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1위 CJ대한통운 ‘규모의 경제’ 달성…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 2위 놓고 격전
택배업, CJ대한통운 '독주'에 치열해지는 2위 쟁탈전
(사진)CJ대한통운의 택배 자동 분류 장치 휠 소터.(/한국경제신문)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며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그 자체로 행복하다. 요새 현대인들은 택배를 통해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택배의 배송 예정 시각을 알려주는 문자만 봐도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1위보다 치열한 2·3위 경쟁

바쁜 일상에서 택배를 기다리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됐기 때문일까. 택배 물량은 매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6년 국내 택배 물량은 총 20억4666만 개로 전년 대비 12.7% 증가했다. 택배 물량은 매년 10% 이상씩 꾸준히 증가해 왔고 올해 역시 이러한 추세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택배업계에서는 상위 5개 회사가 점유율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상위 5개 업체는 CJ대한통운·한진·롯데글로벌로지스·우체국택배·로젠택배다. 이 중에서도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시장점유율은 45%에 육박한다.

최근 CJ대한통운은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성장 중이다. 실적도 탄탄하다. 택배 부문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9462억원, 영업이익은 3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 31% 증가했다.

CJ대한통운 측은 호실적에 대해 “해운·항만 부문 등 일부 실적 차질에도 불구하고 계약물류(CL) 사업부문, 글로벌사업 부문이 성장했고 특히 적극적 신규 영업을 통해 택배 사업 부문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은 향후 1위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점유율을 보면 현대로지스틱스가 롯데에 인수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하지만 수익성 측면에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CJ대한통운이 독보적”이라고 분석했다. 하 애널리스트는 “택배사 간 마진율 차이는 CJ대한통운의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이 완공되면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CJ대한통운은 2018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광주 곤지암에 자동화 터미널을 준공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이 완공되면 인건비와 간선비용이 대폭 감소해 수익률이 증가하고 CJ대한통운의 염원인 유럽 및 미국계 물류 업체 인수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CJ대한통운이 견고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중에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치열한 2·3위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반기 택배 부문 매출액은 각각 2872억원, 2871억원으로 약 1억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장점유율 또한 CJ대한통운의 뒤를 이어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가 각각 12%를 차지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순위가 당분간 고착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량 물량은 1~2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당분간 각 택배사의 처리 물량이 큰 변동 폭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CJ대한통운의 독주를 막을 기업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변수는 있다. 5위 로젠택배의 향방이다. 세계 3위 특송 물류 기업 UPS가 로젠택배를 인수할 것이라는 보도가 5월 나와 택배업계 전체를 긴장시켰다.

만약 로젠택배가 UPS의 품에 안긴다면 국제 특송 서비스를 활용해 CJ대한통운을 위협하는 규모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택배업, CJ대한통운 '독주'에 치열해지는 2위 쟁탈전
◆안으로 밖으로…몸집 키우는 택배사들

지금과 같은 택배업계 순위가 만들어진 데는 인수·합병(M&A)의 영향이 컸다. CJ대한통운은 2012년 CJ GLS와 대한통운을 합병해 국내 시장점유율 1위로 도약했다.

지난해에도 택배업계의 지각변동을 불러 온 M&A가 있었다. 현대로지틱스가 롯데그룹의 품에 안기며 ‘롯데글로벌로지스’로 재탄생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2014년 7월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전량(전체 지분의 88.8%)을 특수목적법인 이지스일호에 매각했다.

이지스일호는 롯데그룹 계열사 여덟 곳과 현대상선,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이다.

롯데그룹은 롯데글로벌로지스를 통해 택배 시장에 진출하며 기존 물류 계열사였던 롯데로지스틱스와 함께 물류 분야 점유율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 방안 중 하나는 ‘몸집 키우기’로, 롯데로지스틱스와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합병설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양 사가 합병하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을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게 된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모기업 계열사 말고도 국내 물류 기업과의 활발한 M&A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다.

M&A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CJ대한통운의 자회사 CJ로킨은 물류회사인 광저우젠중운수유한공사를 인수했다.

