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 해운업]
현대상선·SM상선, ‘규모 경쟁’서 밀리고 협력도 엇박자…업계 “해양진흥공사 출범 너무 늦다”
한국 해운업의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사진)수출입 컨테이너로 가득 찬 부산 신항의 전경.(/한국경제신문)

(편집자 주/)한국은 수출 물량의 80%가 바닷길을 통해 오간다. 하지만 한국은 한진해운 도산 후 원양 해운에서만 1년 사이 무려 65만5978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의 선복을 잃었다. 만약 남아 있는 현대상선과 SM상선의 경쟁력이 약해진다면 해운업, 더 나아가 수출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해운업 부활을 위한 제대로 된 조치가 시급한 시기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지난해 한국 해운업은 ‘심폐소생술’을 통해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가까스로 마련했다. 하지만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서둘러 대비책이 마련된 터라 업계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지원책이 발효됐다면’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응급조치로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해운업의 골든타임은 ‘현재 진행형’일지 모른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SM상선은 끊임없이 현대상선 측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러브콜’의 내용은 아시아~미주 노선에서의 공동 운항 제안이다.

◆공동 운항 제안 뿌리친 현대상선

SM상선은 1월 초 현대상선과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에 미주 노선에서의 공동 운항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2월 파산한 한진해운의 미주·아시아 노선과 일부 자산을 인수한 SM상선은 지난해 4월 미주 서안 노선의 영업을 시작하며 향후 한국을 대표하는 원양 선사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SM상선의 현대상선을 향한 ‘구애’는 결국 원양 해운 시장 진출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반적인 해운 시황이 악화된 데다 신규 선사가 기존 대형 선사들과 경쟁을 펼치기에 힘이 부쳤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상하이항운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상하이(아시아)~미 서안 항로의 평균 운임은 FEU당(1FEU는 40피트 컨테이너 1개) 1513달러다. 해운 시황이 그나마 좋은 것으로 평가받았던 2013년 아시아~미 서안의 평균 운임은 FEU당 2028달러였다. 무려 500여 달러가 차이 난다.

해운 운임은 수요 악화로 2013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탔다. 운임이 선사의 주요 수입원인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선사들은 지금도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신규 선사인 SM상선이 기존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운영 선박의 규모부터 차이가 난다. SM상선은 캐나다 밴쿠버, 미국 시애틀·타코마 등 북미 서안 노선에서 6500TEU급 선박을 투입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선사들은 유럽·미주 노선에 2만TEU급에 육박하는 ‘초대형 선박’을 투입해 운항 중이다. 이는 대형 선박을 통해 운항 비용과 연료를 절감하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초 1만TEU급 이상의 대형 선박들은 유럽 항로를 주로 오갔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주 항만들 또한 대형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미주에서도 선박이 대형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현재 글로벌 선사들은 원양항로에서 ‘얼라이언스’를 이루고 공동 운항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선사들은 세 곳의 얼라이언스(2M·디얼라이언스·오션얼라이언스)로 각각 뭉쳐 있다.
선박의 규모는 커졌는데 물량이 늘어나지 않아 배를 채우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선사들이 같
은 얼라이언스 내 선사들과 공동 운항, 선복을 공유함으로써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 적재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신규 선사인 SM상선은 현재 어느 얼라이언스에도 속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글로벌 선사들에 비해 낮은 인지도, 신생 선사에 대한 화주들의 불안감도 SM상선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SM상선의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여기에는 SM상선이 운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전성을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공동 운항을 거절당한 SM상선이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접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국 해운업의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SM상선, “원양항로 철수는 없다”

하지만 SM상선 측은 이에 대해 적극 부인했다. SM상선 관계자는 “우방건설산업과의 합병을 1월 8일 완료해 SM상선의 자산 규모를 6000억원 수준으로 늘리고 부채비율도 140% 이하로 낮췄다”며 “SM상선을 SM그룹 내 계열사와 합병하는 것은 원양항로 시장에 SM상선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으로부터 공동 운항 제안을 거절당한 이튿날, SM상선은 북미 서안 노선에서의 신규 독자 운항 계획을 알림으로써 ‘원양항로 철수는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1월 17일 한 언론사와 만나 “올해 북미 신규 노선에 진출하는 등 차질 없이 독자적으로 원양 사업을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규 노선은 ‘PNS’로 명명됐고 4000TEU급 선박 6척이 투입된다.

