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핫 플레이스]
문화 공간 ‘대림창고’가 변화 물꼬 터…‘젠트리피케이션’이 위협
‘인스타 성지’로 다시 태어난 한국의 브루클린
(사진) 정미소 공장을 개조한 성수동 대림창고

[한경비즈니스=김영은 인턴기자] 젊은 예술가들의 도시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은 1980년대 미국 제조업의 쇠퇴로 빈 공장이 늘어나면서 우범지대였던 곳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맨해튼의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했던 젊은 예술가들이 브루클린의 폐공장을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브루클린의 변신이 시작됐다.

현재까지도 기존의 낡은 공간을 최대한 유지한 채 ‘힙스터(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좇는 사람들) 문화’를 이끌어 오고 있는 브루클린은 ‘개발’이 아닌 ‘재생’을 통해 도시의 특색 있는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곳이 생겼다. 115만7025㎡(35만 평) 규모의 숲과 낡은 공장, 서울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아파트와 허름한 주택가가 공존하는 동네, 성수동이다. 특히 낡고 오래된 공장과 창고만 즐비했던 곳에 기존 건물 모습을 살린 문화예술 복합 공간과 카페 등 상점이 들어서면서 성수동은 ‘인스타그램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 산업과 문화 공존하는 ‘독특한 느낌’

성수동은 언제부터 젊은 세대의 ‘핫 플레이스’가 됐을까. 성수동은 1960년대 준공업단지로 조성돼 공장이 하나둘 들어섰다. 1970년대부턴 수제화 관련 업체가 몰리면서 국내 최대 수제화 산업지역이 됐다.
‘인스타 성지’로 다시 태어난 한국의 브루클린
2006년 재개발 기대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공장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9년까지도 성수동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것은 아파트와 같은 주거 공간이었다.

그러다 2012년 성수동이 ‘수제화 특화산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수제화’를 중심으로 한 도시 브랜드가 성수동의 확고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또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인 ‘대림창고’가 문을 열면서 성수동은 문화 소비적인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미소였던 공장이 전시회와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893㎡(207평)짜리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하면서 황량했던 성수동이 브루클린처럼 변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2~3년간 ‘성수동 아틀리에길’에는 인쇄 공장을 개조한 카페인 ‘자그마치’, 봉제 공장을 개조한 레스토랑인 ‘어반소스’ 등이 차례로 들어서며 새로운 카페 거리가 형성됐다. 이 밖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내부만 바꾼 공방과 작업실·디자인숍 등이 생겨나면서 공장과 문화 공간이 공존하는 성수동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탄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소셜 벤처업체들까지 더해져 성수동은 젊은 창업가와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됐다. 청년들은 건물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독특한 공간이 주는 ‘의외성’ 때문에 성수동을 찾는다고 말했다.

데이트를 위해 성수동을 자주 찾는다는 오수민(28) 씨는 “낡고 허름한 건물이 남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이 주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나친 상업화 막는 노력 필요

성수동이 매력적인 상권으로 부상하면서 외부인 유입이 늘어나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지가·임대료 상승에 따라 원주민 세입자가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대표적이다.

수익형 부동산 정보 업체 상가정보연구소가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성동구의 점포 증가율은 21.7%로 25개 구 중 가장 높았다. 특히 성수1가 1동의 점포 증가율은 52.2%에 달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무분별한 상점 유입에 따른 난개발과 개성이 결여된 상권의 양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연구원 측은 성수동이 단순히 상권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주도하면서 기존 주민들과 외부 소비가 혼합된 새로운 성수동의 문화를 만들어 성수동 커뮤니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동구청도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성동구는 2015년 9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뚝섬 주변 지역 지구단위계획 결정 변경안’을 통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주요 내용은 ‘대기업·프랜차이즈 가맹점 입점 불허’, ‘주요 가로변에 소규모 공방·서점 등 권장 용도 계획’, ‘임대료 안정 이행 협약과 연계해 상생 협약 체결 때 허용 용적률 인센티브 부여’, ‘지역 특성이 반영된 건축물 가이드라인 준수’ 등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전담 부서도 꾸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고 마을 공동체 사업 등 주민들이 주체가 된 방안을 내놓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만으로 기존 상점을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발전에 늘 따라오는 ‘문화 라이프사이클’이라며 젠트리피케이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의 위험을 줄여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대 상인과 이용객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과 장치를 마련한다면 서울의 다양한 곳들이 문화적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