또 올해 4월에는 인도의 물류 기업 다슬로지스틱스 지분 50%를 인수해 1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뒤이어 중동·중앙아시아 지역 중량물 물류 1위 업체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브라콤 주식 51%를 773억원에 취득했다. 이를 통해 CJ대한통운은 인도·중동 등 해외 물류 시장의 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박근태 CJ대한통운 사장은 “세계 5대 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M&A와 전략적 제휴를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대형 M&A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업, CJ대한통운 '독주'에 치열해지는 2위 쟁탈전
(사진)택배업계는 대고객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진)

◆자동화부터 비대면까지 ‘진화 중’

외형적 성장만큼이나 내실 강화도 중요하다. 온라인 쇼핑이 성황을 보이면서 택배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성장하는 시장만큼 고객들의 눈높이도 까다로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에 따라 각 택배 회사들은 첨단 시스템을 도입,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분류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택배 운전사와 고객 양쪽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택배 자동화 설비 서비스인 ‘휠 소터’를 도입했는데, 이 시스템은 작은 바퀴를 이용해 택배 상자를 지역별로 자동 분류해 준다. 컨베이어 속도는 1분에 120m 이상으로 시간당 8000상자를 분류할 수 있다.

이전에는 택배 운전사가 오전에 물류센터에서 컨베이어벨트 앞을 지키며 자신의 담당 지역 택배를 직접 수동으로 분류해야만 했다. 휠 소터 도입 후 택배 운전사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출근한 후 기계가 자동 분류해 놓은 택배를 차량에 싣기만 하면 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휠 소터 도입 후 택배 운전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이른 아침에도 배송이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진은 비대면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한진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증가, 부재 시 고객 요청에 따른 위탁 배송 증가로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전달하는 대면 배송률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한진은 7월 비대면 배송을 강화하기 위해 위탁 배송 관련 정보를 고객에게 실시간으로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고객은 택배 배송 출발 메시지를 받은 후 경비실이나 무인 택배함 등 위탁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배송 운전사는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상품을 위탁한 후 상품의 상태나 관련 상황을 사진 촬영해 고객에게 전송한다.

한진 관계자는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배송지 부재 등 직접 택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상품 분실에 대한 불안감 없이 안심하고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택배업계의 속내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해운법 개정안’이 9월 말 국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대기업의 상호출자제한기업에 속하는 회사로 통지된 화물운송사업자(국제물류주선업자 포함)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 외 사업자와 해운법에서 정하는 해운중개업, 물류정책기본법에서 정하는 국제물류주선업 등의 계약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즉 자사 계열사의 물량만 처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6월 정인화 국민의당 의원 또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물류주선자회사의 해운물류주선업무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유섭 의원의 개정안과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

해운법 개정안의 목적은 모기업 물량을 수송하는 2자 대기업 물류 업체로부터 중소 물류사 및 화주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택배업계는 잇따라 입법되고 있는 해운법 개정안에 대해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모른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모기업에 유통과 물류 계열사를 함께 두고 있는 CJ와 롯데가 해운법 개정안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에 해운법 개정안은 불청객이다. 이미 CJ대한통운의 계열사 이외 3자 물류 취급량은 자사 계열사 물류량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특히 CJ대한통운은 이미 해외로 눈을 돌려 국제 네트워크도 150곳 확보해 둔 상태다.

택배업계는 외부 물량을 유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대 물류 기업의 탄생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해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축적해 온 외부 물량을 유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하루아침에 막힐 가능성이 있다. 그 자리를 외국계 물류 기업들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번호판·단가, 택배업계의 두 가지 고민

전에 없던 서비스로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쿠팡의 ‘로켓배송’은 택배업계의 해묵은 갈등이었던 택배 차량 증차 문제를 재점화했다.

국토교통법에 따라 택배 화물을 수송하려면 화물차량용 번호판, 이른바 ‘노란색 번호판’을 달아야만 한다. 하지만 쿠팡은 화물자동차업 종사 자격을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화물차용인 ‘하얀색 번호판’을 달고도 택배차 운영이 가능했다.

기존 업계의 반발이 지속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년 만에 1.5톤 미만 소형 화물차에 대해서는 수급 조절제를 없애고 신규 허가를 일부 허용했다.

낮은 택배 단가 또한 고민거리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택배 단가는 2235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0원 떨어졌다. 택배 공급자가 늘어나 단가는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렴한 단가는 택배사들의 수익 감소는 물론 택배 운전사의 수입 하락으로 서비스의 질적 저하까지 불러온다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