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통상임금 논란]
“소급 요구” vs “신의칙 반영 중요”…경영환경 고려해 기업존속 가치 지켜야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산업계가 8월 17일 선고되는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측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면 최대 3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작년 영업이익은 2조4000억원이다. 만약 사측이 소송에서 패소하면 한 해 영업이익보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면 경영 위기를 맞게 될 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의 동반 실적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아차 외에도 아시아나항공·교보생명·한국GM·현대자동차 등 크고 작은 기업들의 통상임금 소송이 이어지고 있어 이번 소송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2만7000여 명에 이르는 집단적 소송과 13명의 대표소송으로 이뤄져 있다.

기아차 노동조합 조합원 2만7459명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2011년 사측을 상대로 집단적 소송을 냈다. 2014년에는 조합원 13명이 회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연 750%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단체협약 기준에 의해 각종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기아차는 경영상 어려움이 없는 만큼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미지급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이 같은 노조 측의 주장에 맞서고 있다. “과거 성과급 등으로 이미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급 임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노사 신뢰를 깨는 행위이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도 어긋난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아차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와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느냐다.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 산업계 관심 집중
◆ 신의칙 적용 여부에 주목
2013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돼야 한다. 따라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2015년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던 현대자동차 노조는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현대차 상여금 시행세칙에 명시된 ‘두 달 동안 15일 미만을 근무한 자에겐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기아차는 정기 상여금이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충족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차와 산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 여부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노조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신의칙이 적용된다면 사측이 소송 금액의 전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판례가 2013년 12월 대법원이 판결한 갑을오토텍의 통상임금이다. 당시 대법원은 “통상임금 확대 청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한국 대부분의 기업이 정기 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임금 협상 시 노사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는 실무가 계속돼 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하급심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를 두고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1심과 2심 판결이 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아차와 같은 자동차 산업에 속한 한국GM은 2015년 신의칙이 인정됐다. 한국GM 소송 판결은 “회사가 속해 있는 산업군의 특성과 전망, 회사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연구·개발이 중단되거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기아차는 7월 최종 변론에서 “기아차의 어려움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도 노사 간 통상임금 합의가 되지 않아 추가 소송이 계속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노조 측 주장대로 통상임금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신의칙 적용 문제는 사회적 파장이나 자동차 산업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검토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영업이익으로도 통상임금 소송 부담액을 감당하지 못한다. 특히 앞으로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의 영향으로 올 상반기 중국 시장 판매 실적이 55% 감소했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하면서 중국에서의 영업 환경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인 미국도 업체 간 출혈경쟁 등으로 상반기 판매가 전년 대비 10% 줄었다. 미국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들어가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 궁지 몰리는 자동차 산업

산업계는 이번 소송 결과가 단지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 걸쳐 통상임금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현재 한국GM·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아시아나항공 등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최저임금 상승 논란 등 여러 사회적 환경과 맞물려 있어 상징적인 판결이 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한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3년 대법원 판결 이후 통상임금 소송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약 38조5500억원에 달하고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최대 41만8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년 늘어나는 기업 부담금은 8조8600억원에 이른다. 매년 8만5000~9만6000개의 일자리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판결 결과에 따라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 이상의 일자리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