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말도 안 되는 행동에도 반드시 ‘이유’가 존재…숨은 이해관계인·상대의 관심사 간파해야
‘막무가내’로 나오는 협상 상대에게 이기는 법
[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막무가내로 나오는 협상 상대를 만난 적이 있는가. 아무리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 말이다. 자기 논리에 빠져 다른 사람 얘기는 듣지도 않는다. 억지 주장을 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

사실 협상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다. 노사 협상, 비즈니스 협상, 연봉 협상 등 실제 협상에서 이런 상대를 만나면 난감하기만 하다. 이런 난제는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믿을 만한 정보 제시하며 설득하라

하버드대의 디팍 말호트라 교수와 맥스 베이저만 교수는 상대가 협상에서 비합리적으로 나오면 세 가지를 되짚어 보라고 조언한다.

첫째, 상대방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어느 회사의 임원이 최근 해고된 직원과 법적 소송을 벌이게 됐다. 직원은 회사에서 해고되기 두 달 전에 그가 맡았던 업무에서 생긴 판매 수수료 1억3000만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원의 생각은 달랐다. 회사는 그에게 아무 것도 빚진 게 없고 그 직원이 오히려 2억5000만원을 업무상 과다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몇 차례 만났지만 서로 합의하지 못한 채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왜 두 사람의 주장이 다를까.

내부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 직원이 해고되기 전 회사의 회계장부와 증빙 서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회사는 이런 문제로 직원이 해고된 직후 새로운 회계사를 고용하고 기존의 모든 회계장부를 갱신하고 증빙 서류 정리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직원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다는 사실도 새로운 회계장부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 임원은 과다 지출된 2억5000만원을 되찾기 위해 소송까지 하고 싶지 않았고 다만 그 직원이 어이없는 소송을 취하해 주기를 희망했다.

임원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새로운 회계장부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말하고 증빙 서류의 사본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 또 직원이 이 근거 없는 소송을 포기한다면 2억5000만원의 업무상 과다 지출 소송도 취하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그 직원이 깔끔하게 포기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 직원의 답변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가 “새로운 회계장부를 볼 필요도 없어요. 법정에서 보시죠”라고 대답한 것이다.

임원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가진 어떤 자료를 보더라도 그 직원이 소송에서 이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는 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임원은 직원에게 법정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신시켰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원은 여전히 회사의 회계장부나 기록 수준이 엉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송에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직원이 법정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기대에서 깨어나도록 직원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제삼자를 동원하는 것이다.

회사 소속 회계사가 아닌 객관적인 별도의 전문 회계법인이 회사의 회계장부와 증빙 서류를 검토하게 하는 것이다.

그다음 정확하게 계산된 내용을 직원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직원은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직원이 막무가내로 나왔던 이유는 회사가 제시하는 숫자를 믿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회계 자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최선의 제안을 하는데도 ‘아니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가 비합리적이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왜 당신의 제안이 상대방에게 최선인지 이해시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상대방은 단순하게 오해했거나 결정적인 어떤 일부 내용을 간과했기 때문에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둘째,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제약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 협상은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상대가 정보나 객관적인 자료를 알고 있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막무가내로 나올 때가 있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 미국 정부는 긴급 식량 원조를 크게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예산을 늘리지 않고 원조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해 많은 정치인들과 사회사업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난한 국가들에 식량 원조 지원을 추진하는 한 비영리 단체가 이 법안에 반대했다. 이 단체의 존재 목적을 생각한다면 법안에 대한 반대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숨겨진 이해관계인은 협상의 복병


해당 단체가 법안을 반대한 것은 이해관계인들 때문이었다. 그 단체는 지난 수년간 가난한 나라들에 식량 원조를 늘리기 위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미국 농민들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다. 농민들은 미국 정부가 식량 지원을 증가시키는 것이 농민들에게 더 많은 식량을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이 단체와 협력해 왔다.

하지만 2005년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예산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면서 미국 의회는 외국에 식량 원조를 증가시키면서 더 저렴하게 식량을 구매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 농부들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식량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 방안을 시행하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부도 지원하고 다른 가난한 나라의 식량 원조도 늘리게 돼 그 단체에는 두 배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비영리 단체가 입법을 지지한다면 그들의 오랜 정치적 파트너였던 미국 농민들을 배신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식량 원조 로비 활동에서 농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제약을 인식한 비영리 단체는 새로운 법안에 반대하고 농민들과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어느 보험회사에서 수년간 보험왕을 차지한 최고의 영업 사원을 경쟁 회사에 빼앗겼다. 이유는 직원의 임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라면 이 최고의 영업 사원에게 임금을 인상시켜 줄까. 대부분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회사는 인상 요구를 거절했을까.

이 경우에도 다른 제약 사항이 있었다. 바로 인사 부서의 규정이었다. 임금 격차로 인한 직원들 간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부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을 제약하는 사항은 다양하다. 당신은 상대방의 뒤에 어떤 이해관계인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이해관계인 때문에 상대방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신의 뜻에도 맞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마지막 셋째는 상대에게 감춰진 ‘관심(interest)’을 찾는 것이다. 최근 모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A 차장은 30년간 근무했고 곧 은퇴할 예정이었다.

회사의 임원들은 그에게 깜짝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가 회사에 기여한 것을 높이 평가해 특별 승진을 제시했다. 추가적인 업무 책임이나 부담이 없으면서 급여도 인상되지 않았지만 더 높은 직위와 특권이 주어질 수 있는 자리를 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처음에 승진이라는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게다가 해당 직위에 맞는 업무를 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임원 회의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승진이 A 차장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자 A 차장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으로 인해 A 차장은 남은 기간 동안의 급여뿐만 아니라 정년 퇴임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에도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임원회의에서는 A 차장이 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승진을 받아들이고 특권을 누리면서 2년만 지내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왜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한 것일까. 당신이 임원회의의 일원이라면 A 차장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임원들이 놓친 것은 A 차장의 드러나지 않은 ‘관심’이었다. 임원들은 비서실 A 차장에게 숨은 관심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공정성과 공평성이 바로 그것이다.

A 차장은 승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직위를 가진 사원들 중에서 가장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억지로 꾸민 승진 때문에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고 A 차장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A 차장은 같은 직위의 다른 직원들과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싶었고 공정한 대우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A 차장의 승진은 예외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A 차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신의 제안이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 데도 협상 대상자가 제안 내용과 상관없이 싫다고 나올 수 있다. 또는 제안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과연 이성적이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지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다른 요구나 이해관계, 즉 숨은 관심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협상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상대방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어떤 숨은 관심사를 가졌는지 알아보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상대가 이해가 되지 않고 불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 관점에서 보면 상대는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고 대단히 합리적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9호(2019.11.04 ~ 2019.11.10) 기사입니다.]