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시공능력평가]
평가 금액 과대평가 등 문제점은 여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자리, 내년엔 바뀔까
(사진)삼성물산의 래미안대치팰리스 전경.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삼성물산이 2017 시공 능력 평가에서 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예전처럼 압도적인 1위의 모습은 아니다. 2위인 현대건설과의 시공 능력 평가액 격차가 2조원대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시공 능력 평가는 단순히 건설사들을 줄 세우는 것에서 벗어나 향후 대규모 공사 수주에서 건설사들이 얼마만큼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자료로 쓰인다. 매년 기업의 공사 수행 능력을 심사함으로써 발주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좁혀진 1·2위 격차, 내년에는?

시공 능력 평가는 발주자가 적정한 건설 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건설 공사 실적, 경영 상태, 기술 능력 및 신인도를 종합 평가해 매년 공시하는 제도다.

매년 7월 말 발표돼 8월 1일부터 적용된다. 평가는 국토교통부가 대한건설협회를 비롯한 업종별 건설협회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평 제도는 건설업계에서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활용된다. 우선 중소 건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인 건설업자(시평 3% 이내, 토건 1200억원 이상)는 시평액 1% 미만 공사의 도급을 제한하고 있다.

또 토목, 건축, 산업·환경 설비 공사는 시평 상위 10개 회사들 간의 공동 수급체 구성을 금지하고 있다.

공사 발주자는 시공 평가액을 기준으로 입찰을 제한할 수 있다. 또 조달청의 유자격자 명부제(시공 능력에 따라 등급을 구분해 공사 규모에 따라 일정 등급 이상으로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 도급 하한제(중소 건설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인 건설업자는 시평 금액의 1% 미만 공사의 수주 제한) 등의 근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7월 31일 발표한 ‘2017 시공 능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토목·건축공사업 분야 평가에서 삼성물산이 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삼성물산의 시평액은 16조5885억원으로 작년보다 2조7800억원 줄었다. 2위는 현대건설로 시평액은 13조7106억원이었다. 현대건설의 시평액은 지난해보다 4300억원 늘어났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시공 능력 평가에서 모두 ‘왕조’를 열어 본 기업이다. 현대건설이 5년간 지켜오던 시공 능력 평가 1위 자리를 2014년 삼성물산이 탈환한 이후부터 삼성물산이 4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시평액 차이는 2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6조1000억원보다 상당히 줄었다. 현대건설이 2014년 삼성물산에 1위 자리를 빼앗긴 후부터 점점 벌어졌던 양 사의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내년에는 양 사의 위치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삼성물산은 최근 건설 부문이 보수적 영업에 나서며 실적이 줄어든 반면 현대건설은 실적이 늘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자리, 내년엔 바뀔까
◆주택 경기 신바람타고 전체 시평가액 증가

3위와 4위는 각각 대우건설과 대림산업이 차지했다. 대우건설과 대림산업의 시평액은 8조3012억원, 8조283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한 계단씩 상승한 순위를 기록했다.

반면 포스코건설은 두 계단 하락해 5위를 기록했다. 포스코건설의 시평액은 7조7393억원이다.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6위와 7위 자리를 지켰다. 시평액은 GS건설이 7조6685억원, 현대엔지니어링이 6조8345억원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보다 두 계단 올라선 8위에 이름을 올렸고 시평액은 6조665억원이다. 9위와 10위는 롯데건설(5조4282억원)과 SK건설(4조6814억원)이 차지했다.

‘2017 시공 능력 평가’의 총액은 23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225조5000억원에 비해 2.7% 증가했다. 평가 항목별로 살펴봤을 때 주택 경기 호조에 따라 ‘실적 평가액’이 전년도 84조6000억원에 비해 5.3% 증가한 89조1000억원을 기록했다고 국토부 측은 밝혔다.

