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아모레퍼시픽·하나은행, 정체성·소통 ‘키워드’…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사옥은 기업의 개성과 기업 문화를 사회에 전파하는 직접적인 매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견고함에 중점을 뒀던 과거와 달리 요즘 건축되는 사옥들은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 완성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김종성 건축가에게 최근 지어진 사옥들의 특징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수많은 국내 대기업 사옥이 국내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손을 거쳤다. 기업 환경에 맞춰 사옥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 완공된 기업들의 사옥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외관은 김 건축가의 말처럼 각 기업의 정체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추세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외부 손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던 사옥 로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됐고 딱딱했던 사무 공간은 각종 편의 시설을 구비해 직원들이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변신했다. 최근 새롭게 지어진 기업들의 사옥을 찾아 진화의 흔적들을 들여다봤다.

◆‘용산 랜드마크’ 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신사옥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단연 아모레퍼시픽이다. 2017년 11월 서울 용산에 완공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단숨에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지하 7층, 지상 22층으로 총면적 18만8902㎡(5만7150평) 규모로 지어졌다.

현대건설이 2014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약 3년 만에 완공했다. 신사옥 건설에 대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관심도 각별했다. 서 회장은 신사옥이 서울을 대표하면서도 시민들과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사옥 내·외관 구성에 이런 철학이 반영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외관부터 단아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전체적인 설계는 영국 출신의 유명 건축가인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맡았다. 그는 화려한 기교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100건이 넘는 건축상을 수상했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에 속한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치퍼필드 건축가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신사옥의 외관을 완성했다. 하얀색 창살을 건물 전체에 둘러 순백의 느낌이 나도록 했다.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건물 속 정원 등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소들을 곳곳에 반영한 것도 특징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을 완성해 세계적인 뷰티 기업으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다.

내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웅장한 로비를 마주하게 된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층고 15.9m의 대형 공간인 ‘아트리움’이 아모레퍼시픽 로비의 이름이다.

최근 일반적으로 지어지는 사옥이나 오피스 빌딩은 대부분 수익성을 고려해 사옥 저층부를 상업 시설로 채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과 같이 저층부의 공간을 넓게 비운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 회장의 고집이 반영된 부분이다. 그는 설계 단계에서 신사옥 저층부를 최대한 공익적인 성격을 띠는 공간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상업 시설을 최소화하고 문화로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개방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아직 내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아트리움은 직원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이 접근 가능한 공간들로 채워지게 된다.

우선 1층을 살펴보면 국산 차 판매점인 ‘오설록’이 유일한 상업 시설로 현재 영업 중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지하 1층~지상 1층)’, ‘전시도록 라이브러리’ 등이 조만간 1층에 들어선다.

2층에는 현재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자리하고 있다. 향후 고객 연구 공간, 대강당(2~3층), 이니스프리 카페 등이 조성된다.

3층은 6~10인 규모가 사용할 수 있는 소형 회의실과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 등 고객·방문객과의 접견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전에는 아트리움 내 모든 시설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 공간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자랑거리다. 사무실 내부는 최적의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설계됐다.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칸막이가 없는 개방형 오피스로 만들었다.

오픈형 벤치 타입의 책상을 배치해 책상당 6명이 앉아 함께 일하고 있다. 또한 층마다 내부 계단을 마련해 다른 부서와의 소통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실내 조명은 외부 조도에 따라 자동 센서로 조절된다. 개인 데스크 조명도 별도로 설치해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은행 신사옥, 과감한 공간 배치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2017년 9월 완공된 KEB하나은행(이하 하나은행) 을지로 신사옥도 ‘잘 지어진 사옥’으로 주목받는다. 정문이 있는 부분을 가로로 들여다보면 마치 하나은행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듯 한 느낌을 준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맡아 완성했고 ‘2017 굿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하나은행 신사옥은 지하 6층, 지상 26층 규모로, 기존 하나은행 사옥과 비교하면 사용 면적이 60% 이상 늘어났다. 그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은행과 지주사를 한데 모은 통합 사옥 역할을 하고 있다.

내부를 보면 특히 직원들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각층마다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집중실’과 자유로운 휴식과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 ‘하나라운지’를 조성했다.

특히 눈에 띄는 곳은 7층과 8층이다. 7층에는 ‘스마트워크센터’가 들어섰다. 스마트워크센터에는 곳곳에 노트북을 배치해 자유롭게 앉아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임직원들을 위한 도서도 구비해 놓아 책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8층은 업무에 지친 직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캡슐룸’을 만들어 직원들이 눈을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모두 이전 사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공간들이다.

아모레퍼시픽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익적인 공간도 신사옥에 자리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사옥은 로비가 있는 1층에 흔히 해당 은행의 지점이 자리하기 마련이다. 하나은행은 과감하게 신사옥 지점을 1층이 아닌 지하 1층으로 배치했다.

그 대신 1층에는 예술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현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는 ‘2018 평창 올림픽 & 패럴림픽 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기와 함께, 선수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꾸며져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향후에도 1층 로비를 이용해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전시나 공연을 준비할 계획이다.

지하 1층에도 은행 지점과 함께 별도의 문화 복합 공간을 만들었다. 또 지상 2층에는 일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겸 카페를 운영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을지로 신사옥은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증대는 물론 고객과 일반 시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이나 하나은행처럼 신사옥을 마련한 기업은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 증대는 물론 신사옥이 화제가 되면서 기업 홍보 효과까지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옥을 새로 짓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신사옥을 건설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옥 공사비는 약 6000억원에 달하며 하나은행도 1400억원 정도를 투입했다. 천문학적인 액수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리모델링을 활용하는 것도 사옥을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로 라이나생명보험을 들 수 있다.

◆라이나생명, 리모델링으로 사옥 개선

라이나생명은 사옥 리모델링을 통해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공간의 변화를 추진했다. 스마트 오피스, 옥상 정원, 다목적 홀 등을 새로 조성해 2017년 11월 새 단장을 마쳤다.

라이나생명은 사옥을 리모델링하면서 최적의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일반 사무 공간과 집중 업무 공간, 협업 공간 등으로 사무실을 구성했다. 따로 좌석을 지정하지 않아 누구나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타 부서와의 협업도 용이해졌다는 설명이다.

직원들의 편의 시설도 대폭 개선했다. 휴게 공간에는 다트·보드게임이 설치된 오락 공간과 북 카페를 만들었다. 직원들이 충분한 휴식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존에 방치됐던 옥상 공간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옥상을 정원으로 조성해 산책로와 그늘벤치 등 휴식 공간을 꾸민 것이다.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기업 개성·문화 뽐내는 '사옥의 진화'
지하에는 계단식 다목적 홀을 만들어 직원들을 위한 강연·교육·소극장 등으로 활용 중이다. 최대 75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직원들의 문화·여가 생활을 위해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기도 하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