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

통상 전문가 듀안 레이턴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세미나에서 FTA 대응 강조
“나프타보다 한·미 FTA 폐기 가능성 높아”
(사진) 듀안 레이턴 메이어 브라운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정책의 핵심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말 그대로 통상에서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을 중시하겠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며 강력한 무역 보호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무역업계의 우려가 점차 높아지는 모습이다.

법무법인 세종은 이런 변화에 적극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11월 13일 미국계 글로벌 로펌 메이어 브라운(Mayer Brown)과 공동으로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메이어 브라운에서 국제통상그룹을 이끌고 있는 듀안 레이턴 파트너 변호사가 강연을 맡았다. 이날 세미나에서 레이턴 변호사는 미국의 무역정책이 한국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그는 최근 이슈가 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양국이 하루빨리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인사 특성부터 파악해야”

레이턴 변호사는 한·미 양국이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을 담당하는 주요 인사들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야만 협상 등에서 제대로 된 접근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통상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곳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무역대표부(USTR)다. 현재 무역대표부를 이끄는 인물은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자로 알려진 로버트 라이시저 대표다.

라이시저 대표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USTR 부대표를 담당하며 20여 개의 양자무역협정에 참여한 협상 전문가다. 이후 1980년대 말 민간 부문으로 옮겨 통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미 최대 로펌 중 하나인 스캐든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특히 수입 제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와 고율 관세 부과 업무를 집중적으로 다뤄 왔다.

레이턴 변호사는 “라이시저 대표는 주로 미국 내에서만 활동하는 기업을 대변한 통상 부문 최고 전문가”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초강경 보호무역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그를 선임했다”고 분석했다.

무역대표부 외에 미국 무역정책의 이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상무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 장관에도 강경파 보호무역론자인 윌버 로스를 임명했다.

레이턴 변호사는 로스 장관을 ‘부실기업을 인수해 큰 수익을 낸 금융가’라고 평가했다.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는 반중 인사로 잘 알려진 피터 나바로 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중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의 책을 쓰고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등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물론 통상과 관련된 모든 주요 인사들이 다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정책을 총괄 지휘하는 국가경제위원회(NEC)는 게리 콘이 현재 위원장이다. 골드만삭스 사장 출신으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트럼프 행정부 내 합리적 성향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레이턴 변호사는 “주요 요직에 온건파들도 존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윗선들은 부유하면서도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이들”이라고 진단했다.


◆“완벽한 협정이란 없어”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후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며 자국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여겨지는 수입품들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이는 한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레이턴 변호사는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미국이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인 미 통상법 201조와 232조를 들었다.

통상법 201조는 수입품 중에서 미국 내 업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관세 인상이나 수입량 제한 등을 규제하도록 한 제도다.

레이턴 변호사는 “미국 세탁기 업체들이 삼성과 LG가 생산하는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규제를 도입할 것을 청원했다”며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한국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상법 232조는 한국 철강 업체들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통상법 232조는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수입 활동에 대해 수입량 제한 등 무역 조정 조치를 내린다는 내용의 규제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이를 근거로 수입산 철강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지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을 상무부에 전달한 바 있다. 레이턴 변호사는 “해당 조사 결과에 한국산 철강재가 지목되면 추가적인 수입제한 조치 등이 시행될 것”이라며 “유정용 강관 등 미국의 반덤핑 무역 조치 대상이 되는 물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은 국제 무역협정 등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손보기에 나선 상태다. 이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빠지겠다고 결정한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도 재협상 중이다. 특히 레이턴 변호사는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미국은 NAFTA 탈퇴보다 한·미 FTA를 폐기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내다봤다.

NAFTA 조약은 미국·캐나다 및 멕시코 3국이 1994년 결성한 무역 협약이다. 관세 없이 각국의 생산품을 상대 국가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NAFTA가 미국에 불공평하고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며 철회를 주장해 왔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관세를 없애는 조건으로 미국산 부품을 50% 이상 사용하도록 하자는 압박을 멕시코와 캐나다에게 넣고 있다.

