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후 첫 非서울대 출신 회장…핵심 계열사 두루 거친 전략가
‘변화’ 택한 포스코, 새 회장에 최정우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포스코가 걸어온 길은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증가하는 철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제철소 건설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1968년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되고 포항제철소가 지어졌다. 1973년 6월 마침내 용광로에서 쇳물을 쏟아내며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런 상징성 때문인지 포스코는 2000년 완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국민의 기업’으로 불린다. 민간 기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의 대표이사 회장(CEO)이 매번 바뀔 때마다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마평만 무성했던 포스코 차기 회장이 마침내 확정됐다. 포스코는 인천 송도에서 6월 23일 이사회를 열고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을 차기 포스코 회장으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내정자는 7월 27일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차기 회장에 공식 취임하게 된다.


최 내정자의 발탁은 의외의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엔지니어·비서울대 출신이 약 2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민영화 후 ‘포피아’ 논란 불거져


포스코 회장직은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역대 회장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던 포스코는 민영화 이전까지 정부가 회장 자리를 결정했다. 당시 포스코의 회장직은 장관급에 버금갈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박태준 초대 회장은 정계에서도 거물로 분류되며 예우를 받았다. 김만제 4대 회장은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뒤 포스코 회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2000년 민영화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포스코는 사외이사 등이 포함된 ‘CEO 승계카운슬’을 구성해 내부에서 회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회장 선임 절차를 가지게 된 이후에도 포스코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특정한 ‘스펙’이 요구됐다.


민영화된 이후 역대 포스코 회장들은 서울대 이공계 학과를 나오고 내부에서 철강 기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 출신들이다. 유상부·이구택·정준양·권오준 회장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포피아(포스코+마피아)’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변화’ 택한 포스코, 새 회장에 최정우
또한 포스코의 역대 회장들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김없이 중도 하차하는 일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풀이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포스코 회장직은 서울대 출신 엔지니어 중에서도 ‘새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이가 선택되는 자리’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이번에도 역시 임기를 2년 남겨둔 권오준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새 정부의 퇴진 압박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차기 회장 역시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사가 뽑힐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예상은 빗나갔다. 포스코 차기 회장에 내정된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이 선택된 것이다. 그가 그간 걸어온 길을 보면 기존 회장들의 스펙과는 거리가 있다.


1957년생인 최 회장 내정자는 부산 동래고를 나와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하며 ‘포스코 맨’으로의 첫발을 내디딘 후 주로 재무 관련 부서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민영화 이후 처음으로 ‘비서울대·비엔지니어’ 출신이 회장 자리에 올라 포스코를 이끌게 된 셈이다. 포스코는 최 내정자를 차기 회장으로 결정함으로써 포피아는 물론 외압과 낙하산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포스코는 이번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그간 제기됐던 여러 비판들을 불식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포스코는 지난 4월 18일 권오준 회장이 갑작스럽게 사임 의사를 밝히자 즉각 승계카운슬을 구성했다.


그리고 ‘포스코그룹의 100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혁신적인 리더십’을 차기 회장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세계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역량 △그룹의 발전과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혁신 역량 △핵심 사업(철강·인프라·신성장)에 대한 높은 이해와 사업 추진 역량 등을 가진 후보를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는 게 포스코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회장 후보를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추천 받았다. 0.5% 이상 지분을 보유한 30개 주주와 전문 서치펌 7개, 퇴직 임원 모임인 중우회와 직원 대의기구인 노경협의회 등에 요청해 후보를 발굴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임 절차나 후보군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데 대한 비판도 많았다. 여기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내부 위원들이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소신껏 후보 선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약 20명의 후보를 추천 받은 뒤 8차례 회의를 거쳐 6월 22일 마침내 최종 후보 5명을 뽑았다. 그리고 적임자 선정을 위해 이날 오후 1시부터 저녁 8시 10분까지 후보자 심층 면접과 이후 밤 12시 넘어서까지 이어진 토론을 통해 장인화 포스코 철강 2부문장(사장)과 최정우 후보 2명을 최종 선정했다.


