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216호 (2019년 03월 20일)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배우는 '협상의 기술'

[경영전략]
-협상 결과는 준비한 만큼 나와…리더가 직접 나서는 것이 때로는 ‘독’ 될 수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지난 2월 28일 확대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은 예정 시간을 30분가량 넘기며 이어졌지만 비핵화 의제에 합의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지난 2월 28일 결렬됐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다. 합의 실패 이유는 이미 다 알려져 있듯이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좁혀진다. 

협상 타결을 위해 양측의 뛰어난 수뇌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사례는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어떻게 하면 협상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교훈을 안겨준다.

◆준비에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이번 협상의 가장 큰 실패 원인은 준비 부족이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 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을 사전 합의하지 않고 회담 날짜와 장소부터 먼저 발표됐다. 양측은 언론을 의식하고 흥행에 더 신경을 쓴 결과 ‘노딜(no deal)’이라는 빈손 회담이 되고 말았다.

어떤 협상이든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정상회담이든, 비즈니스 협상이든 마찬가지다. 먼저 의제(agenda)를 설정하고 해당 의제에 대한 양측의 요구 사항(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를 파악해야 한다.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있어 명확한 규정(definition)이 필요하고 합의 가능한 몇 가지 옵션(option)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너무 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를 대비한 ‘비상 계획(Plan B)’도 있어야 한다. 이건 협상의 기본이다. 

물론 협상을 앞두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준비한다. 하지만 막연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마지노선만 지키면 돼’ 또는 ‘일단 만나 얘기해 보자’는 식으로 준비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협상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이런 식의 준비는 허술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실수로 귀결된다. 협상은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아니, 준비한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협상이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전략을 예측하여 미리 대비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거꾸로 상대를 모르고 전투를 하면 백전백패다.

또 이번 회담은 ‘톱다운 협상에서 리더가 직접 나서는 것이 좋을까’라는 의문도 안겨줬다.
이번 회담은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즉흥적 스타일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을 꼽을 수 있다. 

양국 정상이 만나 ‘통 큰’ 합의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재량권 없는 실무진이 핵심 의제에 대한 명확한 사전 합의를 못한 채 양 정상의 담판에서 해결하려다 아무 성과 없이 끝나 버린 것이다. 

비즈니스 협상에서 ‘톱다운’ 협상 방식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먼저 톱다운 방식은 협상 안건이 매우 중요해 실무진이 결정하기 어렵거나 너무 복잡해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협상에 적합하다. 얽히고설킨 난제를 큰 줄기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협상은 질질 끌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단점도 있다. 최고 결정권자가 직접 나서게 되면 실무 선에서 다뤄야 할 세부적인 내용들이 무시되거나 간과될 수 있다. 실무진의 생각에 어차피 책임은 리더가 질 것이기 때문에 굳이 나서지 않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입을 닫게 된다. 

리더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될 수 있는 것도 단점이다. 리더로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발동되면 위험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과시하거나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경영 성과를 과시하고 싶은 최고경영자(CEO), 재선을 노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유혹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협상을 앞둔 조직의 리더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큰 틀에서 방향을 결정하되 본격적인 협상은 실무진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리스크를 줄이고 돌다리도 두들겨 가면서 건너기 위해서다. 특히 처음 만나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대와의 협상은 더욱 그렇다. 마치 양파를 까듯이 한 꺼풀씩 차근차근 벗겨 나가는 것이 좋다.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하는 일을 망치는 것이 바로 직속 상사라는 말이 있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윗사람이 끼어들어 망칠 때가 종종 있다. 협상 실무 내용은 담당자가 가장 잘 안다. 상사는 큰 그림을 그려주고 뒤로 물러나 지켜봐야 한다. 유능한 장수는 전장 속에 파묻혀 있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법이다. 

물론 이때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협상 실무 대표와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는 일이다. CEO는 협상 대표와 수시로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전략을 짜고 대응 방안을 세워야 한다. 둘째, 협상 대표에게 ‘워크 어웨이(walk away)’ 할 수 있는 재량을 주는 일이다. 

