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우리·하나은행, PB 통해 집중 판매- 피해자들, 대책위 구성 등 본격 대응 나서
DLS·DLF 등 파생상품 대란…‘제2의 키코 사태’ 되나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는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과 파생결합펀드(DLF) 대란이 ‘제2의 키코’ 사태로 비화할 조짐이다.

지난 9월 19일과 26일 만기가 도래한 우리은행 DLF의 최종 수익률이 각각 마이너스 60.1%, 마이너스 98.1%로 확정된 데 이어 9월 25일 만기인 KEB하나은행(이하 하나은행)의 DLF도 손실률 46.1%를 기록했다. 사실상 투자한 돈의 ‘반 토막’을 겨우 건지거나 ‘원금 전부’를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11월까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모두 더해 1177억원 규모의 DLF 만기가 줄지어 서 있어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DLS·DLF 뭐길래… 하루아침에 투자금 ‘반 토막’
DLS는 기초 자산의 변동성에 의해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증권을 말한다. 최근 인기 있는 주가연계증권(ELS)이 코스피 등과 같은 주가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된다면 DLS는 금리·환율·원자재 등을 기초 자산으로 한다. 특정 기간 동안 이 기초 자산의 움직임이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약정 수익률을 지급받을 수 있지만 만약 이 기초 자산이 이 구간을 벗어나게 되면 원금이 손실되는 구조다. DLF는 이와 같은 DLS를 편입해 운용하는 펀드다.

대표적으로 9월 26일 만기를 맞은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와 연계한 상품이다. 4개월 초단기 만기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마이너스 0.2% 이상이면 연 3~5%의 수익을 가져가고 마이너스 0.3%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 마이너스 0.6%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을 모두 잃는 구조다. 그런데 9월 25일을 기준으로 독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0.619%로 떨어지면서 전액 손실이 나게 된 것이다. 다만 금리 하락 폭과 무관하게 상품을 만기까지 유지할 때 보장해 주는 ‘쿠폰 금리’ 1.4%(연 4.2% 만기 4개월)와 선취 운용 수수료 반환분(0.5%)을 감안해 실제 손실률은 98.1%로 확정됐다. 우리은행은 지난 5월 이 상품을 모두 44명의 투자자에게 약 86억원어치를 판매했는데 4개월 만에 1억6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만약 1억원을 투자했다면 192만원만 건지는 셈이다.

하나은행은 영국과 미국의 통화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에 연계한 DLF를 팔았다. 영국 7년 만기 CMS와 미국 5년 만기 CMS를 기초 자산으로 만기 평가 시 두 기초 자산의 종가가 최초 기준 가격의 55% 이상이면 연 3.5%의 이자를 지급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0%에 도달하면 원금 전액을 잃게 되는 구조다. 하나은행은 9월 25일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의 손실률을 46.1%로 확정했다. 하루아침에 투자한 돈이 ‘반 토막’ 나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된 해외 금리 연계형 DLS·DLF는 총 8244억원 수준이다. 이 중 우리은행이 4012억원어치, 하나은행이 3876억원어치를 판매했다. 두 은행의 판매액이 총액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판매한 고객의 대부분이 개인 투자자라는 것이다. 전체 판매액 가운데 개인 투자자(3654명)가 투자한 금액이 7236억원(89.1%)에 달한다.

의문점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은행에서 ‘원금 100%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어떻게 이렇게 공격적으로 판매했느냐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원이나 DLF 피해자대책위 등에서 공유하고 있는 피해 사례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DLF 상품의 투자를 권유할 당시 ‘중위험 상품군’으로 분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올 상반기만 해도 금융권 내에서는 선진국 금리의 안정화를 전망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화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의 자금이 안전 자산인 선진국 국채 등에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올라가고 금리는 급격한 하향세로 돌아섰다.

조남의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은행들이 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들에게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고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며 “최근처럼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익이 4%대인데 원금 손실이 100%까지 설정돼 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상품 구조가 기형적”이라고 비판했다.
◆11년 전 키코 사태 판박이

이번 DLS·DLF 대란은 여러모로 2008년 ‘키코(KIKO) 사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키코’는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통화 옵션 상품 중 하나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다. 기업들은 환율 변동 위험을 줄여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만약 만기 이전에 환율이 한 번이라도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올라간다면 기업들은 계약 금액의 두 배 이상의 외화를 마련해 은행에 약정 환율로 팔아야 했다. 만약 환율이 정해진 범위 밑으로 떨어진다면 키코 계약은 무효가 된다.

당시 은행들은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이 상품을 판매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당시 919개의 기업이 피해를 봤고 그 금액만 3조1588억원에 달했다. 선진국 국채 금리 대신 ‘환율’에 연동했다는 것, ‘중소기업’이 피해 대상이라는 것 외에는 지금의 DLS·DLF 사태와 놀라울 정도로 판박이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과 함께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원은 9월 25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법인, 담당 프라이빗 뱅커(PB) 등을 상대로 DLF 계약 취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DLS·DLF 투자자들이 제기한 첫 민사소송으로, 금소원에 따르면 10월 중 이들 은행에 대한 형사고발도 준비 중이다.

9월 26일에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DLF 투자자들도 따로 ‘DLF·DLS 피해자 비상대책위(이하 DLF비상대책위)’를 발족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의 ‘파생상품 피해구제 특별대책위원회’에서 DLS·DLF 투자자들만 따로 나와 만든 조직이다.

앞서 키코 공대위는 DLS·DLF 파생상품 피해 구제 특별대책위원회를 통해 8월 23일 금융정의연대 등과 손잡고 우리은행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번 DLF 상품의 속성이 키코와 유사한 점이 있는 만큼 키코 사태의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을 포함해 연대체를 만들고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키코 공대위와 연대한 DLF비상대책위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9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문과 함께 피해 사례를 발표하는 것으로 첫 공식 활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국정감사 요구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운 DLF비상대책위 위원은 “형식적인 국정감사가 아니라 은행장·부행장 등 주요 실무진을 증인으로 채택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DLF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그리고 DLF 상품을 설계한 증권사와 자산 운용사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다. 국정감사 전인 10월 2일 이와 관련한 중간 보고를 진행하고 10월 말쯤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4호(2019.09.30 ~ 2019.10.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