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녹는 7~10월에만 운송 가능…쇄빙선 비용 등 ‘경제성’ 논란

2008년 방송된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은 서서히 녹고 있는 빙하로 삶의 터전을 잃어 가고 있는 원주민과 동물의 모습을 담았다. 인간의 무심함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진행돼 온 지구온난화는 어느덧 인류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환경의 변화로 인류는 새로운 루트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동서항로에서 ‘북극항로’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북극 환경 탐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한국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북극 환경 탐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지구의 바닷길이 재편에 분주하다. 지난해 6월, 파나마운하의 확장 개통이 끝나며 1만4000TEU급(1TEU는 20피트컨테이너 한 대를 실을 수 있는 크기) 초대형 선박도 오갈 수 있게 됐다. 2015년에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제2의 수에즈운하도 문을 열었다.

기존 운하들의 재편 경쟁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날로 녹아내리는 북극의 얼음은 북극해를 항로로 쓸 수 있다는 ‘역발상’을 불러왔다.

동아시아 물류길 개척의 ‘열쇠’

북극항로(Arctic Route)는 네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북서항로와 북동항로의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북동항로의 일부분에는 북극해항로(Northern Sea Route)가 있다. 또 러시아 북극해항로의 위를 지나가는 북극횡단항로도 있다.

현재 북극항로를 통해 이뤄지는 운항은 ‘북극해항로’를 경유하는 운항이 지배적이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북극항로는 바로 이 북극해항로를 말한다. 북극해항로는 러시아 정부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7월에서 10월까지만 운송이 가능하다. 날이 갈수록 그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얼음이 완전히 녹을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께에는 연중 운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새 무역로를 발굴하기에 바쁘다. 대표적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로 불리는 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주도로 이뤄지는 이 정책은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 및 항구를 건설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이러한 중국의 정책으로 한국 또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 정부는 그 해답을 동아시아 물류 시장 개척에서 찾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북극항로 취항이다.

이를 위해선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러 경제협력을 강조해 왔다. 해양수산부 또한 북극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연구 및 세미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비록 일회성에 그쳤지만 국내 해운 물류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북극항로를 통한 화물수송에 참여해 왔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시범 운항을 실시했고 2015년에는 CJ대한통운의 국적 선박이 최초로 북극항로에서 상업 운항했다.

지난해에는 SLK국보와 팬오션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카자흐스탄·러시아로 플랜트 설비를 운송했다.

최근에는 현대상선이 2020년을 목표로 북극항로 취항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국내 원양 컨테이너선사가 북극항로를 정기적으로 취항한다면 국내 기업들의 북극항로 진출이 전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열리게 된다. 이벤트성이 아니라 실용 가능한 항로로 전환되는 것이다.

북극항로를 주목하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특히 북극항로는 아시아~유럽을 더 빠르고 적은 비용에 운항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유럽 노선은 선박이 수에즈운하를 통과해야만 오갈 수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선사들은 수에즈운하 외에 또 하나의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수에즈운하를 운영하고 있는 이집트 당국이 통행세 할인에 나서는 것은 이러한 환경 변화 때문이다. 어쨌든 북극항로의 개막은 바닷길의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만약 북극항로를 통해 부산과 로테르담을 운항한다면 기존 수에즈운하를 통한 운항보다 거리 면에서 32%(2만2000km→1만5000km) 단축할 수 있다. 또 운항 일수 역시 10일(40일→30일)을 줄일 수 있다. 운항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모두를 절감할 수 있고 북극 및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천연 지하자원·광물자원 등의 수송이 원활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아시아와 유럽 잇는 10일 빠른길… 21세기의 실크로드 ‘북극항로’
다양한 성장 기회 안고 있는 북극항로

2011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0년 기준으로 아시아 및 유럽 국가를 오가는 물동량 중 약 46만TEU가 북극항로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예상은 얼추 맞아 들어가고 있다. 북극항로의 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북극항로를 통해 운송된 물동량은 1800만 톤이었고 북동항로에서만 700만 톤으로 집계됐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까지 바렌츠해에서 추코트카·베링해로 이어지는 북극항로를 통해 운송될 물동량은 7500만 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물량이 증가할 것만은 분명하다.

북극항로를 취항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쇄빙선’의 에스코트다. 물량이 증가하면 쇄빙선 이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얼음을 깨뜨리며 항해에 나서는 쇄빙선은 북극항로를 취항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또 얇은 결빙 해역이나 해상의 유빙 저항을 이겨낼 수 있는 내빙선 또한 북극항로 취항에 이용될 수 있다. 원활한 항해를 위해 북극해항로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는 보유하고 있는 쇄빙선들을 타 선박의 항해 시 에스코트하는 역할로 투입하고 있다.

