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대로 등 총 2개 매장 문 열 예정…국내 중소형 브랜드와 협업 기대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운영하는 화장품 전문 매장 ‘세포라(Sephora)’가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세포라는 10월 국내에 매장 두 곳을 오픈할 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아직 매장이 들어설 구체적인 장소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국내 뷰티 숍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서울 강남대로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 상권을 위주로 매장이 들어설 ‘터’를 물색하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세포라의 한국 진출이 윤곽을 보임에 따라 여러 업체가 경쟁 중인 국내 뷰티 숍 판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진다.
[단독] ‘원조 뷰티숍’ 세포라, 10월에 한국서 매장 오픈
그동안 세포라의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두산을 비롯해 신세계 등 국내 유통 기업과 손잡고 국내에서도 매장을 열 것이라는 소문이 숱하게 쏟아졌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던 세포라는 지난해 막연하게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화한 상태였다.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 링크트인을 통해서다.

지난해 6월 한국지사에서 근무할 인사 관리자 채용 공고를 내면서 2019년 3분기 한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국내 뷰티업계에서도 세포라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한국지사와 관련한 채용을 이어 가며 한국 진출을 위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이커머스 경력직 채용 공고를, 올해 1월 한국지사의 마케팅 임원 채용 공고를 잇달아 올렸다.

◆국내 뷰티업계와 전면전 예고

매번 공고를 낼 때마다 오는 3분기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내용을 덧붙이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국내에 매장을 열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세포라의 한국 진출의 윤곽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세포라는 한국 시장 진출과 관련한 자문을 하기 위해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측 관계자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화장품산업연구원은 정부와 국내 민간 기업들이 함께 만든 연구 단체다. 이 과정에서 세포라는 연구원 측 관계자에게 대략적인 한국 진출 계획을 공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구원 측에 따르면 우선 세포라의 국내 진출 시기는 일단 10월로 정해졌다. 물론 내부 상황이나 국내 사정에 따라 다소 앞당겨지거나 미뤄질 수도 있지만 일단 10월에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다.

오픈하는 매장의 개수는 올해 총 두 곳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확한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선 서울 강남대로에 단독 매장 형태의 오픈이 유력하다.

강남대로는 하루 유동인구 25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상권이다. 이곳에서 세포라라는 ‘네임 밸류’를 앞세워 고객들을 대거 그러모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강남대로에 이미 신세계백화점의 ‘시코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라이브’ 등 대규모 체험형 뷰티 숍이 들어선 만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매장이 들어설 자리는 현재 물색 중이다. 강남대로와 마찬가지로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초대형 상권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단독] ‘원조 뷰티숍’ 세포라, 10월에 한국서 매장 오픈
매장 구성·판매와 관련한 전략도 어느 정도 공개했다. 매장은 ‘럭셔리 뷰티 편집 숍’을 표방
한다. 그리고 판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인터넷·모바일)을 모두 아우르는 ‘옴니 채널’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측에 따르면 세포라는 국내 뷰티 숍 시장을 분석한 결과 기존의 매장들은 대부분이 고급화 전략과 거리가 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세포라는 국내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럭셔리 브랜드를 대거 도입하고 매장 분위기 역시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꾸민다는 전략이다.

또한 세포라는 국내의 뷰티 숍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채널에만 매진하고 상대적으로 온라인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세포라는 옴니 채널 전략을 내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방침이다.

손성민 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세포라의 전략을 살펴보면 기존의 국내 체험형 뷰티 숍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파악하고 이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과 협업 없이 진출 예정

세포라의 한국 진출설이 불거질 때마다 관심이 모아졌던 것 중 하나가 국내에서의 파트너로 어떤 기업을 선택할지 여부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세포라는 국내 기업과 파트너십 체결이나 합작 법인이 아닌 한국지사를 만들어 들어오게 된다.


국내 유통 기업과 손잡고 한국 시장에 들어오게 되면 백화점이나 마트 입점 등 유통망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매장 구성이나 판매 전략 등에서 양측 간에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상충되는 부분을 조율하는데 시간을 쏟다 보면 사업 확장 역시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세포라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국내 헬스&뷰티(H&B) 시장만 보더라도 그렇다. H&B는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파는 매장이다.


