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209호 (2019년 01월 30일)

협상 타결의 숨은 '복병' 이해관계인

[경영전략]
-협상 당사자만 고려하다가 낭패 볼 수도…‘협상 계획 디자인’ 반드시 필요해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비즈니스 협상의 최우선 순위는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런데 협상에 나선 당사자들이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숨은 이해관계인들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다. 숨은 이해관계인들을 협상에 고려하지 않으면 기대했던 이익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당사자와의 협상을 전부로 생각하면 안 돼

협상의 당사자가 아닌 숨은 이해관계인이 과연 협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국내 M증권을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수년간 뛰어난 운용 실적을 보인 김 모 펀드매니저를 다른 경쟁 회사에 빼앗겼다. 이유는 그가 과다한 연봉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증시는 부진했지만 대체 펀드 등 사모펀드에서 좋은 성과를 냈던 김 펀드매니저는 연봉을 2배로 올려 10억원 이상을 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회사는 스타급 직원을 붙잡기 위해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직원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워 이를 거절했다. 

만약 당신이 이 회사의 영업담당 임원이라면 이 펀드매니저의 연봉을 높여줄까. 대부분은 당연히 ‘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뛰어난 인재를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왜 연봉 인상 요구를 거절했을까. 

경영진은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재관리 부서가 직원들 간의 위화감을 막기 위해 임금 격차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만들고 규정 준수와 직원 상호 간의 형평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해서 생각마저 같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협상에 나서는 팀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모두 동일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같은 조직 구성원들 간에도 개인의 가치관, 자기와의 이해관계, 계파 간의 갈등 등으로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를 경시하면 내부에서 분열이 초래될 수 있다.

이번엔 국내 모 항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10여 차례에 걸친 노사협상 끝에 양측 대표단은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 냈다. 급여 인상은 평균 5.3%로, 근무 기간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직종에 따른 상해보험 보상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당초 노사는 이 정도 수준이면 모두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서로 합의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은 며칠 가지 못했다. 회사 내 특정 그룹에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결국 노조는 원천 무효 주장을 하며 또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이유는 이랬다. 노조는 내부적으로 직종에 따라 조종사와 일반 직원으로 구분돼 있고 출신 기반에 따라 공채 출신과 군 출신, 군 출신은 다시 공사 출신과 비공사 출신으로 나눠져 있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주장하는 목소리가 당연히 달랐던 것이다. 어렵게 합의한 타결 내용은 내부에서 조정되지 못하고 결국 외부 협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이 사례는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타결 내용이 양측을 만족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둘째, 타결 결과가 영향을 미칠 만한 잠재적인 내부자들, 특히 합의 이행을 방해할 만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항상 관찰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지닌 이해관계와 능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제대로 된 협상의 밑그림 그려야 

이처럼 당사자 간에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뒤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인들에게 손해가 된다면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시작부터 치밀하게 협상 과정에서 예상되는 밑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기술 개발 업체인 ‘록스토어시스템스’는 이를 간과해 실패의 쓴맛을 본 대표적인 기업에 꼽힌다. 

이 회사는 과거 가스탱크의 누출을 점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의 기술보다 100배 빠르고 정확하며 비용도 저렴했다. 

때마침 미국 환경보호국이 가스탱크 정기 점검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값싸고 우수한 점검 기술을 개발했는데 정기 점검이 법제화되며 록스토어시스템스는 큰 성공을 기대하고 구매자들과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록스토어시스템스의 기술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새 법안이 허용하는 가스 누출 수치는 몇 갤런 정도였지만 록스토어시스템스의 기술은 물컵 하나 정도의 누출도 잡아낼 만큼 민감했다. 구매자들은 말했다. 

“정말 뛰어난 기술이고 가격도 훌륭하군요. 하지만 이 기술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합니다. 가스가 조금이라도 누출됐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요. 자칫 잘못되면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차라리 경쟁사가 이 기술을 채택했으면 좋겠네요.” 