쇄빙선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향후 한국 조선업의 신규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조선업계는 해운 및 물류업계의 물동량 부족으로 신규 선박 발주가 줄면서 이른바 ‘수주 절벽’에 맞닥뜨렸다.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수주 또한 한국 조선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도의 건조 기술이 필요한 쇄빙선 수주를 선점한다면 조선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멀리 내다보지 않더라도 당장 조선사들의 유동성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표적 기업은 대우조선해양이다. 올해 3월 대우조선해양은 러시아 선사에 액화천연가스(LNG) 쇄빙선을 인도하며 약 24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 선박은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LNG 쇄빙선으로, 두께 2.1m의 얼음을 깨며 극지에서 항해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LNG 쇄빙선 15척을 ‘싹쓸이 수주’하며 2020년까지 연이어 인도할 예정이다.

부산항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북극물류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홍성원 영산대 교수는 부산항이 북극항로로 향하는 선박들의 중간 기지 역할을 함으로써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2016년 북극항로를 운항한 선박들 중 다수가 부산항에 기항해 선용품과 유류를 공급받고 선원을 교대시켰다. 이 중 중국의 다롄·상하이에서 출발한 선박들이 주로 부산항을 기항했다.

2016년 기준으로 선용품을 공급받은 선박은 3척, 벙커유를 공급받은 선박은 10척이다. 홍 교수는 “향후 북극항로 운항 본격화에 대비해 선용품 및 벙커링을 중심으로 선박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부산항의 고부가가치를 꾀하는 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와 유럽 잇는 10일 빠른길… 21세기의 실크로드 ‘북극항로’
아직은 ‘물음표’ 붙은 북극항로 취항

하지만 북극항로가 과연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 올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각종 해운 및 물류 전문 기관 연구에 따르면 거리나 운송비용이 단축되더라도 북극항로를 운항할 때 이용되는 쇄빙선 비용까지 감안하면 그다지 비용 절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태도 또한 북극항로 개발에 발목을 잡는다. 홍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첫째 관점은 북극항로가 러시아의 북극해 지역 내부 운송과 러시아 북극 자원의 외부 수송로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러시아 정부가 북극항로를 국제 수송로로 개발하는 것으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측은 북극항로를 러시아 내부 수송에 무게를 두고 있고 외국 선사들은 아시아와 유럽 간 국제 수송로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시각 차이가 있다. 홍 교수는 “북극항로의 물동량이 늘어나는 것은 러시아에만 고무적인 결과이고 한국으로선 북극항로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행료 또한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북극항로를 오가는 러시아의 쇄빙선 이용료와 통행료를 합산하면 기존 수에즈운하의 통행료보다 비싸다. 이 때문에 선사들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 발목을 잡았던 러시아의 쇄빙선 에스코트 비용의 경우 2013년 해양수산부와 러시아 교통부의 협의를 통해 비용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데 합의해 한국 기업들의 부담이 다소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극항로 수송은 벌크화물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향후 컨테이너선이 운항하려면 북극항로의 정비가 필요하다. 컨테이너선 수송의 생명인 ‘정시성’이 확보되기 위해 항만 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안전성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 또 현재 북극항로가 얼음이 녹는 기간만 운항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컨테이너선 취항을 막는 걸림돌 중 하나다.

굳이 외부 요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컨테이너 선사들이 북극항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 취항에 대해 “정기적으로 운항돼야 하는 컨테이너선은 북극항로 취항 시 검증되지 않은 위험 요소를 안고 뛰어들기엔 오히려 리스크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황 침체로 선사 간 인수·합병(M&A) 및 공동 운항이 활발한 상황에서 북극항로 취항이 당장 눈앞에 놓인 선택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돋보기- 북극항로의 딜레마
북극항로는 지구온난화의 선물?


국내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70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9월 28일 귀국했다. 아라온호는 올여름만 두 차례에 걸쳐 북극 탐사를 진행했고 북극해 해빙 감소, 대규모 메탄가스 방출 현상 등을 관측했다.

탐사 활동을 통해 연구팀은 북극해의 해빙 면적이 지난 10년간 약 15% 감소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북극의 얼음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녹고 있다. 러시아 선적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인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가 8월 북극 해상을 지나 충남 보령항에 도착했는데, 쇄빙선의 도움 없이 세계 최초로 아시아와 유럽을 항해해 주목을 받았다.

쇄빙선의 도움 없이 항로를 오간 첫째 사례였지만 그만큼 북극 얼음의 두께가 얇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가 돼 씁쓸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북극항로의 활발한 이용은 곧 지구온난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북극항로는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기간에만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녹는 2030년쯤에는 연중 운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극항로를 온전하게 활용할 때 인류는 또 하나의 재앙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지 한경비즈니스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