SM상선은 이와 함께 현대상선과의 협력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았다. 공동 운항을 통한 원가절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SM상선 관계자는 “공동 운항과 관련해 SM상선의 사업 경쟁력에 의문을 품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SM그룹 내에서도 탄탄하기로 손꼽히는 우방건설산업과 합병을 완료해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또한 올 한 해 각오가 남다르다. 우선 올 상반기 내 신규 선박 발주를 통해 2020년까지 대형 선박을 확보할 계획이다. 일부에선 2만TEU급 선박 발주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현대상선 측은 아직까지 정확한 규모가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현대상선과 SM상선은 이스라엘 선사 ‘짐 라인(Zim-line)’과의 협력을 각각 논의 중이다. 짐라인은 세계 12위로, 아직까지 특정 얼라이언스에 속해 있지 않다. 현대상선은 미주 동안에서 짐 라인과의 협력을 논의 중이고 SM상선 또한 짐 라인에 공동 운항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양항로 시장에서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양 선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어떤 전략으로 해운업 부활의 신호탄을 제대로 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급한 것은 양 선사가 하루빨리 실적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2015년 2분기부터 2017년 3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M상선 또한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된 영업 손실만 약 250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실적 회복을 위해 컨테이너 사업 부문의 영역을 축소하고 시황이 좋은 벌크 부문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벌크 부문의 시황을 알 수 있는 발틱운임지수(BDI)의 올해 3분기까지 평균치는 1029.8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0.1%나 올랐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해양법연구센터 교수는 “실적 개선을 위해 컨테이너 부문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30%만 차지하는 일본 선사 NYK를 참고해 벌크나 육상 운송 부문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부문에서만 힘을 합치는 방안도 있다. 일본의 3대 선사인 NYK·MOL·K-라인은 각 선사의 컨테이너 부문을 통합한 법인 ‘원(ONE)’을 출범시켰다. 이들의 선복량은 140만TEU로 통합 법인을 통해 전 세계 6위권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한국 해운업의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사진)지난해 4월 첫 선적 중인 SM상선의 컨테이너.(/SM상선)

◆7월 돼서야 모습 보일 해양진흥공사

현대상선과 SM상선은 모두 현재 미주 서안에만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상선은 유럽에서는 머스크와 MSC의 선박을 활용하고 있고 SM상선은 유럽 노선이 전무하다. 양 사가 미주 서안 영업만 지속한다면 기업 경쟁력이 차차 약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양 사의 합병이 어렵기 때문에 미주와 유럽으로 나눠 운항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라며 “지금은 국적 선사가 모두 미주 서안에만 몰려 있어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해운 시장은 소수의 선사가 전체 시장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재편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세계 5대 선사의 시장점유율은 2012년 45.4%에서 2017년 63.9%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일본의 3대 컨테이너 선사의 통합 법인 ONE과 대만 선사 에버그린을 합친 상위 7대 선사의 보유 선복량은 무려 1억6150만TEU로 점유율은 75.7%까지 상승한다. 전형진 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거대 선사가 과점하고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이들의 운임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덩치 큰 고래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중견 선사’로 추락한 현대상선과 신규 선사 SM상선이 운임 협상에 제 목소리를 내려면 어떻게든 점유율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계는 해운업을 살릴 수 있는 정부의 ‘신의 한 수’를 기다리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올 한 해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해 무너졌던 해운업 재건에 힘쓸 계획이다. 7월 1일 설립될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 산업 재건을 위한 전담 지원 기관이다.

공사는 선사들의 선박·터미널 확보를 위해 선박 매입 후 재용선(S&LB), 채권 매입 등 금융 지원과 함께 해운 거래, 선사 경영 안정과 구조 개선 지원, 비상시 화물 운송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법정 자본금 5조원 중 초기 납입자본금 3조1000억원은 공사로 통합될 한국선박해양·한국해양보증보험의 자본금, 정부 항만공사 지분, 해양수산부 예산(2018년도 1300억원)으로 마련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에 일각에서는 쓴소리가 나온다. 먼저 7월 1일로 예정된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출범 시기가 너무 늦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의 연료유에서 황 함유량을 0.5% 이하로 규제한다.

여기에 선박에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 법안도 2019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이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친환경 설비를 갖춘 선박들로 교체된다. 보통 선박 준공에는 1~2년이 소요된다.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2020년부터 신조선을 투입하려면 2018년 상반기 내에는 신조선을 발주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미 해운·조선업에 대한 지원 기구가 출범을 끝마치고 활발한 지원을 벌이고 있어야만 했다는 비판이다.

세부 정책에 따른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선사들과 한국 선사들이 보유한 선박의 규모 격차는 크게 벌어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한국 선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워 운항 비용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김인현 교수는 “한국 선사들은 신규 선박 확보보다 현재 갖고 있는 선박도 운영할 비용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원책에는 운영 적자 비용을 보전해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