회계상 자본이 줄고 부채 규모가 크게 증가하게 되고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생보사들로서는 ‘곳간 채우기’가 시급한 실정이다.
악재 이어지는 생보업, ‘해 뜰 날’ 언제
금융 당국은 최근 IFRS17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사들의 RBC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24일 IFRS17 시행에 맞춰 단계적으로 보험사들의 RBC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내놓았다.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RBC는 보험회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여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가용자본(보험회사에 예상하지 못한 손실 발생 시 이를 보전해 지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완충작용을 하는 돈)을 요구자본(통상 1년 동안 99% 신뢰 수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 예상액)으로 나눠 산출한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들에 RBC 비율을 100%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보사들은 최근 몇 년간 매출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변액보험·연금상품을 포함한 저축성보험 상품의 판매에 주력해 왔다. 특히 확정형 고금리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한 것이 생보사들에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변경된 보험업 감독 규정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저축성 상품은 가입 후 7년이 지나면 원금을 보장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IFRS17 도입을 앞두고 생보사들이 보험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부채 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당장 6월부터 반영되는 RBC 규제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천문학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험업계는 생보사들의 자본 확충 부담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