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국내 기업 협업 점수 49점 불과…무임승차·방관 없애려면 역할과 책임 명확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회사는 다양한 조직으로 구성된다.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본부·실·팀·파트 등 제각각의 명칭을 갖고 있고 위계가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관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조직’으로 이뤄진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모이면 더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여러 조직이 힘을 모아 시너지를 만들기를 기대하는 게 바로 ‘회사’가 생긴 진짜 이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힘을 모으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역할 주어져야 책임감도 늘어나

특히 한국에선 회사 내 협업 정도가 낮은 것으로 타나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수년 전 직장인들에게 협업과 관련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매긴 자기 조직의 협업 점수는 100점 만점에 49점밖에 되지 않았다.

이유는 뭘까. 아마도 협업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좋지 않은 경험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같이’ 일하자고 해 놓고 쏙 빠져버리는 ‘무임승차자’, 일을 ‘부탁’해야 하는 상황 같은데 강압적으로 지시하거나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동료 등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자도생’하라는 식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조직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조직 내 성공적인 협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협업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면피성 업무 태도’를 꼽는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사람은 ‘숨을 곳’이 있으면 숨게 돼 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친다’는 협업, 말은 참 좋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나 하나쯤은’ 힘을 덜 써도 된다는 핑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무임승차자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성원들의 선한 의도를 믿으면 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제도와 시스템, 다시 말해 툴(tool)이 필요하다. 책임 소재가 모호한 협업 이슈일수록 명확한 ‘역할과 책임(R&R)’이 주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툴이 ‘RACI’ 차트다. RACI 차트는 업무 프로세스상 누가 어떤 수준으로 일해야 할지를 정리한 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나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개인별 R&R을 정리하는 것이다.

R&R은 크게 4개다. 실제 수행 담당자(Responsi ble), 프로젝트 결과 책임자(Accountable), 이를 돕기 위한 조언자(Consulted), 업무 수행 결과를 통보 받는 사람(Informed)이다. 4가지 역할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RACI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RAC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조직 내 업무 상황을 예로 들어 알아본다. 한 회사에서 신규 마케팅 채널을 발굴하기 위한 전사 협업 태스트포스팀(TFT)이 구성됐다.

TF에서 팀장이 해당 프로젝트의 진행 사항을 총괄해야 할 책임자(Accountable)가 된다. 다양한 팀에서 모인 구성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고 결과물의 수준을 ‘책임’져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팀장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위 업무를 맡아 진행할 구성원을 골라 각 업무별로 실제 수행 담당자(Responsible)의 역할을 줘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각자에게 역할만 준다면 ‘팀’으로 협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과거 유사한 업무를 맡았거나 관련 분야에 전문적 지식이 있는 구성원에게 조언자(Consulted)의 역할을 부여해 프로젝트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말뿐인 ‘협업’, RACI 차트로 바꿔라

마지막으로 직접적 이해관계자는 아니지만 관련 업무 진행 내역을 알아야 하는 재무팀 등 유관 부서 사람들에게 결과를 통보 받는 사람(Informed) 역할을 줄 수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을 봐도 대부분이 ‘청소반장’, ‘수업반장’과 같은 반장 직함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 사람은 ‘역할’이 있어야 책임감을 갖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에서도 협업을 이끌려면 각자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협업은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손 놓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정확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 보자. 일하기 전 각자의 책임을 정하는 RACI 차트를 간단하게라도 작성해 보면 무임승차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소통 만들어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 함께 갖춰져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다. 무조건 상대를 위해서만 일하라는 게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원 부서는 관리가 중요해 깐깐하게 검증한다. 반대로 현업 부서는 빠른 실행을 위해 가끔 절차를 건너뛰어서라도 일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이 둘이 협업한다면 갈등이 생길 게 뻔하다. 하지만 이때 잠시만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상대 팀의 상황에서 해당 이슈를 한번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런 작은 생각의 변화가 ‘협업하고 싶은 동료’로 뽑히는 시작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세련된’ 방식의 소통이다.

물론 소통을 잘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한 조사 기관에서 중학생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 결과가 놀라웠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 첫째 순위는 괴롭히는 친구나 선생님이 아닌 부모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모가 싫어하는 사람 가운데 1등으로 꼽힌 것이다. 이유는 더 충격적이다.

부모가 싫은 이유는 흔히 생각하듯 잔소리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같은 철학적 이유도 아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다 맞는 말인데 말을 너무 밉게 해서’다.

맞는 말을 밉게 한다는 것은 대화의 ‘시작’에서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많이 알려주면 충분한 소통이 된다’는 오해다. 미리 밝혔듯이 이건 오해다. 소통은 알려주는 게 아니다.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이 진짜 의미의 소통이다.

협업 과제 수행을 앞두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이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다’며 본인의 시각에서 설명을 시작한다. 이걸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반박한 사람이 처음 말한 사람보다 윗사람(가정에서의 나이로든, 조직 내 직급에서든)이라면 아마도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잔소리를 들었다’는 씁쓸함이 더 클 것이다. 결국 요즘 중학생들이 ‘부모’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말하기 전에 일단 듣자

소통을 잘하기 위해선 말하기 전에 일단 들어야 한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소위 ‘중2병’에 걸린 아이가 있다. 학원 끝난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기다리던 부모가 말한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일찍 좀 다녀. 넌 하여튼 부모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네 생각만 하지.”
이 말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왜 늦었어”에서 끝났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이유를 말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이의 귀가가 늦은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수업 후 뭔가 궁금한 게 있어 선생님과 보충 학습을 하다가 늦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급하게 집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혹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위로해 주느라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집에 오던 중 길을 잃은 꼬마 아이를 만나 도와주느라 늦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잘 듣지 못한다. ‘또 놀다가 늦었겠지’라는 본인만의 생각에 갇혀 ‘빨리 들어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결국 이 대화에 소통은 없다.

소통이 되려면 결국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좀 더 발전적인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아는 걸 상대도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단 들어보자. 그게 협업을 위한 소통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각자 아는 게 다르다. 정보 역시 제한된 것만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협업은 필요하다. ‘자신이 놓친 부분을 다른 동료가 보완해 줄 수 있는’ 것도, ‘혼자서는 버거웠던 일도 동료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된 것도 다 협업을 한 덕분이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팀’으로 일하는 이유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등으로 연예인보다 더 유명해진 나영석 PD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작가가 있는데 굉장히 트렌디하고 20대를 대변하는 코드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고 치자. 회의 중 20대에 관련된 아이디어가 나오면 난 그 작가의 표정을 살핀다. 과연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이다. 지루해 하는지 아니면 반짝반짝 관심을 나타내는지 유심히 지켜본다.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휙휙 지나가는 반응이나 표정에서 읽어야 한다.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을 때가 많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7호(2019.01.14 ~ 2019.01.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