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글로벌 유통·패션 기업, 채식주의자의 ‘식습관 혁명’에 집중하다
세계는 채식 열풍 ... ‘비거니즘’이 이끄는 新소비 문화
(사진) 채식 식탁./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김민지 인턴기자] 국제채식인연맹(IVU)은 전 세계 채식 인구를 1억8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모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은 약 30%에 이른다.

비거니즘(veganism)은 비건이 추구하는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동물로부터 나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절 거부하는 채식주의 식습관을 일컫는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민텔은 유럽이 현재 ‘식습관 혁명(diet revolution)’을 겪고 있고 올해의 푸드 트렌드로 ‘비건과 채식주의자(vegetarian)의 확대’를 꼽았다.

국내 또한 이런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주의자 규모를 전체 인구의 약 2%, 대략 100만~150만 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이 수치에는 비건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오보·락토 등 다양한 채식주의자가 포함된다.

매년 수천 명이 참가하는 채식 문화 축제, 다양한 채식 동호회, 하루 평균 250여 명이 이용하는 서울대 채식 뷔페 감골식당 등이 국내 비거니즘의 성장을 보여준다. 최근 채소와 경제를 조합한 ‘베지노믹스(vegenomics)’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비건을 포함한 다양한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시작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영국 유명 가수 아델은 동물 보호에 앞장서기 위해 2011년 고기를 끊었다. 아델은 BBC 라디오에서 “고기의 유혹에 넘어갈 것 같을 때 항상 작은 강아지의 눈을 본다”고 밝혔다.

최근 개봉된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생선은 먹는 채식주의자)’이다. 봉 감독은 영화 준비를 위해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소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동물 피와 배설물 그리고 냄새에 충격을 받아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구제역·조류독감(AI) 등 전염병과 환경 및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 증가가 채식 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는 채식 열풍 ... ‘비거니즘’이 이끄는 新소비 문화
◆ 비거니즘,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진화

비거니즘은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동물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거니즘을 실천으로 옮기는 ‘착한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비건 소비층을 겨냥하는 채식 시장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우선 채식주의자들의 식생활을 반영한 ‘맞춤 식품’들이 눈길을 끈다.

독일의 유명 초콜릿 회사인 리터 스포르트는 작년 9월 버터와 크림 등의 유제품을 일절 제외하고 오로지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 초콜릿 제품을 출시했다. 완전 채식주의자 비건이 선호하는 100% 식물성 초콜릿임에도 불구하고 50%의 코코아 함량으로 다크 초콜릿 맛을 유지해 비건 소비층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국내 식품업계 또한 비거니즘의 확산에 발맞춘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가 판매하는 육류 및 생선류 대체 식품 ‘채식 콩고기’의 2016년 매출은 전년 대비 57% 이상 늘었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하지만 해외시장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농심 순라면’ 역시 고기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라면이다. 일반 채식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비건들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유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들을 겨냥해 등장한 식물성 우유 시장 또한 눈길을 끈다. 그동안 식물성 우유 시장의 주 제품이 두유였다면 최근에는 코코넛·호두 등을 활용한 제품들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베지밀로 유명한 두유·음료업체 정식품이 작년 4월 출시한 식물성 음료 ‘리얼 코코넛 밀크’는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기록했다.

◆ 패션·코스메틱업계에도 ‘채식’ 바람
세계는 채식 열풍 ... ‘비거니즘’이 이끄는 新소비 문화
(사진) 러쉬 입욕제./ 한국경제신문

비건의 ‘착한 소비’는 단순히 먹거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연주의 화장품 회사다.

러쉬가 생산하는 제품의 85%는 비건 제품이다. 친환경적인 천연 원료를 사용해 합성 방부제를 최대한 넣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매년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캠페인을 벌이며 동물실험 반대에 대한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동물성 가죽과 털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도 등장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오래전부터 인조가죽과 합성 스웨이드를 사용해 친환경적인 의류 브랜드를 운영해 왔다.

이처럼 동물 보호를 실천하자는 착한 소비 바람이 불자 과거에는 고급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 받던 인조 모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와 동물사랑실천협회 등 국내외 동물 보호 단체들의 주관 아래 2012년 국내 최초로 인조 모피 패션쇼도 개최됐다.

◆ 돋보기: 비거니즘의 중심지, 독일

독일은 비거니즘 트렌드의 중심지이자 채식 산업의 선두 국가로 꼽힌다. 독일 채식주의자협회(VEBU)는 2016년 독일 채식주의 인구가 8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히고 베를린이 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베를린에는 대략 60여 곳의 채식 식당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건을 위한 거리까지 있다. 쉬벨바이너 거리로 알려진 이 거리는 비건을 위한 채식주의 식료품점·서점·옷가게와 강아지 사료 가게 등이 있어 젊은 연령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민텔이 3월 공개한 ‘글로벌 신제품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출시한 비건 식·음료의 18%가 독일 제품으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evelyn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