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친문-반문 갈등 심화…‘지지율 40%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집권 1년 반 만에 조짐 보이는 ‘레임덕’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이명박 정부 때 정권 실세 소리를 들었던 한 전직 의원은 “레임덕 징후는 권력 바깥이 아니라 정권 내부에서 먼저 오더라”고 말했다. 야당이야 원래부터 정권에 비판적이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니 물밑에 있던 여권 내 계파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대통령의 말이 잘 먹혀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뒤뚱거리며 걷는 절름발이 오리처럼 국정 장악력이 약화된 것을 의미하는 레임덕은 보통 임기 말에 나타난다. 그 특징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 그에 따른 내부 권력 다툼,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와 복지부동 등이다. ‘게이트’로 불리는 권력형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것도 역대 정권의 특징이다.

여당 내부에선 차기 주자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정권 중반까지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는 언행을 삼가는 것이 보통이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내부 권력 다툼도 일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부터 정치권에서 레임덕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지원 “대통령의 실질 임기는 원래 2년뿐”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석한 것과 이재명 경기지사 문제를 둘러싸고 친문(친문재인)-반문 갈등으로 비화된 것, 청와대 기강 해이 등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다. 사례들로 보면 전형적인 레임덕의 특징을 띠고 있다. 마침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까지 겹쳤다. 이 기회를 잡아 야당은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저는 일찍부터 ‘레임덕은 세월이다. 대통령의 형식적 임기는 5년이지만 실질적 임기는 2년이다.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고 말해 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레임덕 현상은 시작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과 특별감찰반원들의 기강 해이, 이 지사의 문 대통령 아들 준용 씨 취업 특혜 발언 등을 볼 때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지사가 준용 씨의 채용 비리 의혹 얘기를 꺼낸 것을 두고 레임덕으로 봐야 한다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 지사가 문 대통령과 결별을 각오했다. 친문 대(對) 이재명 대결 구도를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이 지사가 문 대통령 공격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 지사가 자신과 주변에 대한 경찰 수사를 두고 ‘경찰이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고 하더니 대통령 아들 의혹 문제까지 들고나왔다”며 “문제는 민주당 지도부가 당사자에게 경고 한 번 주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가 대통령 아들까지 거론하며 공격하고 있는데도 여당 지도부가 별다른 방어에 나서지 않은 것은 심각한 레임덕이라는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방어에 나섰다가 자칫 친문-반문 간 치열한 권력 다툼이 일 수 있고 집권 3년 반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이런 갈등은 국정 운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게 야당의 분석이다.

박 시장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집회에 참석한 것은 또 다른 레임덕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김 원내대표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합의한 사항인데 박 시장이 ‘나는 노동 존중 특별시장’이라며 대놓고 반기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박 시장이 탄력근무제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의 아들 문제를 거론한 것은 공직 기강이 허물어지는 것과 연결돼 있다”며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지지율과 레임덕 연관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밑으로 붕괴됐는데 경제 악화가 가장 큰 이유이며 이런 가운데 청와대발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며 “청와대 공직자의 오만과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지사는 정치적 음해 공작의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친문들의 공격에 나섰다.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데 대한 보복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올가미’를 씌우고 있고 자신은 부당한 피해자라는 게 이 지사의 주장이다. 이 지사는 이간계라는 말도 썼다. 어떤 세력이 자신과 친문 세력 간 갈등을 심화시켜 갈라놓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준용 씨에 대한 이 지사의 표현은 다소 모호하다. 이 지사는 “나와 아내는 준용 씨 채용 의혹이 허위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준용 씨를 언급해 평지풍파를 일으켰을까. “내 아내를 수사하려면 준용 씨부터 다시 수사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겠나”라는 친문을 향한 경고성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결국 자신만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대놓고 반발하는 것이 레임덕 징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집권 1년 반 만에 조짐 보이는 ‘레임덕’
여권 “20대, 영남, 자영업자 이탈 잡아라”

반면 여권에선 “레임덕 징후로 보기 힘들다”고 차단에 나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50% 전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두고 레임덕이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했다. 또 “청와대 기강 해이라고 하는데, 조직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탈”이라며 “이를 두고 레임덕 현상으로 보는 것도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여준 환경부 전 장관은 “집권 초기에 여권 내부에서 이런 식의 권력투쟁 양상이 벌어지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누구를 시켜서 하든, 직접 하든 어떻게든 권력투쟁 양상을 빨리 수습하지 않고 대통령 성격상 그냥 두면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변수는 지지율 추이다. 정권 초반 80%대까지 기록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50% 전후로까지 떨어졌다. 임기 초반 높던 지지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것은 역대 정권 공통의 특징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학계에선 이를 두고 ‘필연적 하락의 법칙(the law of inevitable)’이라고 부른다.

문우진 아주대 교수는 논문 ‘대통령 지지도 필연적 하락의 법칙-누가 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바꾸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의 이념성을 숨긴 채 도덕성·능력을 최대치로 분출한데 따라 자연스럽게 유권자의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취임 직후엔 ‘모두를 위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에 지지율이 최고조로 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족스러운 정책 결과가 노출되고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대통령도 인지하고 국민의 실망감이 쌓이면서 지지율 급락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지지율 50% 전후는 과거 정권에 비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자, 정권 주요 지지층인 20대와 영남권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데 있다. 경기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지지율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치권에선 대체적으로 정권이 지켜야 할 지지율 마지노선을 40%로 본다. 한 전직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지율이 40% 밑으로 내려가면 여권 내 차기 주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여당 지도부도 청와대와 거리를 두며 공무원들이 잘 움직이지 않아 국정 동력에 힘이 빠지더라”고 했다. 관건은 역시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2호(2018.12.10 ~ 2018.1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