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인사이드]
-부동산 PF 경험 증권사, 미래 먹거리 ‘부동산’ 관심…한투·NH 등 유력 후보 거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10년 만에 부동산신탁업 신규 진입의 빗장이 풀리며 국내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0월 ‘부동산신탁업 경쟁 제고를 위한 신규 인가’ 방안을 발표하고 11월 말까지 부동산신탁업 예비인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모두 12개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그중에서도 증권사들은 자산 운용사와 컨소시엄을 맺거나 금융지주사와 손잡고 부동산신탁업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동산 금융 사업의 수익성이 높은데다 기존 서비스와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신탁업, 영업이익 연평균 35%씩 증가

부동산신탁업은 부동산 소유자로부터 권리를 위탁받아 자금과 전문 지식을 결합해 신탁재산(해당 부동산)을 관리·개발·처분하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을 위탁자에게 반환하는 과정에서 그 대가로 신탁 보수를 받는 사업을 말한다. 실제는 ‘부동산 개발’이지만 형태는 ‘금융’이다.
10년 만에 빗장 풀린 부동산신탁업…증권사들 ‘군침’ 흘리는 이유
금융위원회는 올해 5월 보험과 함께 부동산신탁업의 시장 개방을 발표했다. 7월부터 9월까지 부동산신탁업의 경쟁도 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 부동산신탁업의 경쟁도가 낮다는 판단을 내렸다. 10월 부동산신탁업 신규 인가 방안을 발표하고 11월 예비인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이후에는 외부 평가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금융위에서 인가 회사가 최종 결정된다. 외부 평가위원회는 리스크 관리·정보기술(IT)·법률·회계·신탁업 등 분야별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신규 인가 업체 수는 경쟁력과 혁신성을 갖춘 곳을 중심으로 최대 3개사까지 인가할 예정이다. 최종 결과는 내년 3월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부동산신탁업은 업계 1, 2위인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을 비롯해 모두 11개사가 운영 중이다. 2009년 무궁화신탁과 코리아신탁 인가 이후 신규 진입과 퇴출 없이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사실상 ‘과점 체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기존 업체들은 경쟁이 제한된 시장에서 알짜 수익을 누려올 수 있었던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부동산 호황에 힘입어 연속 흑자를 내는 데 이어 2018년 상반기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금융위가 지난 9월 발표한 ‘부동산신탁업 경쟁도 평가 결과 보고서’에도 잘 나타난다. 최근 5년 동안 국내 11개 부동산신탁사들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연평균 35%씩 증가하며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고 있다. 연간 순이익 총액은 2013년 1223억원에서 2017년 말 기준으로 5046억원으로 증가해 4배 넘게 뛰었다.

무려 10년 만에 진입 장벽이 허물어지는 부동산신탁업에 증권사는 물론 다양한 금융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증권사들은 새롭게 빗장이 열리는 부동산신탁업의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경숙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들은 금융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차원에서 신탁업 진출을 고려 중”이라며 “증권사들은 새롭게 신탁업에 진출할 잠재 플레이어들 중에서 전통 신탁사의 최대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증권사들은 부동산 개발 사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국내 부동산 시장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투자은행(IB) 등 기존 서비스와의 시너지도 크다. 실제 최근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는 전통적 수익원인 브로커리지 수익이 점차 줄어들면서 IB 부문의 수익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신탁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신탁 사업을 통해 PF 대출을 촉진할 수 있다. 나아가 개발·투자·분양 등 부동산 개발 사업 전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증권사의 ‘자본 조달 능력’은 부동산신탁업을 영위하는 데 큰 경쟁력이다. 전문 신탁사와 비교해 개발 역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여신과 신탁 기능을 활용해 토지비와 건축비 조달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에서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의 저변이 넓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부동산 경기가 둔화되며 부동산신탁업의 수익 기반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외 부동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부동산신탁 관련 리스크에 대한 모니터링과 사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성 갖춘 대신증권, 키움증권도 다크호스

현재 부동산신탁업에 도전장을 내민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과 같은 대형사를 비롯해 대신증권·신영증권 등이다. 대형 증권사는 한국투자금융지주·NH농협금융지주 등 지주사를 중심으로 출사표를 던진 반면 중소형 증권사들은 자산 운용사 등과의 컨소시엄 형태로 사업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이 대부분이다.

컨소시엄 형태로 신청한 업체들이 많은 것은 자기자본 규모와 자금 조달 방안의 적정성이 심사 항목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이번 예비 인가 심사의 기준으로 5개 항목을 제시했다. 자기자본(100), 인력·물적 설비(150), 사업 계획(400), 이해 상충 방지 체계(150), 대주주 적합성(200)이다.

강영수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부동산신탁업의 특성을 감안해 사업 계획, 이해 상충 방지 체계, 대주주 적합성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점이 가장 높은 ‘사업 계획’ 부문은 사업 영역의 확장성, 사업 방식의 혁신성, 사업 모델의 안정성 및 고용 창출 가능성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할 방침이다.
10년 만에 빗장 풀린 부동산신탁업…증권사들 ‘군침’ 흘리는 이유
업계에서는 부동산 금융 등의 경험이 풍부하고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대형사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혁신성과 확장성’을 강조하며 사업 계획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 만큼 중소형사들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부동산신탁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자본력이 월등한 대형사와 함께 부동산과 관련돼 있는 자산 운용사 위주로 인가가 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곳은 한국투자증권(한국금융지주)과 NH투자증권(NH농협금융지주·농협네트웍스)이다. 이미 부동산 금융업의 경험이 풍부한데다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지주의 핵심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부동산 금융업계의 큰손이다. 지난 3월 벨기에 외교부 청사 빌딩에 4900억원, 스페인 네슬레 빌딩에 12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부동산 비율을 높이고 있다.

NH투자증권 또한 대형 빌딩 매매 주관은 물론 굵직한 부동산 PF 금융에 참여하며 부동산 금융의 강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올해 들어서만 서울스퀘어, 삼성물산 서초사옥, 강남N타워 등 대형 랜드마크 부동산 매입을 추진했다. 그중 서울스퀘어는 거래대금 총액이 1조원에 달해 올해 국내 최고가 부동산 거래로 기록될 전망이다.

부동산 금융 그룹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대신증권도 눈여겨볼 만한 후보군으로 꼽힌다. 대신증권의 모회사인 대신금융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대신증권과 부동산 개발업을 영위하는 대신에프앤아이 등이 중심이 돼 부동산 부문에 대한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지난 6월과 9월 미국에 부동산 관리 법인을 잇달아 설립하는 등 최근에는 해외 부동산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신증권은 지난 9월 4일 이사회에서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에 있는 빌딩 두 곳에 총 1227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키움증권이 참여한 에이엠자산신탁 컨소시엄도 규모는 작지만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부동산 자산운용 강자인 마스턴자산운용·이지스자산운용과 손잡았다. 두 곳 모두 기존의 부동산신탁사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움증권 역시 올해 코람코자산신탁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부동산신탁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온 바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3호(2018.12.17 ~ 2018.1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