협상에서 워크 어웨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협상을 결렬시킨다는 것이다. 협상하러 가는 사람에게 결렬시킬 수 있는 재량을 준다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협상 내용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되는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이다. 나머지 뒷감당은 최고 결정권자가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다. 

◆상대를 신뢰하면서도 반드시 검증 거쳐야

확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배석했다. 양국 간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은 왜 ‘대북 강경파’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을까. 

이유는 명백하다. 과거 북한은 미국을 수없이 속였던 전례가 있다. 북한의 핵 시설은 영변 외에도 4~5곳에서 발견됐고 북한의 ‘비핵화’를 액면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일단 믿어주되 반드시 검증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두 강경파를 통해 그들의 속임수를 검증하려고 했을 것이다. 

협상은 미래를 놓고 현재를 논하는 것이다. 협상을 제대로 하려면 일단 현재의 상대를 믿어 줘야 한다. 서로 원하는 것이 있어 만나는 것인데 믿지 못한다면 협상을 하나마나다. 그런 상대와 어떻게 거래하겠는가. 비즈니스 거래에서 신뢰가 주는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 신뢰감은 협상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킨다. 

스티븐 코비가 자신의 저서 ‘신뢰의 속도’에서 언급한 사례를 보자. 2003년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식음료 제조 및 유통회사였던 월마트의 자회사 ‘맥레인컴퍼니’를 인수했다. 

놀랍게도 양 사는 단 한 번의 미팅과 악수로 협상을 타결했다. 인수 협상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버핏 회장은 “우리는 실사(due diligence)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월마트에서 말한 그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야말로 신뢰가 높으니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기업 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실패한 인수·합병(M&A) 사례도 많다. 그중 하나가 2000년대 타임워너와 아메리카온라인(AOL)이다. 타임워너는 AOL을 한 번도 제대로 실사를 하지 않고 합병했다.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에 취해 있었고 통합에 따른 비용은 과소평가됐다. 전통 미디어 그룹과 신생 인터넷 기업의 결합은 마치 나이 차가 많은 연인들의 결혼처럼 융합되지 못하다가 파탄이 났다. 결국 재분할의 길을 걸었던 것이 좋은 예다. 

협상에서 무작정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이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거래를 서두르지 말고 검증해야 한다. 상대가 속이려는 것은 대부분 당신이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을 때다. 

그래서 속내를 감추고 당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이리저리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는 상대에 대한 정보나 신뢰를 확보하기 전까지 서두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일단 거래를 미루는 것이 좋다. 

둘째, 확실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상대가 당신의 질문에 에둘러 말하고 심지어 대답을 회피한다면 틀림없이 비밀스러운 의도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는 확실한 보호책 없이 당신의 소중한 혜택을 제공하면 안 된다. 

◆어설픈 합의보다 결렬이 낫다 

물론 때로는 협상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협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의 낡은 핵시설 해체와 경제제재를 맞바꿀 수 없었다. 그는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용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했고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빈손으로 평양에 돌아가게 됐다. 

어설프게 타결했다가 자칫 조직에 위해를 입히는 것보다 백배 낫다. 그렇다면 협상 도중 언제 협상을 그만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상대가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고 할 때를 꼽을 수 있다. 양보하는 척하면서 욕심을 부리거나 일방적으로 마지노선을 강요할 때 협상을 멈춰야 한다.

상대방이 신뢰가 가지 않을 때도 협상을 그만둬야 한다. 상대방이 협상을 이행할 능력이 없어 보일 때 그리고 합의 내용이 비현실적일 때 한 걸음 물러서서 현실성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그들이 정말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까’, ‘계약 이행을 위해 계속 재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만약 그 답변이 ‘아마도’라면 협상을 멈춰야 한다.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문제가 예상될 때도 협상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 아마추어는 결렬이라는 심리적 부담 그리고 조직에서 받게 될지도 모르는 비난이 두려워 마지못해 동의해 버린다. 

하지만 과감히 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뜰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협상가다. 계속 진행해 봐야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면 결렬을 선언하는 것이 백 번 낫다. 무의미한 협상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서로를 지치게 만들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기 십상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6호(2019.03.18 ~ 2019.03.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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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3-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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