레이턴 변호사는 “미국이 NAFTA에서 탈퇴할 수 있지만 미국의 농업·자동차 등 산업 및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NAFTA 탈퇴 시 자동차 생산량과 일자리가 감소하며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는 NAFTA보다 역사가 짧고 상대적으로 산업 간의 이해관계도 크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11월 초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FTA 재협상을 가속화하겠다고 발표한 배경에 대해 “재협상 과정이 기밀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이 아마도 한·미 FTA 폐기를 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은 미국의 6대 교역국인 반면 미국은 한국의 2대 교역국이다. 한국으로선 FTA를 완전 폐기하기보다 재협상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재협상까지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한국 정부 역시 내부에서 미국과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협상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저다. 정치적인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인 만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방침을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enyou@hankyung.com


◆듀안 레이턴 변호사는?

듀안 레이턴 메이어 브라운 변호사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오랜 기간 통상 분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다수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및 무역구제 절차에 참여한 바 있다. 통상 분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미국 상무부의 선임 변호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레이턴 변호사는 그간 여러 법률 평가 기관들로부터 국제통상법 권위자로 선정됐다. 그뿐만 아니라 레이턴 변호사가 미국 정부를 대리한 WTO 분쟁 사건은 2013년 ‘아메리칸 로이어 글로벌 어워드에서 ‘올해의 국제분쟁 사건’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터뷰 김두식 세종 대표변호사
“한국 정부, 미국과 타협점 찾는데 주력해야”
“나프타보다 한·미 FTA 폐기 가능성 높아”
법무법인 세종을 이끄는 김두식 대표변호사는 국제통상 부문에서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김 변호사를 만나 이번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계기와 한국이 직면한 미국발 통상 이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Q. 미국 로펌과 통상정책 세미나를 열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미국발 통상 이슈가 전면에 떠오른 가운데 마침 메이어 브라운 측으로부터 공동 세미나를 함께 열자는 제안이 들어와 받아들였어요. 트럼프 체제가 출범한 이후 새로운 통상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 통상정책의 배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먼저 제안이 온 것이죠. 세미나 내용은 한국에서 관심 있을 법한 내용들이 무엇인지 법무법인 세종에서 직접 제안했습니다.”


Q. 한·미 FTA 재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모습입니다.

“아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협상이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갔습니다. 만약 한국이 성실히 협상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FTA에서 탈퇴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 산업계도 악영향을 받겠죠. NAFTA보다 쉽게 탈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성실하게 한다고 해서 국익에 반하는 이슈를 전부 다 양보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최대한 지킬 것은 지키면서 빠르고 신속하게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진지하게 미국 측의 얘기를 들어보고 어려움도 얘기하고 결과를 떠나 타협점을 찾아 가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Q. 국내에서도 한·미 FTA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실리적으로 냉철하게 봤을 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위협하기 전에 성실하게 협상에 임함으로써 그런 사태를 막아야 해요. 협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측은 협의 자체를 피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사실 농산물을 빼놓은 나머지는 ‘사활적 이슈’가 걸려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농산물은 농업계의 실익을 떠나 국민감정까지 건드릴 수 있는 이슈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미국 내에서 통상정책을 펼치는 이들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입니다. 끊임없이 우리 생각을 얘기해 미국 측의 방침을 톤 다운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아요.”


Q.한·미 FTA뿐만 아니라 NAFTA 역시 재협상하는 등 미국의 통상정책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 또한 큰 상황입니다.


예컨대 NAFTA가 재협상돼 자동차 부품의 미국산 비율이 높아지면 기아차 멕시코 공장은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추이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미국에 맞는 식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부분 등을 논의해야 해요. 그럴 수 없는 업종도 많습니다. 섬유나 세탁기는 동남아에서 생산하는데, 덤핑이나 반덤핑에 걸리지 않도록 가격도 잘 조절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