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단상]
[옥우석의 경제돋보기] '평균을 향한 경쟁’ 부추기는 대학 정책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 고도성장기의 수출 주도형 성장 모형은 세계의 뭇 경제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경제발전의 성공적인 모형으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의 수출 주도형 발전 모형이 성공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평가의 단순함이었다.

당시 정부는 다양한 성장 촉진 정책을 채택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의 성과를 수출액이라는 단순한 지표를 통해 평가했고 기업들도 수익성·매출액 등 다양한 성과지표들 중에서도 수출 증진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해야만 각종 지원 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단순함이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의 모든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집결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종종 특정한 시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큰 부분에 집중해 대책을 내놓는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 정책 입안자가 한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 항상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원래 정책이 추구하던 목표가 흐려지고 여러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정책이 혼재하며 급기야는 여러 가지 조치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더해 어떤 정책이 일단 입안되면 처음 아이디어를 일선 행정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행정의 일선에서는 종종 공정성을 입증하기 쉬운 정량 지표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면 정책 입안자의 의도와 달리 내용보다 형식에 집착하게 되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대학 정책을 들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교육부는 특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대학 지원 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아왔다. 교육·연구·산학협력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재정 지원 사업을 지렛대로 활용해 특성화를 통한 대학 간 경쟁을 유도했다.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대학들의 특성상 대학들은 정부 재정 지원 사업 수주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문제는 평가의 방식과 체계에서 발생했다. 각각의 사업들은 선정과 평가에서 대학의 기초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일반적인 지표들을 근간으로 각 사업의 특수한 목적을 반영하기 위해 특정한 성과지표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구성돼 있었다. 대학들은 하나의 사업에서라도 선정되기 위해 교육과 연구 관련 제도 개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연구·교육·산학협력 등 모든 분야에서 비슷비슷한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그 결과 많은 대학들이 특성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보다 방향성을 잃고 우왕좌왕했던 반면 일부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들이 교육·연구·산학협력 등 모든 분야에서 재정 지원 사업을 독점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또 대학들은 일단 재정 지원이 종료되고 나면 더 이상 재원이 없는 사업들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재정 지원 사업의 결과 대학의 체질 개선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최근 교육부는 다양한 연구 및 산학협력을 제외하고 교육 분야의 다양한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합한 대학 혁신 지원 사업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사업의 가장 중요한 취지는 교육부가 특성화의 방향을 지정하기보다 각 대학이 얼마나 자신이 도출한 발전 계획에 걸맞게 각종 제도들을 개선해 왔는지에 따라 평가해 대학 스스로 특성화 방향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의 이러한 방향 전환은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대학들이 각종 제안과 평가의 행정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발전 계획을 통해 일관된 특성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정 지원을 시행할 때 각 대학이 제출한 발전 계획을 평가해 재원을 차등 배분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이후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필자는 대학들이 다시 평균을 향한 경쟁에 나서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정함을 입증하기 위한 평가 기준은 일반적인 지표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발전 방향을 대학 스스로의 손에 맡기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궁금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