록스토어시스템스는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저렴한’ 것이 확실히 잘 팔릴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본인들의 생각에만 몰입된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기술은 오히려 골칫거리로만 보였던 것이다. 

이 실패의 핵심은 협상 계획을 잘못 디자인하는 우를 범한 데 있다. 기술을 구매할 회사를 협상 상대로 먼저 설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즉 록스토어시스템스는 오히려 정부를 먼저 설득해야 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협상판을 디자인했다면 록스토어시스템스는 자사의 새 기술로만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법안이 제정되도록 공을 들였을 것이고 모든 기업이 록스토어시스템스의 기술을 주문했을 것이다. 그러면 기업들이 낮은 비용에 새 기술을 도입하고 환경보호에도 일조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가스 누출 기술과 관련된 동종 업체들과 먼저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신기술을 공개하고 모종의 라이선스 계약을 한 다음 서로 연합 전선을 구축해 정부를 설득했다면 어땠을까. 

결국 록스토어시스템스는 내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상대방의 진정한 이익은 따져 보지 않은, 매우 흔한 실수를 저질렀다. 사전에 미리 장애물을 조사하는 것이 사후에 실패 이유를 조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예측하지 못할 상황 대비한 임기응변도 갖춰야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인은 다양하다. 그들을 찾아내고 고려하는 제안을 해야 제대로 된 협상이다. 그렇다면 협상에는 과연 어떤 이해관계인들이 존재할까. 큰 틀에서 ‘핵심 이해관계인’과 ‘일반 이해관계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객·임직원·주주·협력사·경쟁사·지역사회 등은 협상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받을 수 있는 핵심 이해관계인이다. 

협상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짓기 전에 핵심 이해관계인들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사전에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언론·시민단체·정부·지자체·다음 세대·자연 생태·기후 등은 일반적인 이해관계인으로 꼽는다. 대부분의 협상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때로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제임스 세베니우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복잡한 비즈니스 딜에서 성공하려면 사고를 전략적으로 하되 행동에 임기응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기응변이 필요한 이유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항상 터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원래의 협상 전략이 무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협상에 참가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잠재적 이해 당사자들까지 넓게 파악하고 그림을 그린 다음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를 적용한 협상 성공 사례를 살펴보자.

1998년 미국의 지역 은행인 퍼스트유니언뱅크는 현지 금융회사 코어스테이츠파이낸셜을 160억 달러에 합병했다. 이는 당시 미국 금융업계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은행 간 인수·합병(M&A)이었다. 

협상이 마무리될 무렵 코어스테이츠파이낸셜의 최고경영자(CEO) 테리 라슨은 마지막 거래에 합의하기를 망설였다. 망설였던 원인은 인수 가격과 관련이 없었다. 퍼스트유니언뱅크에서 자신의 재무적 요구를 다 들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병 이후 자신들의 고객 기반이었던 펜실베이니아·뉴저지·델라웨어에서 자선 활동을 하기로 한 약속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면 지역사회에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역사회를 팔아넘긴다는 비난을 사게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라슨 CEO의 최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숨은 이해관계인이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상대와의 협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 상대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 문제는 곧 바로 당신에게도 문제가 된다. 상대에게 영향을 줘 협상이 틀어지거나 조건이 바뀐다면 당신에게도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이런 문제를 협상 당사자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자.

퍼스트유니언뱅크는 라슨 CEO의 난처한 상황을 뒤늦게 인지하고 1억 달러 규모의 지역사회 재단 설립을 별도로 제안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단 설립이 추진되자 걱정거리가 사라진 라슨 CEO는 이 인수·합병 거래의 최고 옹호자가 됐다. 코어스테이츠파이낸셜 이사회에 승인을 적극 추천했고 거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퍼스트유니언뱅크는 이에 따라 자산 규모 2000억 달러로 미국 내 6대 은행이 됐고 미 동부 지역 최대 규모의 은행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협상에 걸림돌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튀어 나올 수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인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집단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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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1-2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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