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주민 ‘가구 교체’ vs 건설사‘일단 방역’- 집값 떨어질까 입주민 간 갈등도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주부 장미경(가명) 씨의 하루 일과는 죽어 있는 벌레를 치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침·점심·저녁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치우고 있지만 끝이 없다. 벌써 5개월째다. 처음엔 천장과 옷장에서 발견됐던 벌레는 이제 부엌과 식탁 위에도 떨어져 있다. 계속해서 나오는 벌레 때문에 신경증에 걸릴 지경이다. 고등학생인 딸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예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집을 비워 가며 몇 차례 방역했지만 소용없다. 장 씨는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에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효과도 없는 방역만 하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화성시 덮친 ‘혹파리떼’, 단지 곳곳에서 ‘분쟁’
(사진)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일대 전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경제신문

2008년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처음 발견된 후 파주·남양주·울산·광주광역시 등 전국에서 잇따라 출몰한 날벌레(2mm 정도 크기) 혹파리 떼가 경기 남부 지역 화성시 일대 아파트를 습격했다.

혹파리는 파리목 혹파리과에 속하는 해충으로 작고 검은색을 띤다. 유충은 노란색이다. 번식력이 워낙 강해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하면 박멸하기가 어렵다.

혹파리 떼 출몰이 알려진 아파트 단지는 현재 화성시에만 5~6곳이다. 집값이 하락할 것을 우려해 쉬쉬하거나 아직 혹파리가 적게 나타나 자체 방역을 실시 중인 단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이점은 모두 지은 지 채 1년이 안 된 새 아파트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이제 막 택지지구로 개발돼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개발 이전에는 대부분 토지가 농지와 산지로 이뤄져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존 택지에 서식하던 혹파리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목재에 알을 까면서 아파트에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 금강·시티·송산 등 혹파리떼 습격
새 아파트에 혹파리 떼 출몰이 처음 알려진 것은 3월이다. 1월 입주를 시작한 화성 동탄2신도시 금강펜테리움 아파트에서 3월께 1~2마리씩 발견되던 ‘하루살이’와 비슷한 모습의 날벌레(2mm 정도 크기) 혹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서 입주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현재 전체 1000여 가구 중 250여 가구가 혹파리 떼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자들에 따르면 벌레들이 모습을 보인 것은 1월 아파트 단지 입주가 시작되고 보름 뒤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일부 가구에서 방역을 실시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주자들은 방역 당시에만 잠깐 줄어들었다가 다시 출몰하고 있고 오히려 출몰 범위와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입주민은 “거실 바닥에 떨어진 수백~수천 마리의 벌레를 치우는 게 하루 일과”라고 토로했다.

이런 현상은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시티프라디움 1차 아파트(1월 입주, 813가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입주민들이 집 안 곳곳에 출몰하는 수백~수천 마리의 혹파리 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방역을 신청한 가구 수가 200곳을 넘었고 추후 신청 가구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성시 송산그린시티에서도 혹파리 떼가 극성이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동양건설산업이 시공해 올 초 입주를 시작한 시범 단지에서 혹파리 떼가 발견됐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수백~수천 마리의 혹파리 떼가 단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입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 측에서 혹파리 관련 단지 내 안내 방송을 하고 피해 규모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송산그린시티의 한 입주민은 “혹파리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싱크대 등을 비롯해 매일 모든 살림을 빼고 해충약을 뿌리고 닦는 데도 도무지 (혹파리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 자재 보관 과정에서 유입 가능성 높아
이들 지역의 입주민과 건설사들은 붙박이장·싱크대 등 가구류의 나무에서 혹파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감 처리가 되지 않은 가구 뒤쪽, 특히 벽체와 맞닿은 부분에서 알을 까고 개체 수를 늘려 나가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실제 다수의 가구가 싱크대 주위에서 혹파리 알과 성충의 사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가구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금강펜테리움에 가구를 공급한 현대리바트는 “혹파리의 생존 기간이 최대 37일에 불과한 점을 감안할 때 작년 10월 완료된 가구 시공상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며 “또한 동일 자재는 180도 이상의 고온에서 증압·가압 처리되기 때문에 자재 내 해충의 서식 자체가 불가능하며 동일한 자재로 시공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방역 업체들은 이들 아파트의 혹파리 출현 원인으로 건축자재 보관 및 이동 과정에서 유충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최근 친환경 건축자재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자재 내 ‘포름알데히드(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발암물질)’가 줄어들어 오히려 벌레 서식 환경에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로 인천 송도 혹파리 떼 출몰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연구팀은 자재 보관 장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입주민들은 혹파리 떼 발생 원인이 시공사 측의 자재관리 불량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강펜트리움은 가구 내 투입되는 자재를 습한 지하 2층 주차장 한쪽에 보관하는가 하면 폐자재와 새 자재를 같은 공간에서 보관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시티프라디움·송산그린시티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은 좀 더 면밀히 검증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자재관리를 잘못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일단 이들 문제가 발생한 아파트의 시공사들은 현재 외부 기관에 의뢰해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금강주택 관계자는 “가구 제조나 시공상 문제나 외부 유입 여부를 포함해 원인을 찾고 있다”며 “벌레가 외부에서 날아 들어왔다면 시공 이후인데 그것까지 책임질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입주민들의 가구 교체 요구와 관련해서는 우선 방역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금강주택 관계자는 “현재 방역이 진행 중이다. 아직 방역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가구를 교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선 100% (벌레의) 박멸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 입주민과 건설사 시각차, 결국 소송전 가나

하지만 입주민들은 방역은 미봉책일 뿐 나중에 벌레가 또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가구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수차례 방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증가하는 혹파리를 없애기 위해선 서식지가 된 가구를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입주민들은 방역에 사용되는 약제가 독하고 방역 이후 집을 직접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방역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입주예정자협의회 관계자는 “방역해도 해결이 안 되고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 방역을 계속하면 알레르기나 피부염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방역이 아닌 가구를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입주민은 “가구가 썩어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고 애벌레가 수백 마리 기어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가구를 집에 둘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가구에서 날벌레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하자에 대한 여부는 확실하지 않아 아직까지는 방역 조치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시티건설 측은 “하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신청 가구에 한해 방역 조치에 나서고 있다”며 “추후 구체적인 방안을 입주민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해명했다.

금강주택 역시 “일단 단지에 혹파리가 발생한 원인을 찾고 있고 원인에 따라 해결책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당장은 방역에 주력하고 있고 100% 박멸될 때까지 방역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방역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구를 교체해도 또다시 혹파리가 생길 염려가 있어 지금 당장 가구를 교체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건설사들의 주장에 대해 입주민들은 우선 서식지부터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금강주택 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는 “서식지를 철거하고 일괄 방역을 해야 할 것”이라며 “방역만으로는 100% 재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역 후 재 발생 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금강주택의 지루한 대응 때문에 몇몇 가구는 사비를 털어 가구를 교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입주민과 건설사 간의 시각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혹파리 퇴치는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일부 입주민을 중심으로 공동주택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제기하자는 움직임과 소송을 진행하자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다만 집값 하락을 우려한 일부 입주자들은 이런 문제가 바깥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면서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번지고 있다.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