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으로 ‘주유소=황금알’ 공식 깨져…정유사들 플랫폼 혁신 박차
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진화’…“밥 먹고 차 마시고 택배도 찾고”

(사진)'차량 탑승 주문(드라이브 스루)'이 가능한 패스트푸드점과 주유기가 한곳에 들어선 울산 신천동 SK풍차주유소. /SK에너지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소비자들의 발길을 그러모으기 위해 현재 정유업계는 주유소에 차별화된 서비스를 접목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 주유소는 단순히 자동차를 주행하기 위한 ‘연료’ 충전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쇼핑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기술(IT)을 적용해 카셰어링·택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복합 공간으로 점차 탈바꿈해 나가는 모습이다. 주유소가 변신을 넘어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유사들이 주유소를 진화시키려는 목적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한때 주유소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사업’ 중 하나였다. 일단 목 좋은 곳에 문을 열기만 하면 ‘돈을 쓸어 담을 걱정만 하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돼 버렸다.


최근에는 장사가 안 돼 휴업이나 폐업을 하는 주유소들이 속속 등장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유소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주유소 수 감소 전환


1991년 주유소 거리 제한이 완화된 데 이어 1995년 주유소 거리 제한이 철폐되면서 곳곳에서 주유소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국내 주유소 수의 변화 추이를 봐도 잘 나타난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1991년 3400여 개였던 국내 주유소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0년 1만3000여 개까지 늘어났다.
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진화’…“밥 먹고 차 마시고 택배도 찾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업체 간 주유 가격과 각종 사은품 제공 경쟁 등이 치열해지며 수익률이 악화됐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주유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2010년을 기점으로 주유소 수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1만1996개까지 줄었다. 매년 100여 개의 주유소가 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여건을 고려한 적정 주유소 수를 대략 7000~8000개 정도라고 보고 있다. 여전히 주유소가 포화 상태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유소 수가 줄어드는 것을 마냥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유업계 역시 주유소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민 중이다. 특히 최근 들어 다양한 서비스를 주유소에 도입하는 등의 시도를 하며 ‘고객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주유소 내에 카페나 편의점 등을 입점시켜 고객의 발길을 유도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최근 국내 정유사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주유소를 통한 플랫폼 사업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각 정유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를 중심으로 이같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공유 인프라’ 개념 활용해 주유소에 적용


먼저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에너지 주유소를 ‘공유 인프라’화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한 상태다. 이는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른 것이다. 최 회장은 올해를 ‘딥 체인지’로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경제·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뉴 SK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는 특히 “기업의 유·무형 자산을 사회가 함께 쓰는 공유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공유 인프라와 같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 것”을 직원들에게 주문해 왔다.


현재 SK에너지는 최 회장이 강조한 ‘기업 자산 공유 인프라 구상’의 첫째 프로젝트 차원에서 택배 회사의 지역 물류 거점으로의 변신을 시도 중이다. 올해 3월 CJ대한통운과 손잡고 주유소에 ‘실시간 택배 집하 서비스’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협약에 따라 두 회사는 전국에 있는 SK주유소를 지역 물류 거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만약 해당 사업이 확정돼 CJ대한통운이 전국 3600여 개에 달하는 SK주유소 공간을 활용하면 기업이나 개인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SK주유소가 각 지역의 거점에 자리해 있고 도로와도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협약이 현실화되면 택배 접수 시 1시간 이내에 운전사가 방문해 택배를 수거하고 택배 회사는 정해진 시간에 주유소를 방문해 택배 수거와 배송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공간으로 주유소를 활용하는 방안도 조만간 확정해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SK에너지는 지난해 12월부터 주유소를 공유 인프라로 활용해 사업 모델과 아이디어를 제안 받는 ‘상상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1만여 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SK에너지는 스타트업과의 상생 차원에서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 제안들에 주목했다. 이 중에서도 주유소 공간을 활용한 밀킷(meal kit : 간편 조리식) 배송과 공급, 세탁물 접수·수령 등의 사업화 여부를 놓고 현재 검토 중이다.


GS칼텍스도 O2O 개념을 적극 도입해 전국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와 충전소를 플랫폼으로 활용해 나갈 방침이다. 현재 GS칼텍스는 미래형 스마트 주유소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커넥티드카(인터넷·모바일 서비스 연결 가능 차량) 전문 스타트업인 오윈이 보유한 기술을 이용해서다.


2015년 출범한 오윈은 차량을 무선 네트워크로 결제 수단과 연결해 주유소 등에서 주유비나 물품 등을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GS칼텍스는 미래 신사업 발굴을 위해 지난해 11월 오윈 지분 12%를 20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활용한 GS칼텍스의 미래형 주유소는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와 결제 방식이 동일하다. 아마존 고는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편의점에 들어가 원하는 물건을 계산하지 않고 가져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GS칼텍스 역시 자동차가 주유소에 들어가 주유만 하고 나올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주유 방식은 이렇다. 디지털 아이디를 부착한 차량이 해당 주유소를 방문하면 주유소에서 자동으로 이를 인식하고 차주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유 여부와 금액을 묻는 메시지를 전송한다.


주유하고 싶은 고객은 창문을 열고 주유소 직원에게 카드나 현금을 직접 건네지 않아도 된다. 차 안에서 주유 여부와 금액을 입력만 하면 직원이 다가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유해 준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최근 강남에 있는 17개 주유소에서 해당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다”며 “머지않아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휘발유부터 수소·전기 충전까지 한 번에


GS칼텍스는 또 올 상반기 중에 카닥과 고급형 편의점·카페를 결합한 신개념 주유소를 선보일 예정이다. 카닥은 국내 대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자동차 관리 서비스 업체다. 2016년 말 GS칼텍스는 카닥에 전략적 투자를 했는데 올해 비로소 양 사 간 첫 합작품이 나오게 된 셈이다. 양 사의 신개념 주유소는 미국의 ‘와와(Wawa)’가 롤모델이다.


와와는 미국 내에서 편의점과 주유소를 함께 운영하던 기업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식료품에 좀 더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질 좋은 빵과 샐러드·커피 등을 공급하기 시작하며 이를 맛보기 위한 사람들이 주유소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매출 역시 급상승하며 미국 내에서도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 기업이다. GS칼텍스 역시 이런 사업 모델을 도입해 사람들이 발품을 들여가며 주유소를 찾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진화’…“밥 먹고 차 마시고 택배도 찾고”
(사진)GS칼텍스는 미국의 주유소 편의점 '와와'를 벤치마킹해 일부 주유소를 변신시킬 예정이다. 새롭게 문을 연 매장을 방문한 이용객들. /한국경제신문


그런가 하면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 추세에 발맞춰 주유소의 변신을 꾀하는 곳도 있다. 바로 현대오일뱅크다. 머지않아 수소와 전기 등 친환경 자동차가 시장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이런 점에 착안했다. 수소·전기 등 대체 연료를 포함해 휘발유·경유·액화석유가스(LPG) 등 전통 연료까지 다양한 차량용 연료를 한곳에서 채울 수 있는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6월 중 오픈하기로 한 것이다.


차량용 연료 전 품종을 한곳에서 판매하는 것은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이 처음이다.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의 총 5000㎡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기존 주유소와 LPG 충전소 사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수소 및 전기 충전기 설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진화’…“밥 먹고 차 마시고 택배도 찾고”
현대오일뱅크는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통해 대체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이용자들의 편의가 개선되고 수소차·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보급도 보다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지방자치단체·자동차업계 등과의 논의를 거쳐 수요와 경제성 등을 따져본 뒤 복합에너지스테이션 구축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enyou@hankyung.com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