화장품만 판매하는 세포라와는 매장 구성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H&B 매장의 화장품 등 뷰티 매출 비율이 절반 이상인 만큼 실질적인 경쟁이 불가피하다.

해외 H&B 업체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로는 우선 홍콩 왓슨스를 들 수 있다. 왓슨스는 전 세계 1만 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세계적인 H&B 전문 스토어다. 2005년 국내 기업인 GS리테일과 함께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시장에 진출해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사업이 계속해 부진하자 왓슨스는 시장 철수를 결정하고 지난해 한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GS리테일은 왓슨스의 지분을 인수해 ‘랄라블라’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신세계 역시 2017년 영국 1위 H&B 회사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WBA·Walgreen Boots Alliance)와 손잡고 국내 ‘부츠’ 매장을 열었다. 부츠 역시 국내에서 많은 마니아 층을 확보한 브랜드였다.


국내에서 H&B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왓슨스와 마찬가지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한 뷰티업계 관계자는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가 손잡으면 매장 진열 방식부터 판매 품목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견이 상충할 때가 많다고 들었다”며 “이에 따라 의사결정이 느려져 결국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세포라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국내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을 확정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쟁 심화에 성공 여부는 미지수

이처럼 세포라가 공을 들여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단연 국내 뷰티 시장이 가진 매력도가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유러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125억6000만 달러로 세계 9위 규모다. 시장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8%라는 고성장을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세포라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국내 뷰티 숍들의 만만치 않은 저력이 이유로 꼽힌다.

오프라인 측면에서 본다면 가장 큰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신세계 시코르만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다. 2016년 첫 문을 연 이후 서울·대전·대구·부산 등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 내부와 주요 상권에 영토를 확장하며 20여 개의 매장을 구축했다.


럭셔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가성비가 좋은 중소기업의 제품들을 매장에 대거 입점시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리브영·랄라블라와 롯데쇼핑의 ‘롭스’ 등 H&B 스토어 역시 매장 내 저마다 특색 있는 뷰티 상품 비율을 높여 가며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H&B 매장 수만 전국에 14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독] ‘원조 뷰티숍’ 세포라, 10월에 한국서 매장 오픈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세포라가 오프라인 위주로 상권을 확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온라인 위주의 전략을 주력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악에는 홍콩처럼 오프라인 매장은 철수하고 온라인으로만 운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포라는 2008년 홍콩의 최대 상권 중 하나로 꼽히는 ‘몽콕’ 지역에 매장을 열었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2010년 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이미 홍콩에 화장품 편집 숍이 많은 상황이어서 세포라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세포라는 홍콩에서 온라인 몰만 운영 중이다.

다만 국내시장은 온라인이라고 해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H&B에 밀려 어려움을 겪는 화장품 로드 숍들이 온라인 강화를 외치고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아무리 세포라가 치밀한 전략으로 한국 시장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뒤따른다.

물론 세포라 내부에서도 한국 시장에서의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 안착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K뷰티’를 활용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세포라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의 품질 경쟁력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 여러 매장에서 ‘K뷰티 진열대’를 따로 마련해 운영 중일 정도로 관심이 높다.

손 연구원은 “세포라에 따르면 한국 시장 진출은 국내 중소형 브랜드와의 접점을 넓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다양한 한국 브랜드와 협업을 늘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이를 해외 세포라 매장까지 재수출하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국내 중소형 브랜드로서는 세포라의 한국 진출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세포라는 ‘체험형 뷰티 숍’의 원조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화점 화장품 브랜드를 한데 모아 판매하고 고객들이 이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설립된 것은 1969년이지만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97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세포라를 인수하고 이듬해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다. 지금은 세계 33개국에 유명 쇼핑 거리에 23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현존하는 뷰티 숍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네임 밸류 때문에 그간 국내에 매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포라는 친숙한 브랜드다. 한국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를 통해 세포라 제품을 구입하고 있고 해외여행할 때도 세포라 매장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최근 국내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체험형 뷰티 숍 역시 ‘세포라’의 판매 방식을 표방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