◆구조조정 이끌며 경영 능력 증명


이때만 해도 장인화 사장이 차기 회장에 낙점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가 역대 회장의 조건으로 여겨졌던 서울대(조선해양과) 출신인 데다 철강솔루션마케팅실장·철강생산본부장 등을 지내는 등 조직 내에서 철강 분야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스코 이사회는 6월 23일 두 후보를 대상으로 2차, 3차 면접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최정우 사장을 회장 후보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이사회 측은 “(최 내정자가) 누구보다 그룹 전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어 전체 그룹 경쟁력과 시너지 창출에 가장 적격으로 판단했다”며 그가 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최 내정자가 걸어온 길을 보면 역대 포스코 회장들과는 다르게 비철강 부문 업무와 계열사를 두루 거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2006년까지 포스코에서 재무실장을 맡았던 그는 이후 포스코건설·포스코대우 등 등 주요 핵심 계열사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가 올해 2월 그룹 내 신성장 동력을 책임지고 있는 포스코켐텍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신소재 분야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변화’ 택한 포스코, 새 회장에 최정우
(사진) 최정우(가운데) 포스코 회장 내정자는 지난 2월부터 그룹 내 신성장동력을 책임지고 있는 포스코켐텍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신소재 분야 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의 이 같은 경력은 최근 비철강 부문을 강화하는 추세인 포스코의 경영전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포스코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글로벌 100년 기업으로서의 미션과 비전을 발표하며 “미래에는 철강뿐만 아니라 비철강 분야에서도 강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룹 이익의 80% 정도를 철강과 관련 분야에서 거둬들이는 현재의 수익 구조를 철강·인프라·신성장 등 3대 핵심 사업군에서 4 대 4 대 2의 비율로 고르게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육성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68년에는 연결 매출 500조원, 영업이익 7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포스코가 세계적인 철강회사로 성장했지만 비철강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 내정자가 그룹 내 신사업을 주도하는 포스코켐텍 등 다양한 계열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를 추진하는데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경험만으로 회장직에 오를 수는 없다. 최 내정자는 그간 다양한 활약을 펼치며 경영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룹 내에서 전략가이자 강한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라는 평이다.


예컨대 그는 정준양 회장 시절인 2015년 과잉 상태였던 포스코그룹 투자 사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포스코는 글로벌 저성장과 철강 경기 위축이라는 외부 요인과 함께 신규 투자 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최 내정자는 이때 포스코 가치경영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 회복과 재무 건전성 강화를 내세우며 그룹 구조 개편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핵심 사업과 자산을 매각했고 사업 부문을 효율성 있게 재편했다. 그 결과 한때 71개까지 늘어난 포스코 국내 계열사는 38개로, 해외 계열사는 181개에서 124개로 줄었다. 7조원 규모의 누적 재무 개선 효과를 거뒀고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에너지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때의 공로를 인정받은 최 내정자는 2016년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당시 포스코 분기별 기업설명회에 직접 나와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는 등 ‘소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업황 악화 대책 마련 등 과제 산적


최 내정자는 7월 말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회장에 공식 취임한다. 그가 회장직에 오른 뒤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로는 철강 시장의 상황이 어려운 것이 꼽힌다.


전 세계 철강 시장이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미국 등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마저 강해지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철강 사업 수익 안정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오준 전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후 포스코 역시 차기 회장 선임과 관련해 잇단 잡음에 시달리며 어수선해진 상태다. 이에 따라 조직 개편을 통해 내부를 재정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신성장 동력 확보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특히 포스코는 인프라 분야를 비롯해 에너지 소재인 리튬·니켈과 경량 소재인 마그네슘·타이타늄 등을 사업화하기 위해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이런 신사업이 무리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는 것도 최 내정자의 주요 역할로 꼽힌다.


앞선 경우에도 철강과 무관한 사업을 문어발식으로 벌이다 위기에 빠졌던 ‘흑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 내정자가 당시 소방수 역할을 했던 만큼 비슷한 위기를 가만히 방치할 가능성은 낮다고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또한 전임 회장들과 비교해 철강 부문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해소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최 내정자는 회장 내정 직후 “포스코 회장 후보로 선정돼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다”며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임직원·고객사·공급사·주주·국민 등 내·외부 다양한 이해관계인들과 상생하고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 공동 번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내정자 약력
1957년생.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1983년 포항종합제철 입사. 2006년 포스코 재무실장. 2008년 포스코건설 경영전략실장 상무. 2015년 대우인터내셔널 대표이사 부사장. 2015년 포스코 가치경영실장 부사장. 2017년 포스코 CFO 대표이사 사장. 2018년 포스코켐텍 대표이사 사장. 2018년 7월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취임 예정.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