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올해 매출 4000억원 예상…‘엄마밥’보다 더 맛있는 즉석밥 대명사로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즉석밥의 대명사 ‘햇반’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1996년 12월 출시된 햇반은 20여 년간 국민 식문화의 변화를 선도해 왔다. 국내 상품밥 시장의 포문을 열고 가정간편식(HMR) 시장 형성의 도화선이 된 제품으로 평가 받는다.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가정 내 전자레인지 보급률이 상승하는 사회적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결과다.

CJ제일제당은 편의성과 보관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무균포장 기술 도입을 위해 햇반 출시 당시 회사 영업이익의 10% 수준인 100억원 이상의 거금을 투자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년만 지나면 가정간편식 시대가 올 전망인 만큼 우리가 남들보다 먼저 시장을 이끌어야 한다”며 제품 출시를 강행했다.
원조 HMR ‘나야 나’…스물한 살 ‘햇반’ 스토리
◆구수한 밥내음 구현한 신제품 10월 출시

이 회장의 결단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햇반’의 지난해 매출은 3200억원으로 1997년 40억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80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햇반은 올 들어 7월 기준 누적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 이상 성장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햇반 매출은 4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7월 기준 누적 판매량도 2억 개를 훌쩍 뛰어넘었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햇반을 4개 이상 먹은 셈이다. ‘맨밥을 사서 먹는다’는 개념조차 없던 20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햇반은 2011년 연간 판매량 1억 개를 처음 돌파한 데 이어 2015년 2억 개 이상으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지난해 연간 판매량은 3억 개를 넘어서며 2년 만에 1억 개 이상 늘었다.

햇반의 상온 즉석밥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도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올해 햇반의 시장 점유율은 70%대로 경쟁 제품과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CJ제일제당은 차별화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햇반 소비 확대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원조 HMR ‘나야 나’…스물한 살 ‘햇반’ 스토리
CJ제일제당은 건강·웰빙 트렌드에 발맞춰 오곡밥(1997년)·흑미밥(2001년)·발아현미밥(2003년)·찰보리밥(2006년)·100%현미밥(2014년)·슈퍼곡물밥(2015년)·매일잡곡밥(2018년) 등 햇반 잡곡밥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 변화를 주도해 왔다.

CJ제일제당은 2009년 단백질 함유량이 일반 햇반 대비 10분의 1에 불과한 ‘햇반 저단백밥’을 출시하기도 했다. 단백질 제한이 필요한 선천성 대사질환자를 위한 기능성 제품이다. 2013년에는 6년의 연구·개발(R&D) 끝에 ‘햇반 식후혈당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밥’을 개발하며 건강기능식품으로서의 밥 시대도 열었다.

CJ제일제당은 밥을 지을 때 나는 구수한 밥내음을 그대로 구현한 신제품을 10월 중 선보인다. 집밥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갓 지은 밥맛’을 넘어 ‘밥향’까지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저칼로리 제품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충족시키기 위해 곤약쌀로 칼로리를 낮춘 신제품도 개발 중이다.

장승훈 CJ제일제당 햇반 마케팅 담당 부장은 “밥 본연의 구수한 향을 살릴 수 있는 쌀 품종을 개발해 신제품에 적용했다”며 “10월 중 전국 대형 마트 등을 통해 ‘햇반 구수한쌀밥’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햇반

CJ제일제당은 햇반 출시 전 두 차례 관련 제품 개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밥맛’이 문제였다. CJ제일제당은 당초 밥을 지은 후 상압 또는 감압 상태에서 급속 탈수해 수분율 5% 이하로 건조한 쌀인 알파미로 만든 상품밥 제품 개발을 시도했다.

알파미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기 때문에 주로 군용 전투식량 등으로 비상시에 먹을 수 있도록 개발된 쌀이다. 편의성 측면에서 장점을 지녔지만 맛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알파미로 실패를 경험한 CJ제일제당은 동결건조미를 활용해 재도전했다. 동결건조미는 밥을 지은 후 동결한 다음 얼음을 승화시켜 수분을 제거한 쌀이다. 제품 복원력은 우수하지만 동결을 거치면서 조직구조가 나빠져 쉽게 부스러지는 문제가 있었다.

두 번의 사례를 경험한 CJ제일제당은 일본 상품밥의 무균화 포장 방식을 도입해 제품을 출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초기 설비 투자비용만 100억원 이상이 필요했던 데다 설비를 이용한 제품 확장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밥맛 보존을 위해선 편리성과 보존성이 탁월한 무균 포장 기술이 해법이었지만 ‘사 먹는 맨밥’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에 막대한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업체들이 레토르트밥(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고온 살균해 알루미늄 봉지에 포장)을 선보이자 관련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의견도 많았다.