건설사들의 전반적인 실적 개선에 힘입어 전년에 비해 ‘경영 평가액’은 13.2% 증가한 77조2000억원, ‘신인도 평가액’은 2.8% 증가한 12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기술 평가액’은 기술 개발 투자비 인정 범위 축소로 12.9% 감소한 52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박찬주·정다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올 상반기 건설 시장에 대해 “지난 1분기부터 각 건설사들의 실적이 주택 사업 위주로 수익성이 개선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은 2018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공 능력 평가 총액 또한 주택 경기 호조를 타고 당분간 증가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시공 능력 평가에서 산출하는 ‘시공 평가액’은 각 업체가 1건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금액으로 환산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평가가 실제 건설사의 시공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잣대가 맞느냐는 의견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시평가는 ‘고비용·저효율’ 제도 논란도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건설사들이 현실 공사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보다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한 행정적 실적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공 능력 평가를 향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는 평가 금액의 과대평가다. 2013년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건설 공사 발주 지원을 위한 시공 능력 평가 제도 개선 방안’에는 시공 능력 평가의 평가 항목이 타 입찰 제도와 중복되고 평가 금액이 과대평가돼 제도의 효율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승복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 시공 능력 평가 기준 1건당 1조원 이상을 수주할 수 있는 업체가 36개나 돼 실제 시공 능력에 비해 시평 금액이 과대하게 산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7년 시공 능력 평가에서도 1조원 이상을 수주할 수 있는 업체는 38곳으로 나타났다.

또 시공 능력 평가가 대형 건설 업체의 수주 제한, 일부 발주 기관의 유자격자 명부 작성에만 활용되고 다른 곳에는 사용되는 예가 많지 않아 ‘고비용·저효율’ 제도라는 의견도 나왔다. 시공 능력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하고 업체를 서열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사전검증 추가로 신뢰도 높여

전문 건설업계가 손해 본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종합 건설과 전문 건설의 겸업은 불가능했지만 2008년부터 겸업이 가능해졌고 다수의 종합 건설 업체들이 전문 건설 분야에 진출했다.

따라서 시공 능력을 평가할 때 규모가 큰 종합 건설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전문 건설 업체보다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삼성물산이나 현대건설과 같은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기업의 비율이 90%가 넘는 건설업계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박 의견도 있다.

국토부 또한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경영이 부실한 건설사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도입했다.

자본 잠식으로 실질자본금이 마이너스가 된 건설 업체에는 공사 실적 평가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차감하는 방안을, 법정 관리나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건설업체들에 대해서도 공사 실적 평가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빼는 것이다.

업체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개선책이 적용되며 2016년 시공 능력 평가에서는 일부 업체들의 순위가 대폭 하락하기도 했다.

또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민·관 합동 검증, 심사자 실명제도 도입했다. 당초 시공 능력 평가는 대한건설협회 등 업종별 건설 관련 단체에 위탁해 검증 절차 없이 평가 결과를 7월 말 각 협회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토부는 2016년부터 사전 검증 절차를 추가해 매년 6~7월 1개월 정도 실시하고 있다. 검증단은 민간 전문가를 포함해 국토부 3명, 공인회계사 2명, 한국건설기술인협회 2명, 건설협회 6명 등 13명으로 구성된다.

검증 대상은 평가 주체인 각 협회의 회장 등 주요 간부들이 소속돼 있는 업체를 포함해 무작위로 추출한 일반 건설 업체 등 150여 곳이다.

건설업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실적 처리 방식도 간소화했다. 평가 서류 중 해외 공사 실적 서류는 해외건설협회에서 심사를 마친 후 직접 각 건설협회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돋보기
삼성엔지니어링, ‘27계단’ 상승…신규 수주 확보는 숙제

매년 실시되는 시공 능력 평가 순위 등락을 살펴보면 건설업계의 지각변동을 대략 유추할 수 있다. 올해도 지난해에 비해 순위를 크게 끌어올린 업체들이 눈에 띄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보다 무려 27계단 상승해 토목건축 분야에서 상위 20곳 안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시평가액은 1조8516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 2분기 실적에서도 성과를 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올 2분기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매출액 1조3560억원, 영업이익 124억원, 순이익 31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은 27.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244.4% 증가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에 대해 “선별 수주 전략에 따라 매출은 감소했지만 현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산업 환경 분야에서의 실적 증가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앞에는 하반기 신규 수주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놓여졌다. 박찬주·정다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2017년 1분기 말 기준 삼성엔지니어링의 수주 잔액은 약 7조원”이라며 “지난해 말 매출액이 7조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규 수주 계약 체결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공 능력 평가에서는 중견 건설사들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이 중에서도 반도건설과 아이에스동서는 각각 17계단, 15계단 상승해 나란히 27위와 28위를 차지했다. 반도건설의 시평액은 1조2122억원, 아이에스동서는 1조1946억원이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