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금호타이어 앞날은]
57년 인연은 역사 속으로…12월부터 ‘독자 생존’ 시작
금호家와 ‘이별’하는 금호타이어
(사진)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생산 라인./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금호타이어가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이별을 준비 중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사퇴했고 주주협의회(채권단)가 추천한 김종호 금호타이어 전 대표가 회장으로 선임됐다.

채권단은 현재 진행 중인 법률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 분리를 신청할 계획이다. 계열 분리에 대한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12월 1일 열리는 금호타이어 임시 주주총회가 ‘디데이’로 유력시되고 있다.

일련의 절차가 마무리되면 1960년 창립된 금호타이어는 57년 만에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공식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이후 금호타이어가 ‘새 주인’을 찾을지 아니면 ‘홀로서기’에 나설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한동안은 ‘독자 생존’을 해야 한다.

◆ 매각 결렬…3년 만에 또 구조조정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금호타이어의 독자 생존 시나리오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매각 대금 9550억원을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중국의 타이어 기업 더블스타와 우선매수청구권(매각대금+1주)을 지닌 ‘원래 주인’ 박 회장 중 누군가는 주인이 될 것으로 관련 업계는 내다봤다.

하지만 박 회장이 계획한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를 놓고 박 회장과 채권단의 갈등이 격화되고 더블스타는 상표권 분쟁과 중국 기업 인수에 대한 한국 내 여론 악화 등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금호타이어의 주인 찾기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금호타이어 매각이 미궁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7월부터다. 먼저 더블스타의 태도가 바뀌었다. 더블스타는 당초 제시했던 인수 가격에서 2350억원 낮춘 7200억원으로 재협상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가격을 낮추는 대신 △5년간 구조조정 금지 및 고용 보장 △노조와 협의체 구성 △국내 사업 신규 투자 등의 단서 조항을 내걸었다. 하지만 더블스타는 채권단의 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해 결국 매각 절차는 9월 5일자로 중단됐다.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 인수를 사실상 포기한 배경엔 가격 외에도 노조와 정부의 반대 등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과 채권단의 협상이 무산된 것은 9월이다. 채권단은 더블스타와의 매각 결렬에 앞서 금호타이어에 9월까지 자구 계획을 내라고 요구했다. 만약 채권단이 수용할 수 없는 안이 나오면 박 회장 등 경영진 해임을 추진한다는 강수까지 내걸었다.

금호타이어는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에 중국 공장 매각과 유상증자, 대우건설 지분 매각 등으로 63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 계획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박 회장은 자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하지만 채권단은 “금호타이어가 제시한 자구 계획이 당면한 경영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주주협의회의 최종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금호타이어 경영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경영에서 사퇴함과 동시에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공식적으로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포기했다.

매각이 유력시됐던 후보군들이 모두 사라지자 채권단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당장 올해 말까지 금호타이어에 돌아오는 여신 만기가 1조8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인수 희망자를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채권단은 자율협약(채권단 공동 관리)을 통해 정상화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초 금호타이어의 법정 관리나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 등도 거론됐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 부담이 만만치 않아 자율 협약 카드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3년 만에 다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됐다.
금호家와 ‘이별’하는 금호타이어
◆ 박삼구 회장과 선 긋기 나선 채권단

현재 채권단은 박 회장과 금호타이어의 완전한 결별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더블스타와의 매각 과정에서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과 상표권으로 압박을 가해 온 만큼 추후 이뤄질 매각에서 다시금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일련의 작업을 해결하기 위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이 회장은 9월 11일 취임 직후 금호타이어 관련 사안을 챙기는 데 업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며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우선 10월 11일에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만나 ‘금호’ 상표권 사용 협조를 독려했다. 금호 상표권은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 측은 이날 이 회장과 면담에서 상표권 영구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박 회장도 경영 부실 책임을 지고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상표권 영구 사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10월 12일에는 김종호 신임 회장과 한용성 대한전선 전 부사장을 구조조정 담당 최고책임자(CRO·사장)로 정했고 10월 13일에는 금호타이어 공장이 있는 광주를 방문해 윤장현 광주시장과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집행부 관계자를 만났다.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 노조에 “금호타이어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인들의 고통 분담과 협조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밖에 이 회장과 채권단은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10월 16일부터 금호타이어 실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말까지 생산원가 구조와 미래 손익 전망 등 경영 전반을 살필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실적 악화 원인과 독자 생존 가능성 등을 분석해 연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이 회장은 언젠가는 진행될 금호타이어 재입찰에서 박 회장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과거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던 박삼구 회장 부자를 포함해 관계자들이 금호타이어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공식화하기로 했다. 10월 중 채권단 결의를 거쳐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금호家와 ‘이별’하는 금호타이어
◆ 재입찰 시 박삼구 회장 참여 가능할까

KDB산업은행이 박 회장의 입찰 참여에 대해 ‘금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재매각에 돌입하기 전 시장의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면 설사 금호타이어 입찰을 다시 추진하더라도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거 금호산업 매각과 최근 결렬된 금호타이어 입찰 사례를 보면 우선매수권을 보유한 박 회장을 의식한 국내 기업과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금호타이어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우선매수권을 포기한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호타이어가 중국 시장 문제로 급격히 어려워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하면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박 회장이 한 발 물러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이라는 급한 불은 끈 만큼 자율협약으로 정상화되면 다시 한 번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를 그러모을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도 박 회장의 결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금호타이어 인수는 박 회장의 목표인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이다. 금호타이어는 세계 최대 타이어 시장인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조지아 공장을 완공하는 등 성장 가능성이 크며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정상화가 언제 종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수전 참여 여부 등을 거론할 상황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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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아시아나 재계 서열 30위권 밀릴 듯

한편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금호타이어가 분리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은 10조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대기업집단 기준에 턱걸이를 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금호타이어의 최대 주주는 우리은행(14.15%), KDB산업은행(13.51%), KB국민은행(4.16%), 한국수출입은행(3.13%) 등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다. 국민연금(10.79%)과 소액주주(47.20%)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지분이 없다. 박 회장은 2010년 금호타이어를 살리기 위해 1100억원의 사재를 내놓으면서 우선매수청구권과 경영권을 받았지만 9월 말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우선매수권도 포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28개 계열사의 자산 총액은 5월 기준 15조6000억원 규모로, 5조원 규모인 금호타이어가 떨어져 나가면 대기업 기준인 10조원을 가까스로 넘기게 된다. 이러면 재계 순위가 현 19위에서 30위권까지 밀려날 수 있다. 5월 기준 재계 서열 29위는 10조7000억원 규모의 대우건설, 30위는 10조5000억원 규모의 하림이다.

금호타이어는 1960년 9월 박 회장의 부친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자가 설립한 회사다. 박 회장 역시 1967년 금호타이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올해 계열 분리가 이뤄지면 57년 만에 그룹과 결별하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이미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과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한 상태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우선 아시아나항공 등 다른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그룹 경영의 내실을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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