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실수요자→대기 수요로 전환도…저가 주택 시장 침체 가능성 높아
주거복지 로드맵, ‘주거 양극화’ 만들 수도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정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요 억제책인 8·2 부동산 대책 발표에 이어 이번엔 공급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선보였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향후 5년에 걸쳐 공적 주택 100만 호를 공급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공공임대 65만 가구, 공공 지원 20만 가구, 공공 분양 1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공적 임대주택이 85만 호, 공공 분양이 15만 호다. 그런데 이번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밝힌 내용은 처음 발표된 것이 아니고 지난 대선 때 공약에 포함된 내용이다. 그 내용과 달라진 바 없다.

공공 임대주택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기업에서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공공 지원 주택은 기존의 뉴스테이나 준공공 임대주택과 같이 민간 임대주택을 말한다. 다만 공적 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공 지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시장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공공 분양 15만 가구인데, 신혼희망타운 7만 호를 포함해 15만 호를 공급한다.

그중 3만 호는 서울 수서역세권, 과천 지식정보타운, 과천주암, 위례신도시, 의왕 고천, 하남 감일, 화성 동탄2, 남양주 진건, 김포 고촌 등 기존 공공주택지구를 활용하고 모자라는 4만 호는 그린벨트를 해제해 공공주택지구로 신규 지정하는 방식으로 부지를 조달할 방침이다.

면적 순으로는 수도권에서 남양주 진접2(129만2000㎡) 지구를 비롯해 구리 갈매역세권(79만9000㎡), 군포 대야미(67만8000㎡), 성남 복정(64만6000㎡), 성남 금토(58만3000㎡), 의왕 월암(52만4000㎡), 부천 괴안(13만8000㎡), 부천 원종(14만4000㎡)이 거론되고 있고 지방에서 경산 대임(163만㎡) 등 9개 지구가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다.

◆ 부지·재원 확보가 관건

문제는 이미 공급이 많은 일부 지역에도 공급을 추가하는 데 있다. 남양주는 지금도 미분양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이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중구, 안성, 용인, 화성에 이어 미분양 재고가 많은 지역이다. 구리도 남양주 정도는 아니지만 미분양을 포함한 공급과잉 논란에서 자유로운 지역은 아니다.

경북 경산도 경상북도에서 여섯째로 미분양이 많은 지역이다. 기존 공공주택지구에서도 화성이나 김포도 미분양이 많은 지역이다. 입지가 좋아 경쟁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수서·과천·위례신도시와 성남 복정, 성남 금토 지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존의 공공 임대주택 공급과 MB 정부 때의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섞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돈’과 ‘땅’이다.

이번에 발표된 주거복지 로드맵을 실현하려면 119조4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또한 그린벨트라는 것이 샘물 솟듯이 계속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뜻이다.

예산 확보나 택지의 확보가 원활이 진행된다면 일부 실수요자들이 임대 시장에 머무르면서 매매 수요의 감소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정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실제 공급까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므로 그전에라도 실수요자들이 기존 매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은 첫해인 2018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지가 성패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이 목표대로 공급되기 시작하면 조급해 하던 실수요자들이 대기 수요로 바뀌게 되고 일부 지역의 공급과잉과 함께 저가 주택 시장을 침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침체가 예상되는 시장이 저가 주택 시장이라고 못 박은 이유는 청년·신혼부부·저소득자 등 이번 주거복지 로드맵의 수혜자가 저가 주택의 수요층이기 때문이다.

반면, 입지가 좋은 지역은 재건축 사업이나 리모델링 사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급이 어렵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고가 지역과 저가 지역의 양극화를 가속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전인 노무현 정부 때도 주택 시장을 잡으려고 여러 방법이 동원됐다. 특히 강남 집값이 급등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강남에 몰리는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용산과 판교 두 군데를 집중적으로 띄웠다.

‘판교 청약은 로또’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이에 따라 청약 경쟁률이 몇 백 대 1에 이르는 등 과열 현상을 보였다.

◆ 정책의 포인트는 ‘약자 보호’

문제는 그다음이다. 판교에 집을 무한대로 지을 수 있다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청약 신청자를 차례로 입주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판교에 지을 수 있는 주택 수는 불과 2만~3만 가구에 불과했기 때문에 청약이 끝나자 청약에 실패한 실수요자들이 뒤늦게 기존 매수 시장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2006년 수도권 가을 폭등장의 주요 원인이었다.

2006년 봄에는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이었지만 2006년 가을에는 판교 청약에서 탈락한 실수요자들이 대거 기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이미 (2005년과 2006년 봄까지) 올려 놓은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실수요자들이 뒤늦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으려고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산 실수요자들이 2008년 금융 위기 후 대거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 당시 노무현 정부가 일부러 무주택 서민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때 그 피해는 순진한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는 것이다.

한국은 공공 임대주택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 어느 사회이건 보호해 줘야 할 경제적 약자는 있는 법이고 이들을 보호해 줘야 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거복지 로드맵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하지만 그것이 집값 하락으로 오인해 내 집 마련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까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에서 말하는 주거 사다리라는 것은 주거비를 낮춰 줌으로써 자산 형성을 하는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의미이지 본인을 대신해 자산을 늘려주겠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