CJ제일제당은 그러나 시장을 이끌기 위해선 보존료를 첨가하지 않고 장기간 최고의 밥맛을 낼 수 있는 ‘무균 포장 밥’만이 최선이라고 보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제품 출시 초기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1996년 당시만 해도 맨밥을 만들어 판다는 것이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던 시기였다.

CJ제일제당은 “아이들이나 남편 친구들이 집에 갑자기 들이닥쳐 밥이 모자랄 때 이를 해결하는 아이템”이라며 햇반을 내세웠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즉석밥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차츰 높아지면서 햇반을 ‘일상식’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CJ제일제당은 햇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 R&D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당일 도정’은 햇반의 대표 경쟁력으로 꼽힌다.

CJ제일제당은 2006년 ‘3일 이내 도정한 쌀’로 국내 즉석밥 제품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데 이어 2010년 이후에는 당일 도정한 쌀로 햇반을 생산하고 있다. 자체 도정 설비 도입을 통해 맛 품질뿐 아니라 쌀의 종류에 따른 맞춤 도정도 가능해졌다는 게 CJ제일제당의 설명이다.

‘무균화 포장’도 차별화 포인트다. 무균화 포장은 반도체 공정 수준의 클린룸에서 살균한 포장재를 이용해 밥을 포장하는 기술을 뜻한다. 무균화 포장을 거친 완제품은 보존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고도 장기간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신선한 밥맛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포장재 기술도 빼놓을 수 없다. 햇반의 그릇은 3중 재질로, 측면이 다각형으로 돼 있다. 용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디자인으로 유통 중 제품의 찌그러짐을 방지한다. 특유의 주름은 전자레인지 조리 시 밥맛을 최고조로 높일 수 있도록 전자파 투과율 등을 고려해 만들었다. 뚜껑 기능을 하는 비닐 덮개는 서로 다른 4중 특수 필름지를 적용했다.

이들 포장 재질은 섭씨 10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성분과 외형이 변형되지 않는다. 공기가 전혀 드나들 수 없고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게 CJ제일제당의 설명이다.
원조 HMR ‘나야 나’…스물한 살 ‘햇반’ 스토리
◆간편대용식 ‘햇반컵반’ 매출도 ‘쑥쑥’

햇반의 뒤를 이어 ‘국민 집밥’으로 성장 중인 ‘햇반컵반’도 인기다.

햇반컵반은 2015년 4월 출시 이후 지난 4월까지 3년간 누적 매출 2000억원을 달성했다. ‘햇반컵반 미역국밥’과 ‘햇반컵반 강된장보리비빔밥’이 각각 1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전체 성장을 견인 중이다. 햇반컵반은 지난 8월 역대 최대 월 매출인 100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햇반컵반은 ‘밥이 맛있는 간편대용식’을 표방한다. 기존 복합밥의 밥맛과 내용물에 대해 아쉬워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이다. 지함(종이상자) 형태만 존재하던 시장에서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첫 컵 형태의 제품으로 차별화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햇반컵반은 첫해부터 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대박’ 조짐을 보였다. 2016년에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한 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작년 매출은 80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햇반컵반은 상온 복합밥 시장 점유율 60%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햇반컵반 덕에 관련 시장 규모도 커졌다. 2014년 200억원대 수준이었던 상온 복합밥 시장 규모는 햇반컵반 출시 이후부터 가파르게 성장해 3년 만에 10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CJ제일제당은 햇반컵반의 성공 비결로 기존 가정간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맛 품질 차별화’를 꼽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제품 기획 단계부터 기존 컵밥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햇반으로 밥의 맛을 확보하는 한편 국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액상 소스를 활용해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CJ제일제당은 햇반컵반에 재료 각각의 맛을 살리는 전처리 공법을 적용했다. 상온에서도 야채의 식감을 살릴 수 있도록 해 맛 품질을 높였다. ‘햇반컵반 콩나물해장국밥’과 ‘햇반컵반 고추장나물비빔밥’이 대표적이다.

종이컵 모양의 용기에 햇반을 결합해 포장하는 기술도 최초로 적용했다. 별도의 뚜껑이나 종이 포장 없이 햇반 제품이 뚜껑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원통형 컵 용기를 그릇처럼 활용할 수 있어 소비자가 별도로 제품을 덜어 먹을 필요 없이 간편하게 어디서나 제품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채민수 CJ제일제당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은 “햇반컵반 출시 이후 혼밥 트렌드에 발맞춰 ‘가정식 1인 맛집’ 등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진행하면서 소비자 인지도를 확보했다”며 “국밥류와 덮밥류 등 총 18종인 제품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