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241호 (2019년 09월 11일)

삼성전자, ‘히트 파이프’ 국산화 추진…중소 제조업계 ‘반색’

- 국내 중소기업과 공동 개발 협약 체결
- ‘공급처 확보와 고품질 제품 개발’ 박차


삼성전자 수원 모바일연구소 전경./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삼성전자가 일본·중국·대만 등 외국계 기업에서 납품받고 있는 스마트폰 필수재 ‘히트 파이프(heat pipe)’의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국내 히트 파이프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 제조 기업 씨지아이와 ‘히트 파이프 공동 개발 협약 체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고 씨지아이는 국내에 생산 공장을 건립하기 위한 자금 확보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구체적인 공장의 위치나 규모 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연내 공장 설립을 위한 실사에 착수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히트 파이프 국산화 움직임에 국내 제조 산업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 공장들의 저가 공세로 아사 직전이었던 중소 제조 기업들은 이번 삼성전자의 제조 부품 국산화 추진 소식이 국내 제조 산업의 부활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온도 낮추는 필수 부품…지난해부터 공급난

히트 파이프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열을 분산하는 장치로, 현재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모든 스마트폰에 장착되고 있고 100%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납품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1년여 전부터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과열되며 히트 파이프 수급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5G 출시 등 삼성전자에 필요한 고급화된 히트 파이프 기술을 제조사들이 성능 면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스마트폰 히트 파이프 제조업체를 수소문했고 그 결과 기존에 납품받고 있던 외국계 기업과 대등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씨지아이와 공동 개발 협약을 하고 국산화 추진을 협의 중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사용돼 온 히트 파이프는 CCI·아우라스(Auras)·도시바·델타 등 4개 기업들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온 제품을 사용해 왔다.

2016년 갤럭시 S7 때부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식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위에 수랭식 히트 파이프를 붙이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수랭식 히트 파이프 제작이 가능한 이들 공장과 계약하고 공급받고 있다.

에이전시를 통해 스마트폰 품목에 맞는 히트 파이프를 별도로 제작 의뢰하고 이들 제조사들이 샘플을 만들어 에이전시에 제공하면 삼성전자가 이를 테스트한 후 납품 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삼성전자는 4년 동안 신제품 출시 때마다 이들 공장에서 약 1000만~2000만 개의 히트 파이프를 공급받아 왔다.

수랭식 히트 파이프는 파이프에 소량의 물을 채운 히트 파이프로 AP의 온도가 올라가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 AP와 먼 곳으로 이동시키며 AP 온도를 낮추는 기능이 담긴 부품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 등이 프리미엄 스펙을 갖추고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면서 수랭식 히트 파이프가 귀해졌다.

한정된 수랭식 히트 파이프 공장에서 서로 공급 받다 보니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공급 단가도 올랐다. 개당 약 1000원대(갤럭시 7에 들어가는 히트 파이프)에 형성됐던 가격이 현재 약 3000원까지 치솟았다.

◆ 부품 국산화 촉진 계기 될까

더 큰 문제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히트 파이프의 성능과 품질이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부터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불리는 5G 전용 스마트폰을 갤럭시 S10 5G를 출시했고 후속으로 8월 23일 갤럭시 S10 노트 5G를 선보였다.

9월에는 스마트폰의 혁신이라고 불리는 접히는 폴더블폰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제품들은 기존 4G 제품보다 고성능화된 제품으로 AP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발생하는 열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발열을 잡아주는 히트 파이프의 성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는 사람 뇌처럼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면 열이 난다. 스마트폰 발달로 사용자는 한꺼번에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켜 빠르게 여러 기능을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원활한 성능을 내기 위해선 AP 과열을 막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가 납품받고 있는 업체 4곳 중 5G 성능에 적합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CCI와 도시바 두 곳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우라스와 델타는 갤럭시 S10 5G 개발 당시 샘플에서도 불량이 발생하거나 성능이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도시바는 갤럭시 S10 5G 모델까지만 납품했고 이후 갤럭시 S10 노트 5G부터는 삼성전자에 납품을 중단하고 중국 기업에 이관한 것으로 취재 결과 파악됐다. 하지만 이 중국 제조업체의 품질이 상당히 떨어져 갤럭시 S10 노트 5G에 납품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현재 삼성전자가 원하는 외국계 기업 중 제품을 온전히 납품받을 수 있는 곳은 CCI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삼성전자가 국내 히트 파이프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 제조 기업 씨지아이와 기술 개발 협약을 체결한 이유는 단연 기술력 때문이다.

씨지아이는 삼성전자가 실시한 샘플 검사에서 CCI 제품 수준의 성능을 선보였고 외관 품질에서도 기존 납품 업체들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갈수록 히트 파이프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더해 올해 5G 모델 출시 이후 고성능화된 품질을 따라오지 못하는 기존 업체들이 많다”며 “지난해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을 찾아 나섰고 그중 적합해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물론 문제는 단가다. 씨지아이가 국내 생산을 추진 중인 만큼 인건비 등으로 인해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씨지아이와 공동 개발에 나선 이유는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그동안 히트 파이프는 단순한 부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스마트폰이 고성능화되면서 함께 발전하고 있는 하이테크 제조 산업이 됐다. 더욱이 스마트폰이 고성능화될수록 히트 파이프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국내 제조 기업과 손잡고 히트 파이프 개발에 공동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세계 1위의 스마트폰 제조 기업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전 세계의 경쟁사들이 새 모델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라며 “그런데 개발 단계에서부터 에이전시를 통해 모델에 맞는 히트 파이프를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자료가 넘어가면서 기술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5G 모델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히트 파이프 생산을 국내로 돌렸을 가능성이 높다”며 “신모델 개발과 초도 물량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이후 부족 물량에 대해서는 중국 쪽 공장에서 납품받는 형식으로 물량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전자의 히트 파이프 국내 생산 움직임에 국내 제조업계는 한껏 들뜨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 원자재 수급 단가, 대량생산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무너졌던 국내 제조 산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최근 들어 중국을 비롯한 일본 등이 기술이나 제품을 앞세운 경제 보복을 단행하고 있는 불확실한 경제 무역 상황에서 주요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국산화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제조업계는 히트 파이프를 시작으로 주요 제조 부품의 국산화가 속속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물 관련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의 대표는 “제조 산업은 모든 분야 산업의 근간으로 제조 산업 위에 기술력이 입혀져야 진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히트 파이프처럼 다양한 핵심 제조 부품들을 국산화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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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9-0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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