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플랜트 지어 비정유 부문 강화, 2021년 가동 시 연 6000억 추가 영업이익
‘2조7000억’ HPC 사업 탄력…현대오일뱅크, ‘종합 에너지 기업’ 꿈꾼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현대오일뱅크가 창사 이후 최대 투자로 ‘신성장 동력 찾기’에 나섰다. 롯데케미칼과의 합작 법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중질유 분해 설비(HPC : 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것이다. 투자 규모만 2조7000억원이다.

최근 정유사들은 유가 변동과 국제 정세 등 급격히 변동하는 시황에 대응하기 위해 ‘수직 계열화’를 구축 중이다. 수직 계열화는 원유를 정제한 후 이를 원료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중질유분을 주원료로 하는 HPC는 나프타보다 원가가 낮아 비용 절감에 효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 NCC 대비 2000억원 정도의 수익성 갖춰

석유화학 사업은 크게 올레핀과 방향족 분야로 나뉜다. 화학물질 합성에 사용되는 방향족은 나일론·스티로폼·보온재·시너·폴리에스터 등 다양한 제품들의 기초 원료가 된다. 올레핀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등의 소재로 쓰인다.

현대오일뱅크는 그동안 자회사인 현대케미칼과 현대코스모를 통해 파라자일렌 등을 생산하는 방향족 사업만 영위해 왔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5월 HPC 공장 건립 계획을 발표하며 올레핀 분야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석유제품과 방향족에 이어 올레핀 계열 석유화학제품까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정유-석유화학의 수직 계열화를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프로젝트 선봉에 선 계열사는 현대오일뱅크의 자회사 ‘현대케미칼’이다. 현대케미칼은 2014년 현대오일뱅크가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설립됐다. 국내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간 최초의 합작이었다. 지분율은 현대오일뱅크 60%, 롯데케미칼 40%다.

현대케미칼이 생산하는 혼합자일렌(MX) 제품은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벤젠·톨루엔·자일렌(BTX) 공정 원료로 사용된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5월 24일 기존 합작 법인 현대케미칼에 추가 출자해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약 50만㎡(15만 평) 부지에 HPC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양 사가 힘을 합친 HPC 프로젝트는 원유 찌꺼기인 중질유분을 주원료로 사용한다. 나프타를 사용하는 기존 나프타 분해 설비(NCC : Naphtha Cracking Center)에 비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공장이 상업 가동한다면 연간 생산량은 폴리에틸렌 75만 톤, 폴리프로필렌 40만 톤에 이른다.

최근 석유화학업계에는 셰일가스 부산물인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만드는 북미 지역의 에탄 분해 설비(ECC)와 같은 저가 원료 기반의 유사 시설들이 공격적으로 증설되는 추세다.

반면 현대케미칼의 HPC는 나프타를 최소로 투입하면서 나프타보다 저렴한 탈황중질유·부생가스·액화석유가스(LPG) 등 정유 공장 부산물을 60% 이상 투입해 원가를 낮췄다. 특히 나프타보다 20% 저렴한 탈황중질유는 현대오일뱅크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3개 정유사만 생산하는 희소가치가 높은 원료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탈황중질유는 경유와 벙커C유 중간 성상의 반제품으로, 불순물이 적은 편이어서 가동 단계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향후 현대케미칼은 탈황중질유 등 부산물의 투입 비율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대케미칼은 HPC를 통해 기존 NCC 대비 연간 2000억원 정도의 수익성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 법인인 현대케미칼은 현대오일뱅크의 원료, 롯데케미칼의 기술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양 사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올해 말 세계 7위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는 롯데케미칼은 여수·대산·울산의 국내 모든 유화산업단지에 사업장을 보유한 유일한 화학사다. 특히 신흥 개발도상국인 동남아를 비롯해 전 세계 법인과 지사의 판매 네트워크가 매우 뛰어나다.
‘2조7000억’ HPC 사업 탄력…현대오일뱅크, ‘종합 에너지 기업’ 꿈꾼다
◆비정유 영업이익 비율 45% 이상으로 확대할 것

현대오일뱅크는 HPC 프로젝트의 경제적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HPC 프로젝트가 상업 가동된다면 제품 대부분을 해외에 판매할 수 있게 돼 연간 3조8000억원의 수출을 늘릴 수 있다. 영업이익 달성치는 6000억원으로 전망된다.

공장이 들어설 충남 서산 지역에 미치는 경제 효과도 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오일뱅크에 따르면 하루 최대 1만1000명, 연인원 320만 명이 공사에 참여하게 된다. 설비 가동 이후 1500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 확대에 따른 2022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을 2조2000억원으로 예상했다.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사업 다각화를 통한 종합 에너지 기업 비전을 달성하는 데 역사적인 획을 그을 것”이라며 “현대오일뱅크의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 비율은 2017년 33%에서 2022년 45%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PC 프로젝트는 2021년 말을 목표로 공장 설계를 진행 중이다. 현대케미칼에 따르면 지난 4월 모든 공정에 대한 특허 설계사 신청을 완료하고 기본 설계를 진행 중이다. 5월부터는 설계·조달·시공(EPC)사와 상세 설계, 기자재 구매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2조7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의 청사진이 마련된 셈이다.

HPC 프로젝트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개 플랜트 공사는 발주처와 EPC사 설계 인원이 같은 사무실에 모여 업무를 진행한다. 상세 설계와 기자재 구매 품목에 빠른 피드백과 의사결정이 더해져 설계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EPC사와 계약하는 설계 협력사 인원들도 한 장소에 모았다.

설계 협력사는 발주처와 EPC사가 설계한 내용을 도면으로 만들어 내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보통은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e메일과 전화로 발주처·EPC사와 소통한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국내 대규모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공사에 발주처·EPC사·설계 협력사 인원이 모두 모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업무가 수행될 태스크포스(TF)팀 사무실은 협력사 직원들을 배려해 협력사가 소재해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에 마련했다. TF팀 사무실에 근무할 950명의 직원들은 약 14개월 동안 상세 설계와 자재 발주 업무를 수행한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9호(2019.06.17 ~ 2019.06.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